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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권정생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맑은 바람 2024. 2. 20. 13:15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ㆍ권정생 씀/양철북/371쪽/1판1쇄2015.5.1/1판2쇄2015.5.10/읽은 때2024.2.14~2.20

*이오덕1925~2003(향년 78세)
경북 청송, 아동문학가. 42년간 초등학교 교편생활을 함
권정생의 문학세계를 열어주고 많은 도움을 줌
<일하는아이들>이 있다

*권정생1937~2007(향년 70세)
일본 도쿄 출생, 1946년 본국으로돌아옴. 부친의 고향인 경북 안동 조탑마을 일직교회 문간방에 터를 잡고 삶, 결핵으로 고생함  1969년, <강아지똥>으로 문단에 데뷔함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됨. <몽실언니>가 있음

[1973년~1975년]
이오덕선생은 권정생에게 생명수였다.
(12-13)그는 조국에 돌아왔어도 반기는 이 없어 '메말라진 흙 속에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어 여지껏 목말라 허덕였'던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싫어 돈벌기를 포기한 사람.
"내게 남은 건 맑게 맑게 트인 푸른빛 하늘 한 조각"이라 했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세 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18)저 혼자의 생활이야 어쨌든 꾸려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 되면 깡통을 들고 나설 각오입니다.죄 될 짓만 안 하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 보통입니다.선생님을 알게 되어 이젠 외롭지도 않습니다.(권정생 1973.3)
(84)요즘 저는 아동문학에서 아주 철저하고 과감한 태도로 평을 쓰고 논리를 세워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안일무사주의와 문단출세주의로 흐리멍덩하게 되어있는 우리 아동문학을 일깨워 전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하면 나를 미워하고 적으로 삼을 사람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만, 그런 것 다 각오해야지요. 애당초 문단출세주의와는 상관이 없는 나로서는 되지 못한 것들이 욕하고 떠든다고 손해볼 일은 없습니다. 진실을 위한 싸움에서는 아동문학작가들보다 일반 문단의 작가, 시인 평론가들이 더 많이 성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1974년 이오덕)


(92)반가운 소식 전하겠습니다.어제 이원수 선생님 편지 보내왔는데, <한국아동문학상> 제1회 수상자를 선생님으로 내정해 놓았답니다. 상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만(10만원) 첫 번째이고, 또 다른 아동문학상보다 순수하고 권위있는 것으로 하려고 한 것입니다.(1974.12 이오덕)
(93)문학상을 받게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제가 진정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자꾸 의심이 갑니다. 우리 한국에서 문학상이란, 그렇고 그렇게, 돌림식으로 수상되고 있다는 비난을 자주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선생님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만약 다른 곳에서 제게 문학상이 돌아왔다면 저는 수상을 못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더 아끼시고 계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을 타겠습니다.
(110)수영이네 어머니가 고사리 뜯으러 갔다가 호랑이를 보았답니다. 늑대가 앞산에까지 내려오고, 재락이네는 마당에 들어온 꿩을 손으로 꼭 붙잡았다고 합니다. 산짐승들이 사람을 그리워해서 나타나는 것 같아 저 혼자서 흐뭇했습니다.

(1975년 5월, 권정생이 사는 곳은 경북 안동시 일직면이다. 그곳에서 부모님이 사시다가 묻힌 곳이라 권정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천연기념물' 같은 두 분의 오고가는 서신을 읽고 있노라니 나 또한 영혼이 맑아지고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1976년~1981년]
(127)며칠 전 서울서 올해 <한국아동문학상> 수상자로 조대현씨와 나, 두 사람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조씨는 물론 동화고, 나는 평론이겠는데, 상 같은 것과는 도무지 인연이 없는 저로서는 좀 이상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나 보다 유능한 젊은이들과 함께 상을 받는다는 것, 더구나 1회 수상의 권선생님을 생각할 때 저 같은 사람은 분에 넘치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젊은 사람에 지지 않고 열심히 좋은 글 많이 쓰라는 격려의 뜻인 줄 압니다.(1976년 2월 이오덕)
(135)꼭 영원히 남을 수 있는 동화를 쓰겠습니다.이것을 위해서는 더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권정생은 폐병에다 다른 질병도 있어 골골하는 상태다)
(145)(강소천,마해송 등 한국의 대표적(?) 동화작가들의 작품이 일본작가들의  모방작이라고~~?)
(147)채식이 최고:
요즘 저는 식사에 대해 제 나름대로 정했습니다. 병원,의사의 말도 믿을 수 없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환자에게는 절대 육식이 해롭다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쌀밥과 달걀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태까지 죽지 않았던 것은 쌀밥을 먹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누구한테라도 채식을 적극 권해야겠어요. 잡념을 없애고, 깨끗한 머리를 가질 수 있고, 쉽게 피로하지 않게 하는 비결은 채식입니다.

