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브라운 지음/최준석 옮김/나무심는사람/1970년에 쓰고 1971년에 출간/2000년에 고쳐쓰고 2002년7월 1판1쇄/ 2002년 11월 1판 4쇄/701쪽/읽은때 2023년 2월9일~2월 28일
**저자 소개는 없고. 역자 소개만 있는 책
디 브라운(1908~2002)미국, 어릴적 인디언친구들과 가까이 지냈다.
--미국 인디언 멸망사
1860년에서 1890년까지의 30년의 기록/ 철저한 사실을 바탕으로 미국 인디언들의 멸망 과정을 손에 잡힐듯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폭력과 협잡, 죽음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나라 미국의 추악한 이면을, 그 핏빛 역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기록문학의 걸작이다/선교사와 군인들을 몰고온 백인들에 의해 처절하게 무너지는 과정과 그 멸망의 과정에서 인디언들이 보여준 위대한 투쟁과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마치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 저미는 슬픔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게 한다./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 미국 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기 실린 비운의 역사는 전세계 양심적인 지식인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인디언역사서 가운데 고적으로 손꼽히게되었다.--책표지 내용 안내
16.유트족도 가라!
*유트족은 로키 산맥에 사는 산악 부족이었다.
(580)미군은 수우족을 정복했다.그러니 그들을 심하게 다뤄도 된다. 그러나 우리 유트족은 백인들에게 훼방을 놓은 적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당신네 방식에 익숙해질때까지 기다려 줘야 된다.--유트족 추장 우레이(화살)/일곱지파의 대표로 그는 아파치와 운콤파그레 유트족의 혼혈로 얼굴이 둥글고 눈은 날카로운 잘생긴 인디언이었다.그는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하고 판단력이 뛰어났다./그는 언론에 말했다."인디언이 미국정부와 조약을 맺는 것은 화살에 꿰인 들소가 사냥꾼과 조약을 맺는 것과 같다.들소가 할 수 있는 것은 드러누워 항복하는 길밖에 없다."
(580-1)나는 이것을 아주 잘못된일이라고, 인디언 문제 담당관이 그런 지시를 내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장교에게 항의했다.우리는 형제이기 때문에 싸우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고 얘기했다.그러나 장교는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고,미국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더라도 싸운다고 말했다.--화이트강 유트족의 니카아가트(잭)
(587)유트족이 누리던 주거지역의 자유가 종말을 고하기 시작한 것은 1878년 봄,네이선 미커가 새주재관으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그는 우월한 인종의 일원으로서 유트족을 깨우치고 개조시키는 것을 자신의 숭고한 새 임무로 삼고 선교사적인 열정으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자신의 결심은 인디언들을 야만의 상태에서 목축의 단계를 거쳐 결국에는 "개화되고 과학적이며종교적인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것이었다.
(593)미커와 유트족의 관계가 완전히 파경에 이른 것은 그의 인디언에 대한 계획과 관찰 기록을 신문지상에 발표하려는 미커의 끊을수 없는 욕망 때문이었다./그릴리 트리뷴 지에 "이 땅(유트족 주거지역)을 사용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멀리 있는 백인들이 들어와 당신네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고 미커는 썼다.
(594-595)덴버의 편집자 윌리엄 비커스:
유트족의 땅을 거저 빼앗으려는 음모를 가지고 유트족을 모함한다.
"유트족은 사실상 공산주의자들이다. 정부는 그들을 입히고 먹여주는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꾸 그렇게 부추기니까 게을러 빠지고 재물을 멋대로 낭비하는 것이다.아버지 같은, 그러나 천치같은 인디언국의 자비에 빌붙어 이 기생충들은 점점 나태해진다.이들을 인디언령으로 보내면 지금 드는 경비의 절반만 쓰고서도 충분할 것이다."
비커스가 쓴 기사는 '유트족도 가라!'는 제하에 콜로라도 각지의 신문에 전재되었다.
(612--613)유트족 몰아내기:
마침내 전체 유트족 7개 부족에게 벌을 내려 1200만 에이커에서 그들을 몰아내어 그 땅을 파내고 댐을 만들고 삼림을 베어 넘겨 한몫잡는 것만이 초미의 일이었다./1881년 8월, 추장 우레이 신장염으로 죽음/소수의 남부 유트족에게 허용된 남서부한 귀퉁이 손바닥만한 땅 이외에는 콜로라도에서 인디언의 자취는 말끔히 지워졌다.
17.아피치 추장의 최후
*1880년 미국인구 50,155,783명
*1881년 3월 13일 러시아의 니힐리스트들, 알렉산더 황제 암살
*1882년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 발간
*1883년 11월3일 미대법원, 인디언이 태어날 때부터 이방인이고 부속물이라고 판결
*로버트 스티븐슨 '보물섬' 발간
*1886년 10월28일 자유의 여신상, 베들로 섬에 세워짐
(615-616)고야슬레이(제로니모)의 탄원:
나는 먹을 것도 많고 잠도 잘 자 아주 흡족한 상태로 부족을 돌보며 가족과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나는 남에게 누가 될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말을 죽이지 않았고 인디언이건 미국인이건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우리를 맡고 있던 사람들은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나쁘고 그것도 아주 최고로 못된 놈이라고 말했다. 나는 빛과 어둠 그리고 하느님과 태양에게 가족과 조용히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618)정부의 강제 이주 명령:
치리카우아족은 명령에 따라 산 카를로스로 가기도 했지만, 절반 정도는 멕시코로 도망갔다.
