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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푸른하늘 다 구경하고

맑은 바람 2022. 2. 14. 21:29

 

 

 

 

 


김훈ㆍ박래부의 문학기행 하나

따뜻한손/295쪽/초판 1쇄2004.12/초판2쇄 2005.5/읽은 때 20220214~0216

--김훈의 책머리 글---
1980년대 중반(1986년 5월), 장명수 기자와 김훈 기자와 박래부 기자는 신문지면에 '문학기행'을 만들어 가면서 그 세월을 견디어냈다. 그것만이 치욕과 슬픔을 밥처럼 장복했던 그 참혹한 시절을 통과해가는, 우리들 직업의 선후배들의 성실성이며 꿈의 실천이었다.
--아, 우리들 청춘의 그 순결한 뼈의 가루를 갈아다 바친 한국일보는 얼마나 젊고 발랄한 신문인가,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끼리의 노동은 얼마나 아름답고 또 고단해서 눈물겨운 것인가
--그때(문학기행을 할 때)나는 매일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훈련만 잘 쌓아도 삶의 많은 숙제들을 큰 허물없이,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치러낼 수 있다는, 그 단순하고도 자명한 이치를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문학기행'은 1986년 봄 장명수선배의 남도여행에서 비롯된 기획이었고 그 기획 의도와 틀은 3년여에 걸친 연재기간 동안에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차례--
1.토지

멀리 지리산 자락이 펼쳐진 곳에 섬진강이 흐르고 평사리 들판이 보인다

2.고향

복원된 정지용 생가(초가와 잘 어울리는 감나무)

(26)정지용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돌연하고 가장 경쾌한 자세를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그 파행의 코스를 질주해나간 경기병이었다.
(27)'향수'의 고향은 근원 회귀와 그리움의 고향이고, '고향'의 고향은 상실과 환멸의 고향이다.
정지용의 고향은 그리워서 차라리 버리고 싶은 고향이다.
(34)모든 것이 거꾸러지고 막혀버렸고 언어만이 마지막 자기확인의 수단이었던 그 참혹한 시절에 정지용은 민족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였다.
(김훈 ㆍ박래부와 함께 나도 문학기행을 떠난다. 십수 년 전에 누구보다 열심히도 따라다닌 문학기행---이 코로나의 엄혹한 시절을 겪고 있으니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3.무녀도
(39)'무녀도'가 발표된 것은 김동리의 문단 데뷔 다음 해인 1936년, 그의 나이 23세 때였다. 꼭 50년이 지난 지금 예기소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그 위로 유구하면서도 슬프고 안타까운 샤머니즘의 물결을 흘려보내고 있다.(무녀도의 배경은 경주 예기소)
(40)"내가 문학에 뜻을 두었을 때는 일제의 조선 언어 문자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해 있을 때였다. 나는 문학을 통해 우리 언어를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민족의 깊은 뿌리를 당시 미신이라고 경멸하던 우리 고유의 샤머니즘에서 찾고자 했다"--김동리

