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장석훈 옮김/유유 출판/192쪽/2016.3 초판1쇄/2020.10 초판 5쇄/읽은 때 2023.6.2~6.10
(이 책이 코로나 시절에 읽히기 시작했더라면 대박 치고 많은 이들의 위로가 됐을 텐데~내게는 지금이 딱이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전보다 외출을 줄이고 자제하는 마당이니까~ 당근을 열심히 먹고 밝은 눈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줄줄이 떠오른다면 이 또한 행복한 일 아닌가!)
---책뒤표지 광고--
여행은 구경이 아닌 발견--
마르셀 푸르스트, 수전 손택, 알랭 드 보통을 사로잡은 여행문학의 고전
**수전 손택(1930~2004)미국의 에세이스트, 소설가, 예술평론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1763~1852)**우리나라 정조대왕 때
사보이아 공국의 귀족가문 출신/18세에 직업군인이 됨/군인의 신분으로 금지된 결투를 했다는 이유로 42일간 가택연금형을 받음/이때(1794년) 쓴 글이 유명해지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섬/
**사보이아 공국:신성로마제국 내 여러 공국의 하나
**<내 방 여행하는 법>이 쓰이고 출간된 것은 프랑스혁명군이 사보이아를 점령한 바로 그 무렵이었다.
목차
1. 발견의 書
나는 42일간의 내 방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참이다.이 여행에서 나는 흥미로운 것을 보았고 여정 내내 즐거웠으니 책으로 엮으면 어떨까 싶었다.그럴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서자 결심을 굳혔다. 불행한 이들의 근심 걱정을 날려 버리고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질 거리를 전할 수 있다 생각하니, 나는 형언할 길 없이 벅차다. 자신의 방을 여행하면 거기서 얻는기쁨이 사람들의 성가신 질시에 잡칠 일도 없으며 무슨 대단한 경비가 들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벗어나 은둔할 골방조차 없는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이라면 혹 모르겠으나 그런 골방만 있으면 우리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게 다 갖춰진 셈이니 말이다./요컨대 이 땅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특히 방에 죽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소개하는 새로운 여행법을 거부할 이는 단 한 명도 없으리라.
(賢者들은 몸이 묶일 때-질병이나 감금이나 옥살이할 때 비로소 영혼의 날개를 펴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창조물을 만들어내는가 보다.-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 네루의 세계사편력,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정약용의 목민심서 , 황대권의 야생초편지, 정약전의 자산어보,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등이 그 예들이다)
2. 내 방 여행의 좋은 점
(15)무엇보다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점을 이 여행의 미덕으로 꼽고 싶다./넉넉치 못한 사람들은 당연히 반길 일이지만 그들과 다른 부류에 속하면서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에 더 환호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부자들이다./병약한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인 새로운 여행법이 아닐 수 없다.날씨와 기후의 변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이 여행법은 소심한 사람에게도 좋은데, 도둑을 만날 걱정도 없고 낭떠러지나 웅덩이를 만날 걱정도 없기 때문이다.여행이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고 여건도 안됐던 사람들, 아예 꿈도 꾸지 못했던사람들, 그런 이들이 나를 보면서 여행할 마음을 낼 것이다. 행여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가 있어, 번거로울 것도 없고 돈도 들지 않는 즐거움을 만끽하자는데도 나와 같이 떠나기를 망설이려나. 그러지 말고, 떠나자.---못 이기는 척해도 좋으니 이 여행을 같이하지 않겠는가. 로마와 파리를 보고자 그 먼길을 수고스럽게 떠났던 여행자들을 비웃으며 우릴랑 하룻길 조금씩 가자! 우리를 가로막을 게 무언가.우리 자신을 기꺼이 상상에 내맡기고 그가 이끄는 대로 가면 될 것을.
