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지옥탈출

맑은 바람 2024. 8. 4. 20:42

병이 재발한 것이 한 열흘쯤 전부터였나 보다.

쭈그리고 앉아서 다리미질을 두어 시간 했었다.
늘상 그 자세였는데 이번엔 심상치가 앉다.
허리에 둔한 통증이 오고 등 뒤에 딱딱한 판대기가 한 장 붙어 있는 거 같다.
춥다고 한동안 운동을 안 해서 그런가 보다.

틈나는 대로 걸었다.
두리만 데리고 컴컴한 공원을 한 바퀴 돌기도 하고 혜화동에서 동대문까지 걷기도 하고-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기는커녕 몸이 점점 굳어온다.
이러다가 큰코 다치지 싶어 지난 목요일 종로5가 그 ‘명의’를 찾았다.
계란유골이라고! 목요일은 안 나오신단다. 연세가 높으셔서 이젠 일주일에 두 번 휴진이라고.

이제는 더 못 참겠어서 114에 문의했더니 그 흔한 정형외과가 혜화동엔 하나도 없고 성신여대 쪽에 있다고 해서 허위허위 찾아갔더니 사진을 3장 찍어보고 별 이상이 없단다.
남은 아파 돌아가시것는데--
그리고는 엉뚱하게, 엉덩짝에 이상한 뾰루지가 보인다고 대상포진이 아닌가 의심된다며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해 준다.

약값이 옴팡지게 비쌌다. 물리치료를 끝내고 나오는데 몸이 천근이나 된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차오른다. 30중반으로 보이는 개업의에게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다.
잘 돌아눕지도 못해 밤새 끙끙거리다가 화장실엘 갔다.
일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몸이 들리지를 않는 것이다. 앞이 캄캄하다.
지옥이 따로 없다. 눈물 콧물 흘리다가 어찌어찌 방으로 기어 들어왔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온 식구가 총출동, 부축을 받으며 다시 종로5가 이재경 한의원을 찾았다.
넉넉한 웃음의 한의사는 또 왔느냐며 침을 놓기 시작한다.
우선 코밑에 장침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느질하듯 한 뜸 꿰고,
목 한가운데에도 한 방, 정수리에도 한 방, 양쪽 귀 밑에 한 방씩,
그밖에 등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수십 개가 꽂힌다. 어떤 침은 엉덩이를 찌르니 발뒤꿈치까지 찌르르 전기 오르는 듯하다.

"그런데 제가 뭘 치료하기 위해 침을 맞는 거예요?"
일단 마음이 놓이니 질문이 나왔다. 의사들은 묻기 전에는 얘기 안 해주는 게 상례 같다.

"좌골신경통예요, 좌골신경통! 과로하거나 소화가 잘 안 되면 도지는 병예요."
30분 후에 침을 뺐다.

조심스레 침대를 내려왔다.
근육을 찢는 것 같은 통증이 사라졌다. 걸을 만했다.
혼자 힘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눈물 섞인 웃음 속에서--

오늘 이틀째 치료를 받고 좀 살 만하니 또 이러고 앉아 있다.(200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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