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1. 5
지난 연말, 3박4일의 여행을 떠났다.
남도답사 일 번지 월출산의 도갑사, 무위사를 보고, 양산 통도사를 거쳐 소위 토끼꼬리 부분 이라는 구룡포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부두 공판장엔 갓 잡아 올린 구룡포 홍게 수백 마리가 임자를 기다리며 나란히 줄지어 누워 있었다. 모두들 독이 바짝 오른 듯이 다리를 빳빳하게 하늘로 쳐들고 있어, 건드리기만 하면 물어뜯을 기세다.
입맛 당기는 횟집을 고르자고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데, 눈매도 입매도 유난히 고운 새댁(안에 있는 노친네더러 어머님, 어머님 하는 걸로 미루어)이 경상도 사투리 같지 않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우릴 부른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 이 집으로!
멍게와 해삼을 한 접시 시켰더니 이 고장 특산물인 과메기를 안 먹겠냐는 것이다. 그만두면 서운할 것 같아 맛만 보게 조금만 달라고 했다. 아까 보아 두었던 홍게도 하나 삶아 달라 하고.
과메기를 처음 먹어본다고 했더니 새댁이 먹는 방법을 친절히 일러준다. 마른 김에 미역을 얹고 그 위에 양파와 실파를 된장 찍어 올려놓고 과메기에 초고추장을 발라 함께 싸 먹으란다.
약간 비린 듯하면서도 쫀득쫀득한 맛이 꽤 괜찮았다.
정신없이 집어먹다가 노친네한테 물었다.
"과메기란 생선이 따로 있나요?"
"예? 아∼ 예."
"근데 비린 거나 생긴 게 꽁치 비슷하네요?"
"거, 꽁치 말린 거이 과메기니더!"
"………"
잠시 후 삶은 홍게가 나왔다. 3만원 짜리라는데 몸통이 내 손바닥의 반 만했다. 다리는 벌써 한두 개 떨어져 나간 채로 나머지 다리 살을 열심히 빼먹었다.
몸통은 갈라서 밥 비벼 먹으라고 좀 전에 새댁이 일러준 게 생각이 나서 노친네더러 밥 좀 달라고 했다.
어떻게 먹는 거냐 물으니, 몸소 다가와 뚜껑을 가르고 등껍질 속의 내용물을 숟갈로 알뜰히 파내더니, 눈 깜짝할 새 숟갈이 노친네 입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숟갈로 노친네는 밥을 한 숟갈 두 숟갈 퍼 넣고 요리조리 골고루 비비더니 그 숟갈을 내게 불쑥 내밀며,
"이제 자셔 보소." 한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내가 무얼 잘못 보았나 하며 한두 숟갈 퍼 넣다가 아무래도 꺼림칙해 슬그머니 숟갈을 바꾸었다. 한 마디 하고 싶었으나 왠지 그 상황에서는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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