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 수필집/청림출판/ 286쪽/ 1판1쇄 2014년 11월 7일/읽은 때 2024년 11월 9일~11월14일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대학원 박사/1996년부터 동 대학교수/ 2008~2013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에서 수석연구원을 겸임/2011년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의 '괴테금메달'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함/같은 해 '서울대 교육자상' 수상/평생 시인으로, 학자로 살아온 저자는 최근 '맑은 사람을 위하여, 후학을 위하여, 詩를 위하여 ' 독일과 한국에 의미있는 공간을 마련했다./파사우에 지은 한옥 정자와 여백서원이 그것이다/이 책은 저자의 첫 에세이집으로 삶과 글 사이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독일과 한국을 자주 왕래하며 마음을 오간 단상, 삶의 지혜를 담았다.
프롤로그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9)"맑은 사람들을 위하여, 후학을 위하여, 詩를 위하여"
그것이 맑은 사람들의 집, 여백서원의 모토이다.
첫 수필집을 내는 작가의 심정:
----작은 쪽지를 유리병에 담아 망망대해에 띄워보는 심정이다.누구에겐가 가 닿을 수 있을까.그러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 쪽지같은 글을 쓰며 내 나름으로 깨친 작은 삶의 지혜들이, 귀한 사람들의 마음의 해안에 가 닿았으면좋겠다.
1.인생을 배운 찰나의 순간들:
(18)허구로써 현실을 감내해 보려는 것, 그것이 문학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또 그런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인문학의 진면목일것이다.
(25)시골아이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
고운 마음으로 그 작은 마을까지 와서 음악회를 빛내준 이가 그 피아니스트 한 사람 뿐이겠는가.그들모두가 나뿐만 아니라 내 마을의 꼬마친구들의 기억 속에 별처럼 남이있을 것이다.그들이야말로 빛나는 별이다.별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들도 빛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별들을 하나씩이라도 기억에품은 우리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다 조금씩 빛나고 있는 것 아닐까.
(45)물살을 삶을 헤치는 법:
세상은 언제나 내가 두렵게 그 앞에 섰던 큰물 같았다. 두려우면서도 세차게 마음을 끌며 나를 우리를 불렀다.그러나 두려움을 이기며 내 스스로 헤쳐가는 곳이자, 헤쳐갈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53~54)삶의 기본 중의 기본:
노동을 익숙한 것으로 만들고 거기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아 느낄 줄아는 것, 그렇게 하도록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일이야말로 삶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 삶의 지혜 중에서도 지혜이다. 그 성취로 사람이 땅에 발 붙이고, 그 보람으로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갖추어 주어야 할 두 가지, 괴테가 요약했다.
'뿌리와 날개'라고. 즉 노동과 격려일 것 같다.
(64)그래도 한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할 때:
--유대인들이 멸족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은 한 사람 시인을 살리기로 했다.--
이작 카체넬존이 그 사람이다.
그는 일 년 반 정도 비텔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그 모든 것을 4행씩 15연으로 구성된 15편의 긴 노래로 만들어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후에 그는 위조여권이 발각되어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실려가 죽는다. 숨긴 여섯 부 중 두 부가 나중에 세상밖으로 나왔다.
시인 볼프 비어만에 의해서다.
그걸 번역한 것이 <유리병 속의 편지>다.
2.몹시도 귀한 것, 가장 귀한 것
(78~79)
예술과 학문을 지닌 자
종교도 가진 것이다.
그 둘을 소유하지 못한 자
종교를 가져라--괴테
학문--이 천치의 종교. 이제, 그 밖의 모든 것을 거의 다 버린 이제야, 읽기와 쓰기가 내게서 시작되려는것 같다.
(100-103)손안에서 피어나는 꽃:
--이제는 엄마 못지 않게 바삐 살아 얼굴보기조차 어려운 딸이 엄마에게 꽃이 된 이유--
중학생이 된 딸이 폭설이 쏟아지던 어느 날, 통장의 돈을 몽땅 털어 백화점에서 고급 만년필을 사가지고 와서 건넸다.
