사사키 미쓰오ㆍ사사키 아야코 지음(이들은 부부)/정선이 옮김/예담/223쪽/초판1쇄 2002.8/읽은 때 2021.8.12~8.16
--해돋이에서 물의 정원까지 모네와 함께 떠나는 여행
**모네(1840~1926)향년 86세/파리 출생/ 5세 때 르아브르로 이주/16세에 어머니를 잃음/30세에 카미유와 결혼, 두 아들을 얻음/카미유 사망 후 52세 때 알리스와 결혼/1911년 알리스 사망/모네 실명 후 사망
제1부 루앙 빛의 표정
루앙의 대성당:'성당 정면의 현관과 왼쪽의 알반탑'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다가 슬슬 머리가 아파와 쉼표를 찍는 의미로 모네의 그림쪽으로 넘어왔다.
요새 화가들에 관한 책을 선호하게 된 이유도 활자로 가득한 책에서 벗어나 그림 구경을 해가며 읽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역시 편안하고 좋다)
제2부 노르망디 해안 바닷바람
*디에프 부근의 절벽(1882)
*푸르빌 절벽에서의 산책(1882)
*에트르타(1883)
*바랑즈빌의 교회(1882)
*썰물 때의 암초, 푸르빌(1882)
*노르망디의 농원(1863)
모네는 모팟상의 집에 자주 놀러왔다.
제3부 르아브르 하나의 길
'아브르'는 항구라는 뜻.1517년 만듦. 프랑스에서 마르세유 다음가는 항구
인상파 화가들의 고향. 모네가 5세 때부터 18세 때까지 살던 곳/자유분방한 학교생활로 문제아 취급을 받음/중학생 때 벌써 동네 화구상에 캐리커처를 그려 팔았다.
**생타드레스의 해변(1867)
(73)모네는 돈이 없어도 궁상스럽게 살지 않은 사람이었다. 타고난 성격이기도 했겠지만 이 르카드르 저택에 서 보니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76)"아주 맑은 날이었다. 갑자기 베일이 걷히는 것 같았다.나는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이해했다."--모네
모네에게 루엘의 숲은 화가로서 개안한 아주 중요한 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79)부두 건너편 호텔 창문에서 모네가 그린 그림 인상, 해돋이는 '인상파'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그때 모네의 나이는 서른둘.
제4부 옹플뢰르 빛의 항구
(88)도시 전체가 그림인 옹플뢰르
루앙이 '미술관'이라면 옹플뢰르는 도시 전체가 '그림'이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89)인상파의 발상지:
생 시메옹 농장/개방적인 여관/많은 화가들이 머물렀던 곳/부댕과 용킨트로 대표되는 생 시메옹파
(97)부댕이 젊은 모네의 직접적인 스승이었다면 용킨트는 시각을 일깨워준 스승으로서 모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01)몽생미셸은 '서구의 경이'라고 불리는 신기한 섬이다. 바다 속의 암산에 수도원 탑이 솟아 있고
그 꼭대기에는 황금의 성미카엘 대천사상이 바다를 노려보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제5부 벨일 섬: 섬에서의 75일
벨일 섬은 '아름다운 섬'이란 뜻
(114)모네는 1886년 9월 12일에서 11월25일까지 75일간을 이곳에서 지냈다.
