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35일간의 조지아 자유여행

조지아를 향하여

맑은 바람 2024. 11. 25. 21:30

2019년 어느날 지인이 조지아여행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그게 어디 붙어있는 나란데?"
이때부터 내 안에 조지아라는 나라가 들어와 관심과 열망의 대상이 되었다.
조지아 관련 책들을 찾아보았으나자료가 많지 않았고, 제일 도움이 되었던 건 현경채의 <매혹의 땅 코카서스>였다.
그 책을 꼼꼼히 읽고 메모하면서 여행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여, 우리들의 <결혼 50주년 기념여행>은 조지아를향했다.

"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Helen Keller

나는 여행을 떠날 때 이 귀절을 음미하면서 여행의 길잡이로 삼는다
조지아는 남한의 2/3에 해당하는 크기로 주요 도시에 2~3일 머물 예정으로 숙소를 예약했다.
35일간의 여행스케줄이 나왔다.

서울출발-->이스탄불공항-->트빌리시-->시그나기-->텔라비--> 므츠헤타-->카즈베기-->보르조미-->쿠타이시-->메스티아(우쉬굴리)-->바투미-->이스탄불공항-->서울도착

왜 조지아인가?
1.雪山의 나라
러시아와 조지아를 갈라놓는, 해발 5000m이상인 봉우리가 십여 개가 넘는다는 코카서스(캅카스) 산맥--그리스인들은 그곳이 지구의 끝인 줄 알고 프로메테우스를 그 설산에 걸어놓았다던가?
바로 그곳에서 조지아의 상징인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2170m)를 보고 <카즈베기 산>(5054m)도 보았다.
아침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카즈베기산은 얼마나 황홀했던가!

**"코카서스의 장엄함과 사람들의 낭만적인 기질이 방황하던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고리키

이와 함께 놓칠 수 없는 풍경은 북서쪽에 위치한 메스티아의 <우쉬바 설산>(4710m)과 우쉬굴리의, 조지아 최고봉 <시카라설산>(5203m)이다.
보고싶다는 열망이 없었다면 그 아찔한 순간들을 어떻게 감내할 수 있었을까!
쿠타이시에서 메스티아로 가는 길은 두 대가 겨우 비껴갈 정도의 좁고 가파른 길을 세 시간 가까이 달린다.한쪽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돌산이 온갖 형상의뾰족한 돌부리를 밖으로 향하고 있고 뿌리가 반쯤 뽑혀져서 비라도 두어 번 내리면 뿌리째 뽑혀 차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커다란 나무들이 사뭇 위협적이다. 그런가 하면 반대쪽은 천길 낭떠러지 아래강물이 거센 물살을 일으키며 흘러간다. 곳곳에 산사태로 또는 추락사고로 가드레일이 부숴져 나간 곳이 눈에 띈다. 여행사가 메스티아, 우쉬굴리 쪽을 기피하는 이유를 알겠다.

2.와인 종주국
8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와이너리가 발견된 곳이다.도처에 와이너리가 있는데 종류가 다양하고 와인 가격도 파격적으로 싸다.
술맛을 뭘 알겠느냐마는 와인의 그붉고 투명한 빛깔을 바라보며 한 모금씩 목을 축이는 그 여유를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술 한 방울 입에 못대는 대니(남편의 愛稱)가 옆에 있으니, 혼자 홀짝홀짝 마셨어도 한 달여 동안 열 병을 넘기지 못했다.

와인을 사랑하는 이여!
조지아로 오라.

맘껏 즐기고 취할 수 있으리.

3.성당과 수도원이 40여 개가 있는 나라
국민의 84%가 조지아 정교회 신자라, 도처에 성당과 수도원이 있다.
대개는 지대가 높고 풍광이 빼어난 곳에 있어서 관광의 목적이 되기도 하지만 찾아가는 곳마다 촛불 봉헌하고 기도를 올리면 마음이 정화되고 여행의 피로가 일순간에 사라져 버린다.참으로 귀한 순간들이었다.

4.좁은 땅덩어리
호주나 캐나다 같이 땅덩이가 넓은 곳은 자유여행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조지아는 인구 400만이 채 안 되는 데다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1/3 크기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명소들을 택시나 마슈르카로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유럽에서도 하늘 아래 첫동네로 알려진 <우쉬굴리(해발 2200m)> , 운전기사 겸 가이드가 꼭꼭 숨겨놓았다 보여준다는 천상의 낙원 <헤쉬킬리(Heshkili)>, 보르조미에서 80km 거리에 있는, 한때 7000개의 동굴에 5만여 명이 살았다는 <바르지아 동굴도시> 등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5.조지아 사람들

1)신앙심이 깊고 배려심이 강하다:
버스를 이용하다 보면 혼자 차에 오른  개도 보고, 붐비는 버스 속에서도 갑자기 성호를 긋는 이들을 발견한다.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면 거기에 성당이나 수도원이 있다.  조지아인은 외모는 유럽인, 정서는 동양인인가 보다.
선그래스를 쓰고 있는 데도 용케 알아보고 기꺼이 자리를 내준다.