(헬렌 니어링, 조승우 한의사, 작은아들 내외--이런 사람들의 조언으로 칠십을 훌쩍 넘기고서야, 나도 채식위주로 식단을 바꿔볼까 하는데 귄선생은 일찌기 살 도리를 찾았구나! 반갑다)
(151)권정생의 어린 날: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 좋은 교육을 받았다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어머니께서 어린 나를 안고 불러주던 노래가 아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애기 뉘집 애기 쓰레기통집 애기"
이래서 끝내 쓰레기 인간이 되고 말았나 봅니다.
정말 우리집은 아버지께서 주워다 놓은 쓰레기(고물)가 뒤란 처마밑에 꽉꽉 쌓여 있었습니다. 그 퀴퀴한 곰팡내는 아직도 내 코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퀴퀴한 냄새나는 집안은 언제나 비어 있었습니다. 식구들 모두가 일터로 간 것이지요.동경거리를 쓰는 청소부 아버지, 열두 살짜리 누나도 공장에 나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싸움을 했고, 그래서 몸서리쳐지도록 무섭고 지루하고 쓸쓸했던 나날이었습니다.
(155)<창작과 비평>에서 세 분의 동화집을 보내와서 읽어보았습니다.세 분 중에서 마해송씨 것이 좀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재미있고 동심에 가까이 접근한 분은 이주홍씨였고,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분은 역시 이원수선생님이라 생각했습니다.
(권정생이 비록 흙 속에 묻힌 진주라해도 그걸 발견하고 닦아서 널리 알린 이오덕선생이 없었다면 그는 그냥 흙 속에 묻힌 채로 빛을 보지못했으리라. 권정생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수없이 서울을 오르내리며 많은 사람들과 만나 홍보대사 역할을 자청한 이오덕 선생- 그 숨은 공로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나니 다행이다. 그는 권정생의 수호천사였나 보다)
(187)연화요양원에서:
이곳 요양원에서 제가 가장 깊이 느낀 것은 인간은 누구나 다 한 형제라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한솥의 밥을 먹으며 함께 자고 일어나는 환자들의 생활이야말로 그대로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 길, 그리고 인간이 고루고루 잘 살려면, 많이 벌어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적게 가지는 일이 가장 현명한 짓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앉아서 함께 먹는 식탁은 네사람입니다. 한가운데 놓인 반찬을 서로 아끼면서 먹다 보면 언제나 남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남는 반찬은 똘래라는 개가 먹습니다.필요 이외의 것은 절대 가지지 않을 때,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좀더 나은 생활을 유지해 가려면 많이 갖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각 사람의 마음 깊이 새겨져야 할 것입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다이어트는 뚱뚱한 살을 빼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내가 지금 지나치게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사들이려 하지 말고[가구는 물론, 옷이나 책이나 음식이나---냉장고를 어느 정도 비워 놓은 후에 사들여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냉장고가 터지도록 우겨 넣고 있다.] 비워내고 줄여야 한다. 이제 가진 것이 적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나이가 아니다.)
(188)생산이라는 것, 소유라는 것, 그리고 내것을 나눠준다는 자선이라는 말들이 쓸데없는 빈말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면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가진 것을 '준다고'하지 말고, '되돌려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생산한다는 말은 아예 버리고 '받는다'는 말이 옳겠지요.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바람과 세계입니다.
(222)가난한 이들을 착취하는 인간들에 대한 분노 끝에:
선생님, 이 지구상의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해선 먼저 인간이 망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인간들이 완전히 없어지고 난 산천과 바다와 하늘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거기 날고 있는 새들, 짐승들, 헤엄치고 있는 고기들, 그들은 최소한 천적에게 희생당하겠지만 인간들의 살생에서는 구제받아 더욱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주받아야 할 것은 인간들뿐입니다.
(223)시골사람 열 명이면 열 명 모두가 농촌이 싫다고 합니다. 그들은 혹심한 노동과 농약품의 공해를 더 이상 이겨내지 못힐 것입니다. 잃어버린 농존을 되찾는 것은 농민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1981.7 권정생)

[1982년~2002년]
(274)울도 담도 없는 집에 이사 와서 벌써 두 주간이나 됩니다.숨기지 않아도 되는 생활은 참으로 편합니다. 왜 사람은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려고 하는지요? 가지면 가질수록 자꾸 불행해지는 것을 몰랐던 것이 이렇게 세상을 파멸에 몰아넣게 된 것이지요. 자유라는 것은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고독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지요.누구와함께 있다는 것은 곧 구속을 의미합니다.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는 절대의 자유를 갖고 있었습니다.아무도 그 무엇도 그와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하느님도 거기 없었습니다.


(366)돌아가시기 5일 전에 쓴 시

몇 평생 다시 살으라네
--이오덕

.밤낮 침대에 누워 있자니
등뼈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
그래도 닞에는 정우가 안아서
잠시라도 앉아 있지만
밤에는 누워서 꼼짝 못한다
수건을 등뼈 양쪽 깔아달라 해서
겨우 견디는데
이번에는 발뒤꿈치조차 아프다
그래도 꼼짝 못한다
이건 아주 관 속에 들어가 있는
산송장이다
정말 밤마다 나는 관속에 들어가
생매장 되어 있다가
아침이면 살아난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또 죽었다가 살아나고
고것 참 재미있구나
하루가 새 세상 새 한평생
앞으로 내가 몇 평생 살는지
고것 참 오래 살게 되었네(2003.8.20)

(370)용감하게 죽겠다
--권정생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귄정생은 2007년 5월17일 '어머니 사시는 그 먼나라'로 떠났다.
(육신의 고통 속에서도 맑은 영혼으로 아이들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하고자 한평생을 바치신 두 분께 경의를 표하머 꽃다발을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