엄마의 병은 아마도 오로지 쓰고싶은 글을 다시 씀으로써나 치유되리라는 것을 딸은 눈치채었던 것이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다닐 무렵 일에 치여서 곤죽이 된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 엄마 책들이 있잖아요.남는건 글뿐이잖아요.아니,더 중요한 걸먼저 말 안했네. 그보다 먼저 학생들 속에, 그 마음속에 엄마가 남아있잖아요"
딸이 열한 살 무렵 쓴 편지:
"저는 어머니께서 어려운 일도 맡은 일이라면 건강도 잊고 열심히 하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지요.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바로 어머니마음 속의 시,바로 좋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만년필을 잡으면 글을 쓰지 않아도 손이 따뜻하다. 만년필을 놓고 스탠드 불빛 앞에서 손을 펴본다.아무것도 없다.그러나 주먹을 가만히 쥐었다가 다시 펴면, 내 손 안에서 꽃 한송이가 피어나는 듯하다.
(전영애작가는 세상 모든 이들이 시기ㆍ질투해서 미워해도 그 옆에 단 한사람 흔들림없이 든든한 지원군 딸이 있기 때문에 겁날 것 아무것도 없으리라, 멋지다, 딸내미, 부럽다, 그 어미!)
(107)마침내 만난 진정한 학문의 스승:
헨드릭 비루스 교수/독보적인 전문가인 석학/그분에게서 이마에 키스를 받았다/그것은 사랑과존경이담긴인정이었다./작가 나이 49세 때였다.
세상은 때로 절벽 끝을 붙잡고 매달려 있는 사람의 손을 짓밟듯이 가혹했다.어쩌면 세상의 정말 중요한 일들은 바로 외로움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런 이치를 젊었을 때는 몰랐다.
(117)선물:
나도 이제부터 사람들을 좀 기쁘게해야겠구나.내가 무슨 큰 일,무슨 큰 선물로 누군가를기쁘게 하겠는가.진정한 관심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로 서로 좀 기운나게 할 수는 있겠지.그럼으로써 실은 내 자신이 가장 기쁠 테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내자신에게. 하는 큰 선물이겠구나.
3.한 삶으로부터
(135)아름다운 사치:
--<서ㆍ동시집>마지막 시편<낙원의 서>의 한 단락--
천상의 성처녀가 낙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보이라고 요구한다.진정한 戰士가 아니면 낙원에 들어갈 수 없는까닭이다.그러자 시인이 답한다.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 마시오.
여기 이 가슴을 보시오.
나 살았다오, 그건
전사였다는 뜻이지
이 가슴을 보아요,
삶의 상처--간계를
사랑의 상처--욕망을
(작가가 '아름다운 사치'라고 하는건 괴테뿐만 아니라 독일작가를 연구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어느 도서관이든지 충분한 자료들을 구비해 놓고 마음껏 읽고 쓰게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 주어 힘 닿는 데까지 읽고 쓸 수 있어서 한없이 고맙고 행복하다는 의미다.)
(144)몸 가볍게 떠나신 아버지: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에 들려드린 작별 인사--
"힘드시지요? 지금 아주 높은 산에오르는 중이셔요. 많이 힘드신데 저희가 같이 못 가네요.하지만 저희도 곧 따라갈 거예요.산에도 늘혼자 가셨지요. 지금 올라가시는 산은 아주 높은 산이니 올라가시면 장관일 거예요. 높은 산에서 보신 것은 늘 글로 쓰셔서 들려주셨지요. 지금 가시는 높은 곳 이야기도 저희에게 들려주세요"
(183)내의식의 뒤편에는 늘 어머니가 머물러 계신다. 그렇게편찮으시면서도 의식이 있는한 세수 못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신적이 없는단정함, 글씨적힌종이면 찢긴 신문지 조각조차도 발로 타넘는법이 없었던 글에대한 간절함---.
(누군들 제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그리움이 없겠는가.걸핏하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나고 그러면 잘한 것도 없이 몇날 며칠 밥을 안 먹고 속을 태우던 이 딸이 아닌가.어머니는 내 삶의 롤 모델이다. )
4.시를 굽는 사람들
(191-193)2013년 성탄절 전날 여백서원 첫삽을 뜨다:
대들보 위에 쓴 글씨--
爲如白爲後學爲詩
장래의 나의 직업도 구체화되어 간다. '시 굽는 사람' 우리 동네가 도자기 고을이라 흔한 흙을 편편하게 해서 시를 적어 구울 생각이다.그렇게 내가 읽은 시들을 구워야지.구워서 나누기도 해야지.
5.사랑이 우리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