 

2)통뼈다
박물관에서 전투가 잦던 시절의 조지아 군인을 보았다.근육질의 전형적인 마초다.
그러나 전쟁이 잠정적으로 끝난 지금은 남녀가 거의 100kg 안팎인 몸을 이끌고 거리를 활보한다.
누가 그랬다.
'조지아에 가서는 절대 그들과 다툼을 벌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성질도 불같아 싸움에 휘말리면 백전백패한다고.
여성들도 통뼈이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한달살이를 할 양으로 짐을 꾸렸으니 트렁크가 족히 30kg 가까이 나가는 데도 숙소의 여주인은
"I'm strong, no problem!"
하더니 가방을 번쩍 들고 가파른 이층 계단을 오른다.
한번은 택시를 타고가는데 운전대를 잡고 있는 기사의 팔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니도 결코 가는 팔뚝이 아닌데 그와 비교가 안 됐다.

6.저렴한 물가
숙소,교통비,식재료가 터무니없이(?)싸다.
ㅣ)숙박비
잠자리에 까다롭지 않은 체질이라면 굳이 1박에 3만원하는 게스트하우스를 놔두고 30만원하는 호텔을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대니가 순토종이라서 밥을 해먹을수 있는 곳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선언을 했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를 주로 이용했다.
2)교통비
땅이 좁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시를 1시간 안팎이면 다 둘러볼 수 있어서 택시를 타도 기본요금도 안 나온다.물론 얀덱스나 볼트 어플을 깔아 이용하는 경우다.
3)식비
식당은 그리 싼 편은 아니다.
조지아 전통 음식을 맛보아야겠기에 이삼일에 한 번꼴로 식당을 찾았으나 번번히 가격 대비 음식맛이 떨어져 실망했다. 대체로 짠맛이 강했다는 게 흠이다.
그러나 농부들이 직접 수확해서 차에 싣고 나온 싱싱한 청과물은 2~3천원이면 한보따리라 그것들을 안고 돌아설 때면 흡족한 웃음이 절로 났다. 음식을 만들어 먹고 다니는 우리 부부에겐 더할나위없이 맘에 드는 여행조건이었다.

그러나 어찌 매력만 있겠는가?
모든 사물이 음지와 양지가 있듯이 조지아도 두려움을 극복해야 갈수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1.러시아와 인접국
카즈베기에서 근거리(11km)에 <Dariali Monastery>가 있는데 가보지 않겠냐는 주인의 권고에 따라 숙소를 나섰다. 그곳은 러시아 최접경지대로 코카서스산 아래로 굴을 뚫어 주로 대형화물트럭이 왕래하는 곳이라 검문소 규모도 어마무시했다.어찌 살벌함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숨도 크게 못 쉬고 바라보다가 차를 돌렸다. 국경검문소 앞 2차선 좁은 도로 위엔 끝이 보이지 않게 대형 수송차량들이 길게 늘어서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즈베기옆 남오세티아 지역은 지금도 러시아 관할 구역이라 여행이 금지되어 있다.
땅 따먹기에 혈안이 된 푸틴이 언제 야심을 드러낼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2.험난한 지형
카즈베기와 메스티아는 코카서스 산자락에 있는 도시라 길이 좁고 험해서 대부분의 마슈르카(16인승봉고차) 기사들이 젊고 체력이 좋아보였다.
도로는 일차선인데다 비포장도로다.한쪽은 하늘과 맞닿은 가파른 산이 있고 반대쪽은 천길 낭떠러지아래 구비구비 강이 흐른다. 마슈르카 안은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기도하는 자세다. 그 스릴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기는 하지만.

3.언어 극복의 문제
조지아는 1991년에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다. 러시아에서 벗어난 지 겨우 30년 남짓한 나라에서 영어만을 들고 돌아다닌다는 건 어림없는 일~
조지아인이라도 게스트하우스의 주인들 대부분은 영어를 쓴다.
그런데 택시운전사들 거개가  "나 영어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바로 구글 번역기를 돌려 러시아어나 조지아어를 쓰면 숙소의 주인과도 택시 기사와도 여유까지 부리며 대화를 즐길 수(?)있다.
박물관에 가서도, 현지인을 만나서도 아쉬운 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있다
자유여행자가 완벽하고 세련된 걸 기대하겠는가. 좌충우돌하며 다니는 거다.

에필로그 <35일의 기적>
삶의 어느 하루도 기적이 아닌 날이 없지만 이번 여행에서 몇 가지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한 달여를 부부가 24시간 같이 지내면서 티격태격 한 것은 단 두 차례.물론 두 차례 다 이눔의 입방정 때문이지만서두.
또 하나의 기적과 같은 일은, 날씨가 더없이 화창하고 좋아 날마다 해발 5000m 고지의 코카서스 설산과 푸른 하늘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여행자에게 좋은 날씨는 그 자체가 선물이다. 게다가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조지아로 여행을 떠나려거든 3월 말에서 4월을 택하시라!

제일 감사한 일은, 70후반의 두 노인이 탈 한 번 나지 않고 35일을 잘 버틴 점이다.
바투미를 떠날 무렵엔 무릎 사정이 좀 안 좋긴 했지만 누구의 도움없이도 걸어다닐 수 있지 않았던가.
70대 노부부에게 <35일간의 조지아 자유여행>은 진정한 '花樣年華'였다.

그대 자유로운 영혼이 원하는 곳으로
그대 자유로운 곳으로 떠나라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무모하게
--푸쉬긴 <시인에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