4.돈황의 사랑

5.일월
(60)정치적 오염이 심했던 우리의 현대문학사에서 황순원의 문학은 순수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일관되게 간직해 왔으며, 작가 자신과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매우 특이한 서정적 가치를 발휘해 왔다.
순수한 것, 아름다운 것에로 경도되던 낭만주의 문학에서 출발한 그의 문학은 제2기인 6ㆍ25 체험 이후 짙은 좌절감으로 변했고, 제3기에 와서는 좌절로부터 다시 구원의 미학으로 변화돼 왔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제3기 문학은 그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일월'에 의해 열리게 되는데, 주인공 인철은 깊은 갈등에 빠지는 데서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같은 제2기적인 특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결국 좌절을 극복하고 구원에 도달하는 제 3기 최초의 인물이 된다. '일월('오랜세월'이라는뜻)'은 또한 경기도 광주와 진주, 서울 곳곳에 뚜렷한 현장을 남기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6.장길산
(70)그 큰 소설의 맨 앞과 맨 뒤에는 슬프고도 힘찬 한 토막의 이야기가 깃발처럼 매달려서 나부끼고 있는데, 그 앞 깃발은 황해도 장산곶의 매이고 뒷 깃발은 전남 화순의 운주사 미륵불이다. 장산곶의 매는, 꿈꾸기 때문에 흘려야 하는 피를 옳게 흘리는 자유의 매인데, 장길산의 넋이 되어 국토의 구석구석을 퍼덕이며 날다가 雲舟寺에 이르러 미륵불을 이룬다.
(77)장길산은 흔적도 기록도 없이 역사 속으로 실종되고 만다. 장길산, 그는 도대체 무엇을 이룩하고 간 것인가.
사랑도 혁명도 용화세상도,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길에서 태어난 장길산은 사랑과 용화세상으로 가는 '길'을 자신의 전 생애로 가르쳐 주고 갔다.
**소설 장길산:효종 말(재위1649~1659), 노비의 아들로 태어남. 구월산 광대들의 손에서 자람. 창기 묘옥을 만나 해로를 약속함.그러나 길산이 탈옥하고 와보니 묘옥은 달아나고 봉순이와 재가약을 맺음. 구월산 자비령을 근거로  양반의 세상을 끝내고 백성들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의지로 活貧에 나섬.(숙종(재위1674~1720)때 실존 인물, 大盜)

7.객주
(82)'객주'는 우리에게 유랑의 슬픔과 고단함을 가르쳐 주는 '길의 서정 소설'이면서, 商利와 의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조선조 보부상들의 폭력과 계략이 숨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상인소설이기도 하다. '객주'에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김동리 '역마'가 보여준 길의 서러운 서정이 있고. 전후의 미국작가 잭 게루악이 '路上에서'를 통해 보여주었던 길의 자유로움이 숨쉬고 있다.
(84)"등장인물 중 한 사람의 영웅도 만들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객주'에는 천봉삼ㆍ조성준ㆍ길소개ㆍ선돌이ㆍ매월이 ㆍ김학준 등 숱한 허구의 보부상들과 이용익ㆍ민비  ㆍ민겸호ㆍ민영익ㆍ대원군 등의 실존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세력은 광범위한 계층 이동이 이루어지던 19세기말, 전통적 농업사회에서 상업사회로의 이전을 선도했던 보부상 집단이며, 그중에서도 항상 정의롭고자 하는 인간군이다.
*풀어먹이다: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다
*소금바리
*방짜:놋그릇
(89)'객주'가 거둔 또 다른 문학적 성과:
그의 치밀한 저잣거리 묘사에서 주어지는 박물지적 지식과 토속어와 조선조 서민 언어가 싱싱한 생명력을 지닌 채 이 소설에서 재현되고 있다. 작가는 "언어를 채집하고 습득하여 다시 구사할 수 있기까지에는 언어에 대한 열정이라는 한 가지 방법이 있을뿐"이라고 말한다.
(89)김주영 작가가 '객주'를 쓰게 된 동기:
이 소설의 전체적 흐름을 구성하고 있는 저잣거리. 그 저잣거리에서 나는 감수성 많았던 소년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땀냄새가 푹푹 배어나는 상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들을 보아 왔었다. 명색 작가가 되면서 그 강렬했던 인상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배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백적인 강박감에 부대껴 왔었다. '객주'는 그런 강박감에 대한 하나의 해결이었다.
*객주의 배경:
임오군란이 일어나기 이태 전인 고종 17년(1880년)/경기도 광주 송파장의 으뜸가는 쇠살주 조성준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8.장난감 도시
(94)이동하의 장편소설/ '장난감 도시'는 종전 직후인 1950년대의 가난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우리 시대의 가장 슬픈 소설의 하나
(95)이동하의 소설이 보여주는 가난은 더 이상 가난할 수 없는 가난의 극한이다.그러나 이동하는 그 가난을 무기화하거나 증오의 감정으로 몰고가지 않는다.  또 이동하의 소설은 극한의 가난만이 유일한 삶의 조건이었을 때, 그 가난을 자신의 생명의 내부로 받아들여 가난으로써 삶의 내용을 이루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년의 고통과 슬픔을그저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은 이동하의 自傳이다. 이동하는 그것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96)배경:1955년 대구광역시 북구 고성동의 피난민 판자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장난감 도시'-이동하의 소설 속에서 나의 잊혀지지 않는 가난의 시절과 한 번 더 마주하고 싶다)
(100)상행열차 안에서 다시 읽은 이동하의 글은, 아늑하고 풍성한 고향에 관하여 이야기한 다른 어떤 글들보다도 명석하고도 영롱했다.