3.법과 관습
(17)내가 내 방을 여행한 일수가 왜 하필이면 41일도, 43일도 아닌 42일인가 궁금해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터이다.--여러분 보기에 내 방 여행치고 그 일수가 과하게 길다 하더라도 그것을 단축할 재량이 내게 없었다는 사실이다.---사실 난 내 방안에 머물며 더할 수 없이 기쁘고 즐거웠으나 유감스럽게도 바깥 출입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나를 너무나 생각해 주어 나로선 고마운 마음 금할길 없는 권력자들의 중재 덕에 나는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내가 내 방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나를 가둬놓고 지켜준 자들이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자비에는 금지된 결투(고약한 악습인 관습)를 했다는 죄로 (법을 어긴 죄)로 42일간의 금고형에 처해졌다)
4. 의자
(21--22)자신의 걸음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나를 완전히 통제하면서 살아가는 이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내 영혼은 온갖 생각과 취향과 감각에 완전히 열려 있으니 탐욕스러우리만치 있는 그대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삶이라는 고달픈 여정에 간간이 흩뿌려진 기쁨을 외면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정해진 길을 고집하지 않고 사냥꾼이 사냥감을 쫒듯 자신의 상념을 좇는 것보다 더 매혹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내 방 여행을 하면서 곧바로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탁자에서 시작해 방 한구석에걸린 그림쪽으로 갔다가 에둘러 문쪽으로 간다. 거기서 다시 탁자로 돌아올 요량으로 움직이다가 중간에 의자가 있으면 그냥 주저앉는다.
(22-2)의자란 얼마나 훌륭한 가구인가. 사유하는 인류에게 이보다 유용한 물건은 없으리라. 기나긴 겨울밤, 세상사 소란에서 벗어나 그 속에 몸을 묻고 있으면 한없이 차분해지고 때로 달콤함까지 깃든다.벽난로 불이 활활 잘 타오르고 내 손에 책과 펜만 있으면 지루할 짬이 어디 있으랴. 사그라지는 불길을 다시 키우기 위해 책과 펜을 손에서 놓았다가 그대로 즐거운 상념에 빠져 지인들을 기쁘게 할 시의 운을 다듬는 일도 달콤하디 달콤하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한없이 흘러 영원의 침묵에 이르고, 시간이 빚어내는 그 슬픈 여정을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5. 침대
(26)침대는 우리를 몰아의 경지에 이르게 할만큼 상상력을 지피고 안온한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한바탕 연극무대가 아닐까?---침대는 우리의 탄생과 죽음을 지켜본다.침대는우리 인간이 때로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이나 가혹한 비극을 연기하는 파란만장한 무대가 아니던가. 꽃으로 장식된 요람에서 사랑의 옥좌가 되고 끝내 우리의 무덤자리가 되는 것이다.
6. 형이상학
(29)인간의 본성: 지성의 순수한 빛(영혼)과 동물성으로 이루어짐
7. 영혼
8. 동물성
(39)나는 빵을 굽기 위해 화덕 위에 부집게를 올려 놓았었다. 잠시 뒤, 나의 영혼은 홀로 여행을 떠났고, 그 틈에 나의 동물성은 달구어진 장작을 화덕 안에 집어넣었다.그런데 우둔하기 짝이 없는 나의 동물성은 손을 뻗어 뜨거운 부집게를 그냥 잡아버렸고 결국 나는 손가락을 데었다.
9. 철학
10. 초상화
(46-47)드 오카스텔 부인의 초상화:천으로 먼지를 닦아내자 말아올린 금발머리와 거기에 얹힌 장미꽃 장신구가 드러났고, 그 순간 천상에 머물던 내 영혼은 쾌락의 미세한 전율과 가슴 벅찬 환희를 느꼈다.---순간 나는 자연의 질서를 역행하여 과거로 돌아가 다시 젊어진다. 그렇다. 바로 그곳에 내가 사랑했던 그녀가 있다.그녀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려 한다. 그윽한 눈길이여 나의 분신, 나의 영혼이여, 이리 와서 내게 안겨요! 나의 기쁨과 행복을 같이 나눠요! 이 순간은 찰나여도 황홀하지 않은가.
