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은퇴자마을 강원도 양구 두 달살이

박수근 미술관--양구살이 열흘

맑은 바람 2022. 3. 19. 07:51

2022년 3월 19일 (토)  눈 오다 갬 3도~영하 7도

사람이 없다. 길에 사람이 없다.만나면 반갑게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데 사람이 없다. 학교 운동장에도,거리에서도 학생을 볼 수 없다.손잡고 몰려다니는 어린아이들도 없다. 버스를 타도 승객이 많아야 두세 명--도처에 집들이 있건만 걸어다니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이상한 나라에 와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삼월의 눈
숙소 뒤뜰

오늘은 카카오맵에 팔랑1리에서 1시간 6분 소요된다는 '박수근미술관'을 혼자 찾아가 보기로 한다.
9시40분 버스를 타러 나서는데  제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시내 나가는 길에 미술관 앞에 내려주겠다고.

눈비가 오락가락하는 중에 미술관앞 하차.
매표소를 거쳐 전시실로 들어간다.전시장은 모름지기 혼자 가야 한다. 동행이 있으면 아무래도 작품 앞에서 머무는 시각이 제각각이라 불편할 수밖에 없다.
느긋하고 자유롭게 작품 감상을 하고 선생의 묘까지 올라가 보았다.

가난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평생 한우물을 판 점은 고개숙일 만하지만, 낙선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술에 빠져 몸을 망치고 실명까지 한 일은 딱하고 안타깝다.
드넓은 터에 조성된 공원을 한바퀴 돌고 '수근수근카페'로 갔다.
생강차를 마시며 카페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차, 하루에 4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놓치면 큰일인데~
시간을 보니 1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7분을 남겨놓았다.-후딱 계산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와 차에 올랐다.

*박완서--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실명소설)인용
(264--266)내 눈에 비친 박수근:
평군치의 한국인 얼굴에다 목소리는 낮았고 남을 웃기는 재담도 할 줄 몰랐고, 신랄한 독설가는 더군다나 아니었다./그가 간판장이들과 달라야 한다는 건 나의 희망사항일뿐 그는 간판장이들보다 더 간판장이다웠다./예술적 고뇌 대신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한다는 노동의 충족감이었고, 우울한 정열 대신 단순 노동의 평화였다./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순하고 덤덤한 데 있었고 그런 것은 나타나기보다는 숨어있는 특색이었다./초상화부 화가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가난했고 하고 다니는 꼴도 한물감으로 칠해 놓은 것처럼 궁상맞아 보였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의젓함이 있었다. 다들 늘 돈,돈.돈, 했고 한푼에 치를 떨었고, 자기 그림이 빠꾸당하면 불같이 화를 내느라 딴그림까지 망쳐 놓기 일쑤였다. 박수근의 가난엔 그런 조바심이 없었다./그는 내가 몽상한 천재적인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가 만약 천재였다면 사는 일을 위해 예술을 희생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예술보다는 사는 일을 우선했다. 그가 가장 사랑한 것도 아마 예술이 아니라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는 일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재주로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뿐이었다./자칭 돈벌 구멍하나는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눈을 타고났다는 허사장도 그를 알아보진 못했다. 그 생각만 하면 언제나 웃음이 난다. 그건 박수근이 남겨준 유일한 농담이다.

비구름은 어느새 물러가고 파란하늘이 나타났다.
'지게마을'에서 차를 내려 팔랑계곡 옆 데크를 따라 걸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낭랑면서도 힘찼다.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오늘 만난 사람들:미술관 매표소 직원/엄마아빠 손잡은 아가/카페여주인/버스 기사와 승객 2명 (4962보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