9.변방에 우짖는 새
(104)작가 현기영의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는 이러한 문학적 기저 위에 제주 이야기를 다룬 가장 방대한 산문이며  제주인의 변방적 삶과 운명을 제주인의 시각에서 가장 날카롭게 포착해 나간 작품이기도 하다. '변방에 우짖는 새'의 시간적 배경인 1800년대 말, 이 나라의 운명이 어느 곳 하나 '변방' 아닌 곳이 있었을까마는 작가는 자신의 고향 제주도가 변방 중에도 가장 척박한 극지였음을 높고 고통스런 목소리로 증언하고 있다.
'변방에 우짖는 새'는 전제정치 말기의 압정과 수탈, 그리고 폐쇄된 공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제주인들이 꿈꾸었던 찬란한 자유와, 운명에 저항하는 인물들이 필연적으로 밟고 지나가게 마련인 험난한 변방의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 1898년과 1901년 제주도 전 도민이 어느 편에 섰든 가담했고, 지금 50대 이상의 제주도 사람이라면 대부분 자라면서 그 얘기를 들었을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이 이 소설의 소재이다.
(112)작가 현기영은 "두 민란은 규모로 보나 쟁점의 심각성으로 보나 역사의 정당한 조명을 받아야 한다. 때문에 나는 이 작품에서 사건의 원형을 왜곡시킬까봐 문학적 상상력조차 삼갔다."고 밝히고 있다.

10.에미
윤흥길의 '에미'는 한국의 보편적인 어머니를 리얼리즘 문학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이 쏟아낸 피 위를 뒹굴며 자식을 낳아 기르는 '짐승'으로서의 여자이며 그리움ㆍ기다림ㆍ사랑ㆍ증오ㆍ외로움ㆍ가난ㆍ억눌림ㆍ복받침을 자신의 생명 속에 고스란히 수용해서 한의 종교를 세우는 '여신'으로서의 여자다. '짐승'과 '여신'이 합쳐져서 윤흥길의 에미를 이룬다. 그 '에미'는 세계의 표면에 나타나는 여자가 아니고, 세상이 뒤틀려 웅덩이가 팰 때마다 그 웅덩이에 스스로의 몸을 던져 엎드리는 여자다. 그 여자의 엎드린 등을 밟고 우리는 웅덩이를 건너간다.
배경:전북 익산시 삼기면 오룡리(속칭 옥실 마을)의 한 가난한 농가/미륵산ㆍ사자암ㆍ옥실마을의 석불사와 저수지
(박래부와 김훈이 번갈아 쓴 '문학기행'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가벼운 희열마저 느낀다. 경쟁심을 느끼지 않는 친구가 옆에서 재미난 얘기를 조근조근 들려주는 듯하다)

11.엄마의 말뚝
(내가 이 작품을 읽었던가,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2021년 9월에 읽고 얌전히 감상문까지 정리해 놓았다. 기억력이 이 정도니, 내가 말해 놓고도 언제 그랬느냐고 생뚱맞게 댓구를 해서 성질 급한 자식눔을 펄펄 뛰게 만든다, 아하~이 일을 어쩔 거나!)

