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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전락(轉落)>

맑은 바람 2024. 2. 6. 22:53

카뮈/김화영 옮김/책세상/317쪽/1989.7초판1쇄/개정1판1쇄1998.2/읽은때2023.10 28~2024.2.6

카뮈(1913~1960)향년 47세
<이방인>으로 문학적 성공을 거둠/<시지프신화> <반항적인간> 같은 철학적에세이로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지칭됨/전락 발표(1956)/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최초의인간> 집필 중 교통사고로 사망

(옮긴이의 말)<전락>은 카뮈의 작품 중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특히 수다스럽고 교양있고 유식하며 시니컬한 전직 변호사 클라망스의 끝도 없는 달변을 회화체의 생생한 현장감과 아울러 그 수사적 기교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옮긴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이 책의 절반은 소설(1~150)이고나머지는 해설(151~298)이다. 과연 이해를 돕기 위한 글이 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난해한가?

(14)배경: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쥐데르제 항구의 <멕시코 시티>라는 Bar
인물:고릴라라는 별명을 지닌 술집남자와 전직변호사 클라망스/술상대인 부르주아 프랑스인/클라망스가 고릴라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면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품/클라망스의 형제들은 게슈타포 활동을 하며 유대인 학살에 가담함
(18)고릴라가 입을 벌리고 나를 박사님이라고 부르는군요.이쪽 나라들에서는누구한테든 박사 아니면 교수라고 부른답니다.---그건 그렇다하고 나는 의사가 아닙니다. 구태여 알고 싶으시다면 말씀 드려도 좋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변호사였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재판관 겸 참회자지요.
허락하신다면 제 소개 말씀을 올릴까 합니다. 불초 소생은 장-바티스트 클라망스라고 합니다.---선생은 나와 대충 비슷한 동년배이신 것 같고 산전수전 대충 비슷하게 다 겪은 사십대 특유의 물정 밝은 눈초리에다가 대충 비슷하게 쭉 뽑아입은 다시 말해서 우리 프랑스에서나 갖추어 입는 복장이며 그리고 반질반질한 손, 그러니까 대충 비슷하게 말해서 부르주아시군요! 그러나 세련된 부르주아지요!
(이가림 시인의 데뷔작 <빙하기>에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가 나온다.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가 누구인가?  그래서 찾게된 게 <전락>이다.  현재 23쪽을 읽고 있는 중이다.주인공 클라망스의 왕수다가 싫지 않다.잠 달아난 한밤중에 일어나 읽기 딱 좋은 책이다.)
(23)선생,네덜란드는 한갓 꿈이예요.황금과 연기로 된 꿈이예요.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그 꿈 속에선 로엔그린이 살고 있지요. 마치 핸들이 높직한 검은 자전거들을 타고 꿈꾸듯이 가는 저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마치 불길한 흑조 떼들처럼 바다 주위로, 운하들을 따라, 온나라를 그칠 줄 모른 채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들은 구릿빛 구름 속에 머리를 묻은채 꿈을 꾸고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몽유병자처럼 안개의 금빛 향 속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으니, 그들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닙니다. 수천 킬로나 떨어진 자바로, 머나먼 섬들로 떠나고 없는 겁니다.(글이 참으로 아름답다)
(27)나는 떳떳한 편에 서 있었고 , 그것만으로 양심상의 평화를 누리기에 중분했습니다. 내게 권리가 있다는 느낌, 내가 옳다는 만족감,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데서 오는 기쁨은 인간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전진하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자존감 높은 수다쟁이 클라망스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모든 행위를 실천한다. 그러면서도 당연한듯, 아무렇지도 않은듯 행세한다. 난 그 천연덕스러움에 왜 웃음이 나는 걸까?)
(50)몸이 편치 못하면 마음도 시들해지는 법
(50-1)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바로 시칠리아섬이라구요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작년 10월 말이었다. 그런데 자꾸 이런저런 책들이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밀리고 밀려서 아직 읽기를 끝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매력이 없는 책인가? 어려운 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불편했던 건가, 사실 문장 자체는 하나도 어려울 게 없고 카뮈도 뭐 어렵게 써서 독자를 골탕먹이고 싶겠는가 의미를 덧씌워 독자를 멀어지게 하는 평론가들이 실제로 많은 게 사실이다.)
(81)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
난 삶을 사랑해요.이게 바로 내 진짜 약점이죠.어찌나 사랑하는지 삶 이외의 것이라면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아요.이 정도의 탐욕에는 어딘가 하층민 같은 구석이 보이죠,안 그래요? 귀족이라면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라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있게 되는 법이거든요. 필요하다면 목숨도 버릴 수 있지만 굽히느니 차라리 부러지지요. 그런데 나는 굽힙니다.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죠.
(장 바띠스트 클라망스는 자존감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84-85)나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나와 사귀게만 되면 나를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거라고 늘 생각해 왔던 거예요. 그런데 웬걸요!  나를 멀리서밖에 알지 못하며 또 내쪽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나 나에 대한 반감을 마주칠 수 있었어요. 아마 그들은 내가 아쉬울 게 없을 만큼 마음껏 행복에 젖은 채 살고 있다고 짐작한 모양이예요. 그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죠. 성공한 낯짝은 남의 눈에 잘못 띄게 되면 미련한 당나귀라도 분통이 터지게 만들 지경이지요. 또 한편 내 생활은 터질 지경으로 스케줄이 꽉 차 있었던 관계로 시간이 모자랐는지라 나는 수많은 호의에 찬 제안들을 거절하게 되었어요. 같은 이유로 해서 그후 나는 거절했었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렸죠. 그렇지만 호의에 찬 제안을 한 쪽은 충만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던지라 마찬가지 이유로 내가 거절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못했던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자기들과 나누어 가지지 않는 한 사람들은 나의 행복과 성공을 용서하지 못하는 겁니다.그렇지만 행복해지려면 남의 걱정을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해요. 행복을 누리면서 심판을 받느냐. 아니면 용서를 받고서 비참한 꼴로 사느냐지요.
(눈 하나 까딱 않고  천연덕스럽게 잘난 척(?)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찌 웃지 않을 수있으랴!)
(93)'모든 사람이 그대를 칭찬할 때 화가 있으리라!'라는 말 아시지요?
정말 명언입니다!
(123)때로는 참말을 하는 사람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속이 더 훤히 들여다보이는 일이 있어요.진실은 빛과 같아서 똑바로 보면 눈이 부셔요. 반대로 거짓말은 아름다운 황혼과 같아서 물건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보이도록 합니다.
(145)나는 당신보다 더 높아야 하겠으니 내 머릿속의 생각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겁니다.이런 저녁이 되면, 아니 이런 새벽이 되면이라고 해야겠지요. 전락은 새벽녘에 일어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이런 새벽엔 나는 밖으로 나가서 흥분한 발걸음으로 운하를 따라 걷습니다.희멀건 하늘에는 새들의 깃털로 쌓인 구름층이 엷어지면서 비둘기 떼들은 좀더 높이 올라가고 장밋빛 여명이 지붕들을 쓸면서 나의 천지창조의 새로운 하루를 알립니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굴복해 버린 이 대륙 전체의 저 위로 내 상념의 힘을 타고 부유하면서 솟아오르는 아침 햇빛의 압생트를 마시고 마침내 이 요상한 입심에 도취해 버린 나는 행복합니다.행복하다니까요.내가 행복하다는 걸 믿어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죽도록 행복하다 이겁니다! 오오! 태양이여,바다여, 그리고 무역풍에 씻기는 섬들이여, 생각만 해도 가슴 질리는 청춘이여!
(딱이 감이 오지 않은 채로 소설은 끝났다. 어찌 해설을 들춰 보지 않고 책장을 덮겠는가! 317쪽 중 그 절반이 해설인걸.)