11. 장미색과 흰색
(49-50)남자라면 모름지기 침대를 장만할 때 가능한 장미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침대를 골라야 한다. 색깔은 그 색조에 따라 우리 기분을 즐겁게도 혹은 우울하게도 만들기 때문이다. 장미색과 흰색은 기쁨과 행복을 나타낸다.장미색깔에 그런 상징을 부여함으로써 자연은 장미를 꽃의 제왕으로 만들었다.하늘도 지상에 아름다운 하루를 선사하고 싶을 때 여명이 번질 무렵 구름을 이 매혹적인 색조로 칠하지 않던가.
12. 그때 그 언덕
13. 숙영
14. 하인 조아네티
(58)그는 내가 다소 퉁명스럽게 시킨 일들이 겉으론 아닌 척하면서도 침대에서 더 오래 뭉그적거리려는 핑계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그는 모른 척 하는데 그런 그가 나로선 진심으로 고맙다.
이제 핑곗거리가 다 떨어진 것 같으면 그는 방 한가운데로 걸어와서 팔짱을 낀 채로 한 치 흐트러짐없이 서 있는다. 우리집 하인이 건네는, 침대에서 나오라는 무언의 초대는 거부할 길이 없다. 나는 알았다는 표시로 기지개를 켜고선 자리에 일어나 앉는다.
독자 여러분에게 우리집 하인의 행동을 관찰할 기회가 생긴다면, 여러분은 민감한 성격의 일을 처리할 때는 주도면밀함보다 상식과 단순함에 기대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단언하건대, 나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것은 게으름의 문제점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한 설교가 아니라 조아네티가 건네는 무언의 질책이다
(개인의 경험을 보편화시키는 재주가 바로 글재주가 아닌가 싶다. 주인공이 자기 얘기를 하는데 내가 겪고 있는 일처럼 느껴지게 하는 거.)
15. 의혹
(63)조아네티의 의혹:
조아네티는 책상 위 콘솔 선반에 그림을 세워놓고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 나리, 이 초상화 속 인물은 제가 이 방 어디에 있든 왜 늘 저만 쳐다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침에 침대를 정리할 때도 저를 바라보고, 창가로 움직여도 저를 바라봐요. 한시도 제게서 눈을 떼는 법이 없어요. "
"조아네티, 그렇다면 이 방에 사람이 가득할 때는 이 아름다운 여인이 구석구석 모든 이에게 동시에 곁눈질이라도 한단 말인가?"
" 그렇다니까요, 나리."
"내게 건네던 추파를 온갖 어중이떠중이에게 다 건넨단 말이지? "
---바로 그거였어! 사랑에 눈먼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애인과 떨어져 애타게 가슴 끓이는 동안 그녀는 나의 부재를 다른 이로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는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발견의 여정에 있다.
(초상화의 시선이 글쓰기의 재료가 될 줄이야~.놀랍고 코믹하다)
16. 해명
초상화에 관한 뒷이야기:
"잘 보게, 조아네티. 그림은 평면이란 말일세.그리고 그 평면 위의 각 점에서 빛이 반사되어---"
이 말에 조아네티는 흰자위가 다 드러날 정도로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마저 다물지 못했다.--당연히 이런 설명을 쏟아낸 건 나의 동물성이었다. 하지만 조아네티가 평면이니 빛이니 하는 부분에는 무지렁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나의 영혼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사악함을 동물성이라 하나?)
17. 애견 로진
(71)같이 지낸 지는 햇수로 6년인데 서로 데면데면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소소하게나마 투닥거렸을 때, 언제나 내 쪽에 큰 허물이 있었음에도 먼저 화해를 청한 건 그였다. 전날 저녁에 내게 한소리 들으면 그는 애처롭게 물러나 끽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다소곳이 내 침대 곁에 와서 기다렸던 것이다. 주인이 몸을 뒤척이거나 깰 기미가 보일라치면 침대 협탁을 꼬리로 살랑살랑치면서 제 존재를 알렸다.