12.그 바다 끓며 넘치며
(136)한승원의 소설 배경이 되는 그의 고향:전남 장흥군 관산ㆍ대덕앞 득량만의 쪽빛 바다와 그 해안선 일대(대덕읍 회진항에서 신상리2구에 이르는 5km의 해안선)
(140)한승원 소설을 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그가 작품의 구석구석에 감추어 놓은, 또는 드러내놓은 에로티시즘을 꼼꼼히 읽어내는 일이다. 한승원의 상상력 속에서 바다ㆍ숲ㆍ안개ㆍ골짜기ㆍ습지ㆍ해조음ㆍ또는 바닷가 응달에서식하고 있는 수많은 벌레들은 모두 다 색정적인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그의 에로티시즘은 바다와 그 연안에 가득찬 것인데, 그의 에로티시즘은 자연과의 행복과 교감을 바탕에 깔고 있어 읽는 사람을 달뜨게 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해 준다.

13.지리산
(146)'역사의 그물로 파악하지 못한 민족의 슬픔의 의미를 모색하는것'을 문학적 신념으로 삼고 있는 작가가 1972년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순교할 각오'를 부연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지리산' 기슭에서 결코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는 역사적 통찰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한다.
(147)진주중학은 지난 1951년 중ㆍ고로 분리된 채 진주시 북쪽 상봉동의 나지막한 비봉산 아래의 옛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148)지리산의 등장인물 20여 명은 실존 인물들이 모델이다. 박태영은 물론 그가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을 한사코 만류하던 애인 김숙자 ㆍ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예견하던 허무주의자 권창혁  하영근  하준규  주광중  식민지 교육이지만 인간적이고자 애쓰던 일본인 교장 하라다 ㆍ 교사 구사마가 모두 그러하다. 작가 자신은 '양지쪽으로만 걷는 인간, 위난이 저편에서 피해 가는 사람' 이규에 해당한다.
(154)지리산에는 15년 만에 작품을 완성한 작가의 문학적 신념과 엄청난 자료 수집 취재의 흔적들도스며 있다.--그는 지리산의 주제는'선동과 조정을 받아 그 많은 청년들이 공비라는 이름으로 죽어야 했던 데 대한 의분'이라고 소설의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14.아메리카
(158)조해일의 중편소설 '아메리카'는 도움받는다는 것의 근원적인 상처 앞에서, 그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그 위에서 기어코 삶을 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또 그 소설은 동두천의 미군 전용클럽의 문지기로 취직한 한 지식인 청년이 그곳 위안부들의 삶의 아픔과 진실을 통해서 역사의 고난을 자신의 삶 속에 수용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지식인 청년은 역사가 할퀴고 간 상처를 자기화함으로써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자아를 청산하고 동참자로서의 도덕성을 획득한다. 한국현대사의 가장 쓰라린 한 부분을 다루고 있는 그 소설은 그러나 명랑한 천진성과  따뜻한 비젼을 담고 있다.
(159)배경:동두천읍 보산리(동두천시 보산동)