빙하기
--이가림

 그 헐벗은 비행장 옆
 낡은 에레미야 병원 가까이
 스물 아홉 살의 강한 그대가 죽어 있었지
 쟝 바띠스트 클라망스
 스토브조차 꺼진 다락방 안 추운 永壁 밑에서
 검은 목탄으로 뎃상한 그대 어둔 얼굴을 보고 있으면
 킬리만자로의 눈 속에 묻혀 있는 표범 이마,
 빛나는 대리석 토르소의 흰 손이 떠오르지.
 지금 낡은 에레미야 병원 가까이의 지붕에도
 눈은 내리고
 겨울이 빈 허리를 쓸며 있는 때.
 캄캄한 안개 속
 침몰하여 가는 내 선박은
 이제 고달픈 닻을 내리어 정박하고서
 축축히 꿈의 이슬에 잠자는 영원인 것을,
 짙은 밤 부둣가 한 모퉁이로
 내 아무렇게나 혼자서 떠나보네
 갈색머리 흑인여자의 서러운 이빨같이
 서걱이는 한겨울 밤바다 살갗은
 유리의 달에 부딪쳐 바스러지고
 죽음보다 고적한 외투 속의
 내 사랑은
 두 주일이나 그냥 있는 젖빛 엽서
 조금씩 미쳐가며 나는 무서운 醉眼인 채
 황폐한 자갈밭을 건너
 흐린 가스등 그늘이 우울한 시장가에서
 눈은 내리고
 하얀 囚衣입은 천사처럼 잠시 죽어 봤으면 생각하다가
 포효의 거대한 불꽃으로나 멸망하기를 소망하다가,
 아아 자꾸만 목이 메이고 싶어지는
 내 고단한 木管의 노래는 떨려
 나목 끝에 마지막 한 장 가랑잎새로 지는 것을
 씁쓸히 웃으며 있네.
 지난 생 마르뗑의 여름 밤주막에서
 빨갛게 등불을 켜 달고
 여린 불빛들이 우리 잔등에 떨어져 와닿는,
 들끓는 소주를 독하게 마시며 울었지.
 쟝 바띠스트 클라망스
 그대 건강한 의사가 되겠다고 여름내 엄청난 야망은 살아
 자기 안의 한 무더기 폭약에 放火도 했지만
 참혹하게 파손되어 간 內室이었음을,
 어느 저녁 식탁에선가, 눈물 글썽이게 하는
 그대 슬픈 소식을 건네 들었지.
 지금은
 옷고름처럼 나부끼는 달빛에 젖어
 마른 갯벌 바닥으로 배회하다
 무릎까지 빠지는 맨발의, 괴로운 밤 게(蟹)가 되어서 돌아오는
 오뇌의 회오리 바람에 은빛 음계들이 머리칼마다
 흩날리며 있네.
 그 드뷔시 찾집 유리 속의 금발이 출렁이는 인형을
 젖은 눈이 성에 낀 창 밖을 보고
 수런대는 목소리들 잔 둘레로 넘쳐나
 비듬처럼 쌓여 가는데
 잊히인 의자 아래 이랑져 오는 음악의 꽃빛 눈부시는
 바람과 소리여,
 이 침전하는 葬送의 파도가에서 앉아서 단 한번
 고운 색깔이 아롱진 魚眼의 나는
 뜨거운 두 손으로 피곤한 이마를 묻어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