우리가 같이 지낸 이래 나에 대한 사랑이 단 한 번도 식지 않은 다정한 그를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한때 나를 좋아했으나 지금은 까마득히 잊은 이들이 있다. 한때 나의 친구였거나 연인이었거나 혹은 지인이었던 그들에게 이제 나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토록 사랑과 우정을 맹세하고 후의를 기약했건만!
사랑하는 나의 로진은 내게 그런 후의를 약속한 바 없으나 인간이 받을 수 없는 최상의 후의를 내게 베풀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오늘도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도 일말의 주저없이 그에 대한 사랑은 내 벗들에 대한 사랑 못지 않다고 말한다.
18. 신중
(조아네티는 주인이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조용히 까치발로 물러났다.)
이번 일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그를 더욱 각별히 여기게 되었다.
19. 눈물
(돈을 주지 않아서 구둣솔을 사다놓지 않은 조아네티에게 "고집불통에 천치 같으니라고!" 라고 쏘아부쳤다)
이에 대해 일언반구 불평이나 변명을 늘어놓지 않은 조아네티에 대해 '나리'는 이렇게 썼다.
(76)그는 자신의 주인을 무안하게 만들기보다 차라리 부당한 대우를 받는 쪽을 택했다. 정말 축복 받을 사람이다.
---그는 돈을 받아들고 구둣솔을 사러 나갔다.
나는 천을 집어들고 남은 왼쪽 구두를 흐뭇한 마음으로 닦는데 구두 위로 참회의 눈물이 떨어졌다.
(글쓴이도 누구 못지않게 착한 심성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20. 알베르트와 로테
(80)알베르트에 대한 글쓴이의 심정:나는 그 판화에 씌어진 유리를 깨고 들어가 책상에 앉아 있는 알베르트를 끌어내어 그놈을 요절내고 짓밟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느꼈다. 그러나 세상은 알베르트 같은 놈들로 우글댈 것이다.
그들은 영혼의 토로와 여린 감성 그리고 꿈의 나래를 마치 바위가 파도를 조각내듯 부숴버린다.
그런 자들을 가까이하지 않는 감수성 깊은이는 누구일까?
마음과 영혼의 결이 그와 같은 벗을 둔 이는 행복할지어다. 그는 취향과 감성과 지성이 일치하여 서로 하나될 수 있는 벗이며 야망과 욕심으로 번민하지 않고 궁전의 화려한 의식보다 차라리 나무그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벗이다. 그런 벗을 둔 이는 행복할지어다!
21. 벗
(83-84)전장에서 벗을 잃은 슬픔:
개인의 운명이야 어찌되었든 자연은 화려한 봄옷으로 갈아입고 그가 잠든 무덤가를 아름답게 꾸민다. 나무는 푸른잎으로 덮이고 가지는 이리저리 뻗어오른다. 새들은 잎사귀 뒤에서 노래하고 벌들은 붕붕거리며 꽂밭을 날아다니다. 죽은 자가 안식을 취하는 곳에서 삼라만상은 생명과 그 기쁨을 마음껏 누린다.---덧없이 져버린 생명과 인간의 모든 고통이 이 위대한 전체 안에서 일절 부질없다. 동료들의 애통 속에 최후를 맞이한 감수성 여린 한 젊은이의 죽음과 아침 찬기운을 맞고 꽃받침 위에 져 버린 한 마리 나비의 죽음은 자연의 흐름 앞에선 하나 다를 바 없는 두 개의 사건일 뿐이다. 인간이란 그저 허공에 흩어져 버릴 운명을 지닌 유령 같은 존재며 한 조각 그림자이자 한 줄기 연기다.
여명이 하늘을 밝히기 시작한다.희망이 다시 가슴에서 살아난다. 이 광대한 지평선을 펼쳐놓은 그분은,태양이 정상의 만년설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수 있도록 거대한 산맥을 우뚝 세워놓은 그분은 내 가슴이 다시 뛰도록, 내 정신이 다시 사유하도록 주재하신 바로 그분이다.