15.소시민
(168)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1950년 12월 9일 저녁, 당시 18세의 작가 지망생이던 이호철은 단신으로 미해군이 제공한 LST수송선을  타고 고향인 원산을 등졌다. 하룻밤이 지난 10일 미명에 부산에 도착한 그는 6ㆍ25가 빚어낸 외로운 실향민으로서, 남포동 일대 부두 노동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불안한 시대 상황과  낯선 풍물 속에서, 그리고 메마른 인정 속에서 충분한 자기 방어 능력을 갖추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던 그는 오직 스스로의 근육에 의지해서 한 생애를 건설해야 하는 조숙한 삶을 이뤄가야 했으니, 그때의 체험이 데뷔작인 단편소설 '탈향'과 첫 장편소설 '소시민'의 내용이다.
(169)작가는 "내가 부산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과 2년 동안이었지만 그곳에서 부두노동자 ㆍ국수공장 직공ㆍ 미군부대 경비원 등을 거치며 고생하던 생활이 워낙 밀도 있는 것이어서 늘 그곳 생각이 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73)소시민은 피난지 부산에서 겪는 실향민들의 고된 삶을 다루고 있는 유일한 장편소설인 셈인데, 등장 인물들의 희화적이고 과장된 몸짓들 뒤로는 실향민들의 향수에 젖은 쓸쓸함과 허망함이 짙게 배어 있다.
**소시민:노동자와 자본가의 중간에 위치하는 소생산자, 소상인 및 봉급생활자, 자유직업자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16.무진기행
(178)김승옥의 산문은 바다 또는 바다에 연한 소도시에 관하여 서술할 때 가장 명징한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김승옥의 바다는, 때로는 카뮈의 에세이들이 그려내는 알제리의 바다처럼 생의 작렬감에 가득찬 바다이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도시(=현실)와의 불화의 관계 위에 설정된 자폐의 공간이다. 김승옥의 많은 젊은 주인공들은 바다에서의 갱생을 꿈꾸며 바다에 갔다가 바다에서 죽는다. 그 바다는 소설 속에서는 수많은 이미지들에 의해 모자이크된 가공의 바다이고, 지도 위에서는 김승옥이 유년기와 소년시절을 보냈던 여수 앞바다 ㆍ순천만ㆍ광양만의 바다이다.
(179)'무진'은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이지만, 작가는그곳이 "전남 순천과 순천만에 연한 대대포 앞바다와 그 갯벌"이라고 일러준다.
(182)작가는 자신의 생애 중 가장 슬픈 시절에 문학사적 소설 '무진기행'을 썼다.
(184)김승옥은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 4학년 때 결혼을 약속한 여자에게 배신당하고 학교를 휴학한 채 고향 순천으로 내려와 '골방에 처박혀' 이 작품을 썼다.
(왜 이 대목에서 픽 웃음이 터지는 걸까? 그의 글이 퇴폐적인 냄새를 풍기기까지 하고 자포자기한 인물들이 많이 보여 못마땅했던 이유를 알게 되어서였나?  나는 김훈의 가이드를 통해서 겨우 김승옥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그의 문체가 아름답다는 사실도. 그리고 내 안에 '문학사대주의'가 도사린 것도 보았다.)
(185)인간은 남의 고귀함을 참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 내부의 근원적인 비천함은 남을 비천하게 만들어 놓고서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김승옥은 그런 상상에 빠져 있었다고 말한다. 그 상상은 작품 속에서 명석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김승옥은 그 비천함에 대하여  "나는 내 자신의 분신이 아닌 단 한 줄의 글도 쓸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이 비천함은 결국 나의 내부에 있는, 내 자신의 비천함이다"라고  말했다.

17.요한시집
(192)장용학은  과거의 통념적인 소설기법을 무시하고 관념론적인 소설방법론을 추구했던, 우리 문학사에서 매우 이색적이고 특이한 작가이다. 그의 주요 소설들은 '현실 묘사'와 '관념의 서술'이라는 2개의 다리에 의지해 우리의 참담한 시대를 지나왔다. 6 25의 한가운데서 씌어진 그의 대표작 '요한시집'은 그가 관념소설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도달하고자 한 목표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목표'가 아니라 '목표의 윤곽'에 머물고 마는 것은 이 작품이 미완의 소설이기 때문이다.--당시의 지적풍토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인색했기 때문에 첫 회만 발표하고 말았다.
(194)1947년 공산치하가 싫고 희곡을 쓰고 싶어 월남했던 그는 6ㆍ25 중에는 부산에 피난학교를 연 무학여고 교사로 근무하면서 노모와 함께 살았다. 그와 노모가 살았던 판잣집은 학교에서 지어준 것인데 당시 무학여고ㆍ사대부고ㆍ숭문고의 천막학교가 보수산 중턱에 나란히 서 있었고, 교사들이 거주하는 판잣집들도 그 주변에 옹기종기 들어서 있었다.
(199)작가는 "실존주의와 그 문학이 전혀 새로운 사상이나 경향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구토'를 읽었을 때 나는 암중모색하던 무의식의 방황이 끝나면서 의식에 이르는 다리가 놓여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흥분 속에서 쓰고 싶은 대로 마구 써 나갔다. 그것이 '요한시집'이었다"고 회상했다.
(대학도서관에 앉아 한자가 가득한 '원형의 전설'을 몰입하며 읽던 기억이 새롭다. )

