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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맑은 바람 2024. 8. 6. 16:49

얼마 전 니이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어.

그때의 홀가분함을 지금 다시 맛보네.

소위 말하는 세계명작(고전)이라는 걸 과연 몇 권이나 제대로 읽었나 살펴보면 부끄러울 지경이야.

문학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말이야.

어쨌거나 내 생애 요즘같이 마음 편하고 한가로운 시간이 얼마나 내게 주어지려나 몰라도 촌음을 아껴가며 못 다 읽은 책들을 찬찬히 읽어나가야겠어.

이제나 저제나 첫 장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돈키호테>, <신곡>을 우선 읽은 후 중국 고전도 읽어야겠어.

가까이에 정신의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피상적인 것만 보고 가볍게 여기는 잘못된 근성도 반성하면서 말이야.

 

글 속의 가 반한 조르바야말로 니체의 위버멘쉬(초인)가 아닌가 싶어.

조르바--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러면서도 만물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고 신비롭게 마주하는 사람-물질적으로 가진 것 없어도 임기응변과 선천적인 순발력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취하는 사람-가진 것을 다 잃고도 춤추며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그게 제정신이냐고 세상의 윤리적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그도 어쩔 수 없는 파렴치한이 되기는 하지만-

평생 책만 읽고 펜대 운전이나 하던 가 만난 조르바는 그가 열망하던 인간상이었어.

조르바는 실제로 작가가 펠로폰네소스에서 만났던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는군.

조르바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어.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그는 아주 짧은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조르바와 같이 있었던 시간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회상하네.

그는 '행복'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피력했어.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야

나는 조르바의 삶과 일에 대한 생각이 특히 맘에 들었어.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죽으면 말썽이 없지.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책은 독실한 기독교인(?)들에게는 다분히 불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수도사나 주교 등 종교인들을 노골적으로 희화화하고 있어.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통쾌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카잔차키스는 교회를 거부하여 그의 고향에 따로 묻히게 돼.

그러나 내겐 이 두 사람이 무척 맘에 드는구먼.

그렇게 용감하게 말하고 살 자신은 없어도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어.

 

만약 내가 일부러라도 난 하느님을 믿지 않아 라고 입 밖에 냈다가는 당장 친구들 무리에서 배척당하고 사탄이 든 사람

취급을 받을 거야. 그래서 답답하지만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해.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난 나의 길을 가면 그뿐이니까.

 

니체나 카잔차키스를 왜 지성인이라 하겠어? 쏟아질 천둥 번개 벼락을 감수하고서라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펼친 이들이잖아.

어제 알렉산드리아주교 아리우스의 파문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더군.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다수에 묻혀 속 편하게 갈 수도 있는데 스스로 소수자가 되어 불편하고 힘든 여정을 택하는

입장이 되는 사람들-그것도 아마 그들의 운명이겠지?

끝으로 두 사람의 유언과 묘비명을 들어볼까?

 

조르바: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하지 않는다.

신부가 종부성사를 오거든 꺼지라 해라.

평생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아직도 못한 게 있다.

나같은 사람은 천년을 살아야 하는 건데-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 크레타 이라클리온 태생

백혈병으로 사망

생존 시 터키의 지배 아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을 목격하며 독립전쟁에도 참가했다.

작가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자유에 대한 열망과 여행이다.

그리고 작가의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은 호메로스, 단테,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다.

작가는 그리스도에 대한 독창적 해석으로 그리스정교회와 교황청의 노여움을 산다.

파문당한 카잔차키스는 고향 크레타에 묻혔다.

그의 죽음을 곁에서 지켰던 슈바이처는 말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나에게 감동을 준 이는 없다. (읽은 때 2019.091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