22. 제니 양
**프랑스 소설가 마리 잔느 니코보니의 <제니 양 이야기>의 주인공,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의 주인공 로테가 어릴 때 즐겨읽던 작품이기도 하다.
23. 판화들
24. 회화와 음악
(98)회화와 음악은 둘다 매력적인 예술장르인데 그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단 화가는 뒤에 무언가를 남긴다는 점에서 회화에 무게를 실어 줄 수 있다./음악작품은 유행에 따라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데 회화 작품은 그렇지 않다. 앞 세대를 감동시켰던 음악이 오늘날의 음악 애호가들에겐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있으며 한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작품이 자식 세대에 와서는 우스개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25. 반박
(101)드 오카스텔 부인의 반박:
케루비니나 치마로사의 음악이 이전 사람들의 음악과 다른들, 그게 뭐 대순가요? 요즘 음악이 내 귀에 감미로우면 됐지, 옛날 음악이 우습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제 고조모님이 좋아했던 것을 좋아해야 제가 음악을 제대로 향유할 수있는 건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이 향유하는 음악에 비해 회화는 아주 극소수 계층만 향유하는 장르가 아니던가요?
(103)글쓴이의 辯:
어떤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쓸 때는 어조가 단정적이 되곤 하는데, 이는 글쓴이가 제가 회화를 옹호할 때 그랬던 것처럼 겉으론 공정한 척하면서 미리 어떤 암묵적 판단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쓴 글은 반박을 낳을 수밖에 없고 결론은 미심쩍을 수밖에 없지요.
26. 라파엘로와 포르나리나
**'라 포르나리나':작품명으로 이 작품의 모델은 마르게리타 루티로, 라파엘로의 연인
(108)라파엘로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이 위대한 사람에게 종교에 가까운 경외심을 품는다.약관의 나이에 그는 고대미술을 뛰어넘었으며, 그의 그림은 근대화가들에게 경탄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그런데 그를 우러러 바라보는 나의 영혼은 이 이탈리아 여인에게 적개심을 느낀다. 연인보다 사랑이 먼저였던 이 여인은 자신의 풍만한 가슴으로 하늘이내린, 천상의 불꽃을 피우던 천재를 질식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영혼이 이런 감상에 빠져 있는 동안 나의 동물성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매혹적인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라파엘로가 요절한 것에 대한 그녀의 책임을 기꺼이 용서하고자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유약함을 보여주는 나의 동물성에게 나의 영혼이 아무리 싫은 소리를 해도 쇠귀에 경읽기다.
(글쓴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고 코믹한 모습을 본다)
27. 걸작 중의 걸작:거울
(112)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충실하게 재현한 것 말고 자신있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다른 그림이나 광경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 내가 말하는 회화작품이란 바로 거울이다.--거울은 붙박이 여행자에게 흥미로운 사색과 관찰을 수없이 제공하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거울은 가장 유용하고 소중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113)애석하게도 추함이 자신의 실상을 알아보고 거울을 깨버리는 일은 참으로 드물다. 거울을 사방팔방에 배치하여 기하학적으로 정확하게 빛과 진실을 투영하려 한들 소용이 없다. 반사된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추려 할 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상 사이에 놓여있는 왜곡의 프리즘에 자기애가 스며들고 결국 우리 눈앞에 제시되는 건 성스러운 그 무엇이 된다.
(114)위대한 뉴턴이 처음 만든 이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프리즘 가운데 자기애 프리즘만큼 강한 굴절력을 지닌 데다 매력적이고 생기발랄한 색채를 발산하는 프리즘도 없을 것이다.
28. 의자에서 넘어지다
(120)내 영혼은 앞서 욕설을 쏟아낸 것--적선을 구하는 거지에게
"이런 게으름뱅이 같으니라고! 어디 가서 일할 생각은 않고 말이야!"라고 말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볼 때 내 영혼은 그 말을 내뱉기 직전에 이미 후회부터 하지 않았나 싶다. 이는 마치 길을가다가 갑자기 도랑이나 웅덩이를 만났을 때 뻔히 그것을 보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결정적으로 내가 이성을 찾고 후회의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로진 때문이었다. 로진은 자기에게 먹을 것을 곧잘 나눠주곤 하던 자크(거지)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로진은 그 추억과 고마움을 꼬리를 살랑거리는 것으로 보여 주었다.