18.태평양
(204)이제하의 초기소설 '태평양'은 6ㆍ25라는 파괴적인 역사 속에서 조숙해진 소년들과 자신의 육신은 지병으로 허물어져 가면서도 이들의 시대적 불안ㆍ반항심리를 감싸안으며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자 했던 스승과의 만남을 그린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황폐한 시대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스승과 제자들간의 갈등과 정신적 유대를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소설은 어린 시절에 겪게 되는 내밀한 기쁨과 슬픔, 크고 작은 상처들을 어른의 시각에서 객관화하고 있는 대부분의 성장소설과는 다르다.
(205)'태평양'의 무대는 그가 성장시절을 보냈던 경남 마산시와 마산고등학교 마산 앞바다이고, 소설 속의 교장은 마산고에 1950년부터 6년 동안 봉직했던 이상철 교장이 모델이다. 마산고 15회 졸업생인 작가는 "학교 건물이 전쟁으로 중상을 입은 환자와 상이군인ㆍ결핵환자를 수용하는 군병원으로 징발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늘 옮겨다니며 닥치는 대로 공부를 해야했다."고 회상했다
(209)작가가 만났던 이 큰 스승(이상철 교장)은 그후 경상남도 학무과장, 경남여고교장을 거쳐 지난 1961년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향년47세. '그의 죽음의 장지에 이르는 긴 행렬은 오열의 바다였다.'고 이 학교 출신 노재봉(전국무총리)씨는  전하고 있다.
(상상만으로도 감격스럽다. 요새는 다 제가 젤루 잘난 세상이라서인가, 고개 숙여 절하고 싶은 어른도 보이질 않고 그런 장례행렬조차 볼 수 없다.)

19.황제를 위하여
(214)이문열의 글쓰기는 '지우기'의 글쓰기다. 이 말은 그의 가장 중요한 소설일 '황제를 위하여'와 '영웅시대'에 대하여 유효하다. '영웅시대'에서 이문열은 이데올로기에 의한 죽기 살기의 역사를 지웠고, '황제를 위하여'에서는 조선조의 멸망 이후 한국 현대사 전체를 지웠다. 지우려고 덤벼들었다. 이문열은 지워내는 것만큼 세우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황제를 위하여'의 지우개는 정감록이다. 이 소설은 정감록에 기록된 참언에 의지하여 한국현대사 속의仁과 義의 나라를 세우려 했던 '황제'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다. 가장 명료한 세계관을 가진 그 황제는, 그러나 미치광이다.
배경:계룡산과 신도안 일대/흰돌머리마을

20.분례기
(226)방영웅의 대표작 '분례기'는 그가 가난한 소년 시절을 보냈던 충남 예산시 예산읍이 무대이다.
(227)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자니 돈이 없었다. 신춘문예에 당선한 후 그 상금으로 입학금을 마련해 보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해마다 떨어졌다. 어렸을 때 겪은 가난보다 그때의 사정은 더 절박했다. 모든 상황은 내가 죽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이제 죽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정신이 맑아져 왔고, 그때 쓴 것이 '분례기'였다.
(232)평론가들은 '분례기'가 지닌 문학적 성과를 '불행한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 외에도 그의 표현이 갖는 뛰어난 토착성에서 찾고 있다. '분례기'에는 어느 작가도 따라가기 어려운 농촌 토속어와 속담, 민요 등이 가득히, 그리고 눈부시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21.모래톱 이야기
배경:부산 사하구 하단동 하단 나루터/을숙도ㆍ일웅도
(243)"1936년에 절의 횡포를 고발한 '寺下村'으로 데뷔하고 나서 근처 큰 절에서 고용한 불량배들에게 크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실제 지명은 될 수 있는대로 피해 왔다."고 작가는 말했다.

