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내가 블로그를 만든 이유

맑은 바람 2022. 11. 18. 22:57

시 한편에 삼 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이하 생략)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의 일부

 

 

시인 되면 어떻게 되는 거유

돈푼깨나 들어오우

 

그래, 살 맛 난다

원고 청탁 쏟아져 어디 줄까 고민이고

평론가들, 술 사겠다고 줄 선다

그뿐이냐

베스트셀러 되어 봐라

연예인, 우습다

 

하지만

오늘 나는

돌아갈 차비가 없다

-한명희의 ‘등단 이후

 

나는 2007년 가을 어느 날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함으로써 글 한편으로 단박에 수필가가 되었다. 뜻밖의 사건이었다. 글 한편에 100만원이 넘는 상금도 받고 또 에세이플러스라는 잡지를 통해 수필가로 탄생한 것이다. 다니던 수필교실에서도 신인상을 받게 되어 졸지에 상패를 두 개나 거머쥐게 되었다.

지인들의 연이은 축하파티도 나를 흥분시키고 우쭐하게 만들었다.

, 이제부터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구나, 용돈은 좀 들어오겠는데~’

그러나 등단과정에서 나는 내 글이 실린 책을 백 권씩 사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얼마 뒤 두 잡지에 또 한 편씩 글이 실리면서 나는 또 집으로 배달된 한 무더기 잡지의 값을 지불했다.

읽어줄 사람을 생각하며 차일피일하다 달이 지나고 계절이 가고 나니 시효가 지난(?) 책을 읽어보라고 자랑스럽게 건네줄 수가 없었다. 거실 한구석에서 이제나저제나 좋은 독자를 만나러 가려고 기다리던 책들을 꽁꽁 묶어 넝마주이의 손에 넘겨야 할 판이다. 비싼 폐휴지 값을 치른 셈이다.

 

등단 직후 어느 자리에서 무안을 당한 생각이 난다.

시를 지도하는 선생이,

이제 작가가 됐으니 수필 한 편 써오면 잡지에 실어줘야겠군.” 하길래 나는 덥석,

원고료 얼마 주실 건데요?” 했더니, 가당찮다는 표정이 스치면서 새파란 초짜가 돈부터 밝힌다며 핀잔을 준다.

 

.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되지도 않은 글을 가지고 흥정부터 한 셈이니, 평생 글을 쓰면서 살아온 선생으로서는 내가 딱하기 그지없는 인간으로 보였던 거다.

물론 누가 글을 쓰라고 떠미는 것도 아닌데 저 혼자 글 쓰는 일이 즐거워서 재미 삼아 하는 일이긴 하지만 글 쓰고 또 내 글 읽어 달라고 돈 쓰고 하는 일이 아무래도 우습긴 하다.

 

이런 갈등을 느끼던 차에 누가 블로그 만드는 일에 대한 정보를 주어 나는 마침내 길을 찾게 된 것이다.

애초에 블로그의 필요를 느낀 것은, 평소에 사진 따로 글 따로 있는 걸 한데 모아 놓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이왕이면 글마당을 열어 놓아 함께 공감하는 것 또한 나쁠 게 없지 않은가?

굳이 읽어 달라고 책 사서 디밀 필요도 없고, 보거나 말거나 그건 읽는 이의 선택에 맡기고, 나는 쓰고 싶으면 쓰고 아니면 말고 부담 없이 자유자재로우니 피차 좋은 일 아니겠는가! (2008.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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