"멋진 곳이다.나와 친숙했던 영불해협과는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바다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암벽은 동굴과 곶, 신기한 암봉의 퇴적이라 할 수 있다."--모네
제6부 파리 그리고 자연속으로
(132)브라스리 디 마르티르;카페레스토랑/당구, 맥주, 춤을 즐길 수 있음/사실주의자들의 집합소/화가 쿠르베 아망 고췌등도 옴/보들레르와 알퐁스 도데의 단골집/부끄럼 많고 낯가림 심한 모네에게 자극적인 장소로 그도 자주 들름
(132)아카데미 스위스:모네가 적을 둔 화실/쿠르베 마네 피사로 세잔이 다녀간 인상주의의 요람
(133)알제리에서의 병역생활:추첨으로 7년간 알제리 기병부대에 배속/장티푸스에 걸려 르아브르로 돌아온 후 숙모가 보석금을 내주어 병역 면제됨
(133)샤를 글레르 미술학교에 적을 둠/야외풍경화를 더 좋아한 모네는 1863년 이후 파리생활을 거의 하지 않음/퐁텐블로 숲을 아트리에로 삼음
(136)모네와 마네
*모네(1840~1926) *마네(1832~1882)
1863년 낙선전에 마네가 '풀밭 위의 식사'를 출품, 그 전시회가 유명해짐/1865년 살롱에 마네와 모네작품이 모두 입선, 사람들을 헷갈리게 함
*풀밭 위의 식사(미완성,1865)
(142)모레쉬르루앙:모네의 친구 시슬레가 살던 곳/센강 지류인 루앙 강변에 있음
제7부 센 강 주변의 아틀리에ㆍ1
(148)부지발과 라 그루누에르:모네가 살면서 그림을 그렸던 곳
**필촉분할--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혼합하면 색이 탁해지고 선명함이 없어지기 때문에 물감을 팔레트에 나란히 짜놓고 순수한 색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기법
(149)아르장퇴유:인상파 결성의 땅/'은광산'에서 유래한 이름/보불전쟁을 피해 6년 간 살았던 곳/오랜 역사를 지닌 차분하고 조용한 마을/독신으로 있다가 전쟁에 소집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서둘러 카미유와 식을 올림/아르장에 정착하기 전 영국과 네델란드에 잠시 머묾/1873년 살롱에 낙선한 화가들이 모네의 집으로 몰려듦/화가 조각가 판화가 무명예술가 협회 결성/1874년 전람회 개최
(158)몽주롱의 로탕부르 성:에르네스의 아내 알리스와 연인이 된 곳
제8부 센 강 주변의 아틀리에ㆍ2
베퇴유:모네의 일생 중 가장 괴로운 생활을 보낸 곳/파리에서 70km/전차도 다리도 없는 곳/가족과 함께 처음 머물렀던 곳은 어둡고 옹색해서 마음이 아플 정도로 가난한 집
(180)카미유와 알리스:카미유는 알리스와의 갈등으로 증류주를 마시고 혼수상태로 사망한다.자책감에 시달리나 알리스를 떠나지 못하는 모네
푸아시의 생 루이 별장:1881.12~1883.4까지 거주
현재는 일부 복원된 채로 남아 있음
제9부 모네가 사랑한 지베르니
(187)생 라자르역에서 베르농까지
기차로 1시간--다시 지베르니까지 버스로
(190)지베르니:4층짜리 18세기 저택/노르망디의 끝/파리에서 북서쪽으로 80km 떨어짐/340여 명의 주민이 살던 마을/1890.11모네(50세)는 이 집을 사들임/이곳에서 43년간 살았다/1891년 에르네스가 사망하자 이듬해 알리스와 정식 결혼/작품이 팔리면서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음/후에 '수련'의 연못이 된 에프트 강가의 토지도 매입
(194)모네는 1901년에 에프트 강 근처의 토지를 더 구입해 연못을 더욱 넓혔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똑같은 감각으로 정원을 만들었다. 색의 배합을 꼼꼼하게 연구한 후 여러 명의 정원사를 고용하여 넓은 정원에 온갖 꽃을 심었다.꽃에 대한 그의 집착과 정열은 숙모인 르카드르의 저택 정원을 보면서 자란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202)연간 40만의 관광객이 지베르니의 모네를 찾는다고 한다.미국의 모네 애호가는 프랑스로 유학을 오기까지 한다.
이에 대해,
"지베르니에 찾아올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그림을 그리면 좋을 것을"하며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207)모네의 정원을 흔히 '팔레트와 같다'고 하는데 색채의 범람이야말로 모네가 진정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는가!
"나는 그림과 정원가꾸기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는 게 없다."--모네
"어느날 갑자기 나는 내 연못의 멋진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 이후에는 다른 소재를 그다지 찾지않게 되었다."--모네
(214)클례망소와 모네의 수련:
1차대전 때 총리 겸 육군 장관으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끈 클레망소에게 모네는 종전을 축하하며 두 점의 '수련'에 사인을 하여 클레망소에게 증정했다.
백내장 수술로 힘든 상황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 완성한 <수련>은 그가 죽은 다음 해에 오랑즈리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그 앞에서 클레망소는 눈물을 흘렸다.
(215)오랑즈리 미술관의 타원형으로 된 두 개의 큰 객실은 지베르니의 수련이 핀 연못만으로 장식되어 있다.
(오랑즈리 미술관에 서보지 않고는 모네의 풍경기행은 끝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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