22.몽실언니
(248)소년소설 '몽실언니'는 1984년 초판이 나온 이후 42판을 거듭 발행했다. 소년들이 너나없이 국영수나 디지털로 내몰리는 시대에 '몽실언니'의 성공은 놀라운 문학 현상으로 꼽힌다. 그리고 소년소설 '몽실언니'를 읽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소년이 아니라 50대를 넘긴 초로의 독자들이라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349)'몽실언니'의 배경은 어느 특정한 마을과 산천이라기보다는 작가 귄정생의 생애이다. 그의 한평생의 가난과 외로움은 가히 설화적이다. 그리고 지어낸 이야기만 같은 그 설화적 고통은 지난 한 세기동안 수많은 한국인들의 현실이었다. 이 시대는 이미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으며 어떠한 상처가 남아 있는가를 되돌아보려고 하지 않지만, 많은 할머니들이 울면서 이 소년소설을 읽는다.
(253)이 나라 산천 구석구석에 힘세고 아름다운 '몽실언니'들은 너무나도 많다. 작가 권정생은 "깡통을 차고 헤맬 때도 인간이 아름다워서 눈물겨웠다"라고 말했다.

23.일하는 아이들
(259)어린이들이 생활에서 우러난 글쓰기를 할 때 '어린이는 모두 시인'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려 한 책이 그가 엮은 농촌아이들의 시모음집 '일하는 아이들'과 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등이다. 경북 안동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농촌의 어린이들은 이 책들에서 투박하지만 자신의 느낌과 정서에 정직한 목소리로, 또한 도시문명에 주눅들지 않은 싱싱하고 당당한 육성으로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농촌의 자연, 일과 뗄 수 없는 자신들의 생활조건 등을 기록하고 노래하고 있다.
(265)비료지기
--안동 대곡분교 3년 정장교/70.6.13
아버지하고
동장네 집에 가서
비료를 지고 오는데
하도 무거워서
눈물이 나왔다
오다가 쉬는데
애들이 장교 비료 지고 간다 한다
내가 제비 보고
제비야,
비료 져다 우리집에
갖다 다오 하니
아무 말 안 한다.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나는 슬픈 생각이 났다.

24.만다라
(268)김성동의 장편소설 '만다라'는 입산에서부터 환속까지 10년간의 체험이 담겨 있는 그의 자전적 소설이다. 참선과 고행과 방랑을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절대적 자유의 세계, 성불에의 희망은 멀고 번뇌는 끝나지 않을 때 느껴지는 허무와 비애, 세상의 모든 슬픔을 보는 아픔과 그에 대한 항변, 이루지 못한 지난 날 사랑의 흔적 등 젊은 구도자들의 강렬한 메시지와 감각을 담은 '만다라'는 우리 문학사에 오랜만에 떠오른 불교소설이기도 하다.
(271)문학기행의 대상지:도봉산  천축사와 서울역
(275)김성동은 '만다라'의 모체가 되는 단편소설 '목탁조'를 입산 9년만인 지난 75년 '주간종교'지에 응모하여 당선했으나, 그 결과 '이 소설은 악의적으로 불교계를 비방하고 승려들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승적을 박탈당했다. 작가는 자신이 등장시켰던 인물들처럼 몇 개월을 승적없는 승려로 떠돌다가 그 다음해인 1976년 결국 환속했다.
(이 사건은, 이 땅에 종교소설이 꽃을 피울 수없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25.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전경린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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