(620-621)고야슬레이(제로니모):
베돈코헤 아파치/46세/치리카우아족이 된 역전의 용사/멕시코로 달아난 이들의 지도자 중 하나/제로니모가 이끄는 아파치 약탈대는 옛날부터 숙적인 멕시코인들을 여러 차례 습격해 상당한 소와 말을 지니고 있었다./그는 그것들을 팔아 총과 모자 구두, 위스키 등을 사왔다.
(630-637,)회색늑대 조지 크룩 장군:
그는 변했다.선곰의 재판 때 '인디언도 사람이다'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그는 주거지역 아파치가 불만을 가질 이유가 충분할 뿐 아니라 화평을 유지하려고 하는 일에 놀랄 만한 인내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었다./그 옛날 인디언들을 가혹하게 다루던 회색늑대가 변한 걸 알자 아파치족은 크룩의 말을 신뢰하고 따랐다./멕시코를 넘나드는 제로니모 일파들에 대해서도 "이들을 공정하게 대우하고 백인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여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인정했다./인디언은 앞으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러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한다고 제로니모를 설득한 크룩은 말했다 "나는 그대의 무기를 빼앗지 않겠다.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631)백인들은 고의로 아파치족을 도발해 격한 행동을 저지르도록 조장하고 있었다.
(639)(농사일밖에 할 일이 없는 인디언들은 옥수수술을 만들어 마시고 놀음에 빠졌다./인디언 대변인이 된 크룩장군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백인들이 늘어나면서 크룩을 곤경에 빠트렸다.)
(639)제로니모의 탈주와 투항:
자신을 잡아죽이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제로니모는 무리를 이끌고 멕시코로 탈주한다./그러나 집요하게 추적하는 크릭에게 마침내 무조건 투항한다.
"나를 당신에게 넘깁니다. 마음대로 하시오.한때 나는 바람처럼 떠돌아다녔소. 이제 당신에게 투항합니다. 이게 다요."
(642)알치스의 투항:
알치스는 그의 형제들이 크룩에게 저지른 실수를 용서해 주기를 간청한다.
"이 사람들은 이제 모두 좋은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들이 투항해서 기쁩니다. 모두 같은 부족인이고 모두 나와 한 가족이니 말이오. 사슴을 죽일 때 그 모든 부분이 한 몸이듯 치리카우아족도 그와 똑같소.--이제 우리는 산속에서 숨어 지내지 않고 넓은 길을 나다니며 미국인과 같은 시냇물을 마시고 싶소.--위험이나 불안없이 살았으면 좋겠소.--치리카우아족이 투항해 내가 이들을 위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주 기쁘오./당신이 먼저 보위 요새로 갈 것이니 오늘 여기서 말한 것을 당신의 호주머니에 모두 담아가기 바랍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돈을 버는 투산 링 일당의 말에 속아 제로니모는 다시 멕시코로 발을 돌린다)
(644)곰외투 넬슨 마일스 준장:크룩은 문책 당한 후 사임하고, 새 아리조나 사령관이 부임했다./그는 제로니모와 인디언 전사 24명을 잡아들이려고, 미군 전투 병력의 1/3에 해당하는 미군 5천명을 투입했다. 게다가 5백명의 아파치 정찰병과 수천 명의 비정규 민병까지동원했다.
(꼭지가 돌면 이 정도로 하는가 보다.)
(646)제로니모 수감되다:제로니모는 플로리다의 마리온 요새에 수감된 후 이미 수감 중인 아파치족이 기후와 여건이 맞지 않아 폐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다./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칼라일의 인디언학교에 보내졌으나 거기서도 많이 죽었다./치라카우아족은 멸족되어야 할 운명이었다.그들은 너무 결사적으로 싸워 백인의 반감을 샀던 것이다.
(647)아파치 최후의 추장 제로니모의 죽음:
1894년 제로니모는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실 요새에 이감되어 1909년 여전히 포로의 몸으로 죽었다.
18.망령의 춤
*1887년6월2일 영국 빅토리아 여왕 즉위 50주년 축하
*7월2일~4일, 남북참전병사들,게티즈 버그에서 재회
*1889년 5월31일,존스타운 홍수로 5천 명 익사.
