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장미꽃 열 송이

맑은 바람 2022. 11. 13. 16:58

스승의 날 임시 휴교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촌지' 때문이라는 둥, 며칠 전부터 언론이 입을 모아 떠들어대며 교사들을 싸잡아 죄인 만들더니, 오늘 이메일을 열어보니 대통령각하께서 친히 '스승님께 감사 드린다'는 편지를 보내오셨다.

눈물나게(?)고맙다.

나를 포함해 주위를 둘러보아도 촌지에 연연하는 선생들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자기 아이에 대한 병적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학부모와 학부모에 대해 거지근성을 가진 몇몇 선생들의 합작품이 '촌지'이건만, 어찌 해마다 이를 들먹거려 선생들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는가.

우리 학교도 이 꼴 저 꼴 안 보려고 몇 차례 부장회의를 했다.

그러나 행정직에 오래 근무했던 교장은 교육법까지 들먹이며 천재지변이 아니면 휴교는 불가하다고 우기는 바람에 '행사를 위한 행사'-학부모들이나 기자나리가 그 난장판 일보 직전의 행사를 보면 또 뭐라 했을까-를 치러야 했다.

아이들이 용돈 풀어 사온 꽃 한 송이도 거절할 수 없어, 받아 두었다가 꽃병에 꽂으려니 이 일이 또 만만치가 않다.

꽃송이마다 무슨 옷들을 그리 겹겹이 입고 있는지 열 송이 꽃을 화병에 꽂는데 꼬박 30분이 걸렸다.

우선 꽃의 목을 바짝 조른 리본의 철사를 풀어낸다.

다음, 위아래 두 군데 철사 줄로 감긴 종이주름 롱 드레스를 벗기면, 다시 목 언저리의 망사천을 걷어내야 한다.

역시 철사 줄로 단단히 묶인 것을, 인내심을 가지고 풀어야 꽃이 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투명 비닐 속옷을 벗겨야 한다.

여기저기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놓아 뜯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 전 과정을 밟아 나갈려니 슬슬 열이 나며 콧등에 땀이 밴다. 속이 부글거린다.

도무지 몇 푼 더 받으려고 이런 낭비를 한 것일까.

쓰레기통을 보니 포장지가 한 무더기 수북하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런저런 사람들 생각으로 이번 스승의 날도 무참히 구겨졌다.(200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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