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자전거타기

맑은 바람 2024. 8. 3. 23:50

 발이 땅에 닿지 않게 안장을 높이고 자전거를 몸 쪽으로 기울여 왼다리를 폼 나게 쭉 뻗어 왼쪽 페달에 얹고
오른발로 살짝 땅을 밀면서 사뿐 안장에 엉덩이를 붙인다. 이어 페달을 두어 번 저어 핸들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가벼운 내리막길을 달리면 스멀스멀 온몸이 근질거려온다. 사악- 삭- 귓가를 스치는 오월의 부드러운 바람-
이제 막 자전거를 배운 초보생이 누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환희의 순간이다.
 
 사실 벌써부터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여러 해 전 일본의 가고시마를 여행할 때였다. 꽤 연배가 있어 보이는 여자분이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행동이
민첩해서, 가이드의 고령자에 대한 염려를 일시에 불식시켜버렸다. 부럽기도 하고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 뭔지
궁금하기도 해서 다가가 여쭤보았다.
 “연세가 몇이신데 이렇게 가볍게 잘 다니세요?”
 “내 나이 지금 칠십이유. 그런데 지금도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우.”
군살이라고는 하나 없이 단단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자전거라고--
 
 또 김훈선생의 ‘자전거여행’을 읽으면서 처음엔 그 글 솜씨에 매료되었으나 계속 읽어나가면서 나도 자전거를
타고 섬진강을 한번 달려보았으면-하는 바램이 생겼다. 차로 씽씽 달리는 맛도 좋긴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쉬엄쉬엄 가다가 멈추고 싶은 곳에 잠시 몸을 내려놓고 한가로이 자연에 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렬했다.
 
 마침 올해 내 나이 육십. 환갑기념이라고 한 모임에서 축하금(?)을 주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지갑에 넣고 다니면 흐지부지 나갈 게 뻔해 이 돈을 어떻게 가치 있게 쓸고? 생각하는데 그때
한 후배가 얼마 전부터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했다.
‘아, 바로 그거다.’
난 망설임 없이 올림픽 공원 안에 있는 자전거교육 사무실에 등록을 했다.
 
 8주 코스의 자전거교육을 신청했다고 했더니 식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마디 한다.
“아니, 학교 운동장에 가서 서너 번 넘어지면 배울 걸 가지고 무슨 8주씩이나--”
“아들아, 엄마 나이를 생각해 봐, 지금 나둥그러지면 골절상이야. 안 넘어지면서 배울 수 있는 곳이래.”
식구들 표정이 반신반의 한다.
 
 집과의 거리가 만만치 않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교육시간보다 길고 또 교육받으러 가기 위해 집안일을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둘러야 하고 다른 약속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반나절을 자전거 배우는 일에 다 쓰고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파김치가 된다.
 

 그럼에도 기쁜 마음으로 그곳에 갈 수 있는 건, 자전거 타는 일이 주는 즐거움이 꽤 크고, 나이 들어 뭔가 배울 수
있다는 일이 신나고, 이런 여건이 갖추어진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8주 코스를 끝내면, 나는 나의 가느다란 발목으로 페달을 힘껏 밟아 한강변을 달리게 될 것이다. 그런 후에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면  전남 구례로 내려가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길을 따라 경남 하동까지 600리를 달리며 조국산하의
아름다움에 맘껏 취할 수 있으리라.  Carpe diem!! (20080504)

남이섬에서 첫 시승식
63빌딩을 배경으로 한강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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