(650)망령의 춤 지도자 워보카, 파이우트족의 메시아의 말:
인디언은 모두 춤춰야 한다.언제 어디서나 계속 춤을 춰야 한다. 내년에 봄이 오면 위대한 정령이 오시리라. 온갖 짐승들을 데리고 오시리라. 들짐승은 어디서나 가득 뛰놀고 죽은 인디언은 모두 다시 살아나 젊은사람같이 튼튼해지리라.늙은 사람은 젊어지고 눈 먼 사람은 눈을 뜨며 좋은 시절을 맞이하리라. 위대한 정령이 이 길로 오실 때 인디언은 백인들에게서 벗어나 높이 산으로 오르리. 백인은 인디언을 해칠 수 없구나. 인디언이 높은 곳에 오르고 나면 큰 홍수가지리라. 모든 백인들은 물에 빠져죽는구나. 물은 흘러가고 지상엔 인디언과 짐승들만 남으리니. 마술사는 계속해 춤추라고 신탁을 내리며 화청한 날이 열리리라. 춤추지 않고 내 말을 믿지 않는 인디언들에게 화있을진저.
(히브리인들이 노예 시절 메시아를 갈망했듯이,땅을 뺏기고 노예보다 못한 삶을 이어가는 인디언에게 어찌 이런 탈출구가 없었겠는가. 노아의 방주도 연상시키고 세기 말에 떠돌던 '휴거'도 생각나게 한다. 튀르키에의 수피춤도 떠오른다.
사실 워보카의 말대로, 1889년 5월31일 존스타운 홍수로 5천 명이 익사하지 않았는가)
(653)앉은소의 귀환, 활약 그리고 사망:캐나다로 떠났던 홍크파파족의 앉은소(수우족?)는 영국인의 비협조로 굶주림 끝에 4년만인 1881년 7월19일 다시 미국땅 랜들 요새로 돌아왔다. 캐나다로서는 골치거리를 덜은 셈.
끊임없이 수우족의 땅을 빼잇으려는 미국측과 내줄 수 없다고 끄떡도 안 하는 앉은소 사이에서 꾀를 낸 미국측은 제2인자급 추장들을 비밀리에 불러내어 싸인을 받아낸다.이 중에 수우족의 선교사였던 새뮤얼 힌먼이라는 자도 있었다. 선교사의 역할이 바로 그런 거라니! 일이 틀어진 걸 알게 된 앉은소는 소리를 질렀다.
"인디언이라곤 이제 나 하나밖에 없어!"
망령의 춤이 인디언들 사이에서 불길 번지듯 퍼져 나가자 백인들은 그 주동자가 앉은소라고 누명을 씌운다. 그는 느닷없이 자신의 오두막에서 체포되어 끌려나가는 과정에서 인디언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인디언 경찰에! 앉은소도 죽는 순간 생각할 것이다. '진정 나를 슬프게 한 건 내 종족' 이라고!
19.운디드니
(685)파인 릿지에 있는, 마지막 대추장 붉은구름의 말:
땅 위에 희망은 없었다.하느님은 우리를 잊은 듯이 보였다. 누군가는 하느님의 아들을 보았다고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그분이 오셨다면 전에 하신 것처럼 훌륭한 일을 하셨을 것이다. 우리는 그분도, 그분이 하신 일도 보지 못해 의심스러웠다.
(686)망령의 춤에 대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수우족은 앉은소가 암살당한 슬픔과 노여움에서 폭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다음해 풀이 돋아나면 백인은 멸망하고 죽은 친척들이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너무 커서 그들은 보복하지 않았다.
(망령의 춤이 두려워 백인들은 앉은소를 제거했는데, 그 덕에 인디언의 폭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니? 아이러니하다.)
(686-689)큰발이 체포됨:
제7기병대는 큰발을 체포하러 옴/큰발은 여행 도중 폐병에 걸려 마차에 실려감./그들은 운디드니의 기지로 향함/350명 가량의 인디언이 모여 있었다/포로가 도망하지 못하도록 휫사이드 소령은 수우족 천막 주위에 두 기병부대를 배치하고 언덕에 기관총 두 정을 설치해 놓았다.
사정거리가 2마일 이상 되는 기관총의 총신은 인디언들의 처소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방향으로 겨누어져 있었다.
(다음날 인디언으로부터 무기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인디언 하나가 발포를 하자 미군의 무차별학살이 시작되었다. 큰발도 죽었다. 350명중 거의 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운디드니의 학살이다.)
(695)(부상자들은 파인릿지의 성공회 예배당에 마련된 건초더미 에 뉘어졌다.)
설교단 뒤 합창대석 위에는 엉성한 글씨로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땅에는 평화, 사람에겐 자비를"
(인디언의 씨를 말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낸 '큰아버지들'과 그의 부하장군들, 그리고 살생의 도구로 이용되어 사라져간 수많은 미군병사들---
떼강도를 만나 땅을 빼앗기고 집도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구천의 혼령으로 사라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디언들--
인디언 추장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의 갈등 양상이 비슷비슷해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겠으나 이것이 단조로 된 음악임을 깨달으니 지루할 틈이 없이 700쪽에 이르렀다.
이들의 이야기는 미국 역사가 이어지는 한 그들의 창공에 영원히 울려퍼지게 될 장송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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