그러는 사이 조아네티는 원래 그의 몫이었던 내가 남긴 음식을 챙겨서 주저없이 자크에게 건넸다.
가엾은 조아네티!
이처럼 나는 이 여정에서 나의 하인과 나의 개에게 철학과 인도주의를 배우고 있다.
(나 또한 그자비에에게서, 남의 장점을 찾아내서 기꺼이 칭찬하는 태도를 배운다.유쾌하고 감동적인 코미디!)
29. 불행
(122-123)세상에는 나보다 더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도 많은데, 나보다 더 나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연연할 필요가 있겠는가?
으리으리한 주택이 모여 있는 거리의 주랑 밑을 보면, 궁핍한 이들이 헐벗은 채 널브러져 있다.그들은 추위와 허기로 죽어가는 처지다. 이 얼마나 비참한 모습인가! 내 책에서 이 부분만큼은 널리 읽혔으면 한다.
30. 자비
31. 세간
32. 인간 혐오자
33. 위안
34. 편지
(136-137)편지들을 보면서 재미있던 젊은시절의 일을 되새기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기쁜지.
나의 눈이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들이 쓴 편지 구절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은 한없이 먹먹해지고 희비가 번갈아 든다. 그의 글씨체를 보라. 그의 손을 움직인 건 그의 마음이며, 그가 쓴 편지의 수신인은 나였다. 이 편지가 내게 남은그의 유일한 자취다.
(138)지금은 모든 것이 변했다.이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서로의 심중을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런 현실은 우리가 모인 그 한가운데에 떨어진 포탄처럼 매혹적이었던 환상의 궁전을 영원히 파괴하고 말았다.
35. 마른 장미
36. 서가
37. 다른 세상
38. 아버지의 흉상
**아버지는 후에 프랑스에 병합된 사보이아의 애국자였다.
39. 영혼과 동물성의 대화
40. 추억
(165)삶을 즐길 줄 아는 이들을 위해 자연이 마련해 준 그 기쁨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또한 얼마나 다채로운가! 어느 누가 연령도 개성도 각기 다른 세상사람들에게 저마다의 기쁨을 마련해 줄 수 있겠는가! 아련하기만한 유년의 즐거움을 떠올리면 아직도 뭉클하다. 감정의 불씨로 타오르는 가슴을 품었던 청년의 기쁨을 내가 다시 그려낼 수 있을까? 그 행복했던 시절에 우리는 이해관계,야망, 증오같이 우리의 인간성을 훼손하고 뒤흔드는 모든 추한 열정들을 모르고 살았다.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시절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후론 다시 볼 수 없는, 한순간 빛났던 태양이다. 공기는 더없이 순수했고 샘물은 더없이 맑고 시원했다. 자연은 변화무쌍한 얼굴을 지녔고 숲엔 수많은 오솔길이 나 있었건만, 나이가 드니 이젠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41. 여행용 외투
42. 백일몽과 연금 해제
(183-185)오늘은 내 운명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 내게 나의 자유를 돌려주는 날이다. 그들이 정말 내게서 그것을 빼앗기나 했다면 말이다. 그들은 내게 어떤 곳도 가지 못하도록 했다.대신 그들은 내게 이 우주 전체를 남겨 놓았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이 내 뜻에 좌우되었다.
오늘 나는 자유다. 아니 다시 철창 안으로 들어간다.일상의 멍에가 다시 나를 짓누를 것이다. 이제 나는 격식과 의무에 구애받지 않고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변덕스런 여신이 있어 내가 경험한 이 두 세계를 다시는 잊지 않도록 해주고 다시는 이 위험한 연금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준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오, 나의 동물성이여, 몸조심하기를!
(192)그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내 방 여행하는 법>은 문학사상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거침이 없는 자전적 산문이다--역자후기
(굳이 '타의'에 의해 갇힌 몸이 되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누구나 나만의 '내 방 여행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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