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산문/나남/332쪽/초판 2024.6/초판6쇄 2024.7/읽은때 2025.2.26~3.2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을, 영양가는 있으나 별로 땡기지 않는 음식을 먹듯 숙제처럼 읽고 나서, 이제 내 입맛에 맞는, 구수하고 달착지근한 빵이거나 매콤달콤한 떡볶이 한 접시 받아든 기분으로 김훈을 만나니 편안하고 좋다.
<허송세월>이라니 제목도 맘에 든다.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산다고 하면서도 더이상 돈 벌러 출퇴근을 안 하니 '허송세월'하는 기분이 자주 든다. 동년배의 김훈은 그런 나의 마음을 족집게처럼 집어서 얘기를 풀어놓는다.
(13)와인:
와인은 현실을 서서히 지우면서 다가온다.와인의 취기는 비논리적이고 두루뭉실하다. 이 취기는 마음 속에 몽롱한 미로를 끝없이 펼쳐놓는데, 그 미로를 따라가면서 마시다 보면 출구를 찾지 못한다. 와인의 맛은 로맨틱하고 그 취기의 근본은 목가적이다.
(14)막걸리:
농부들 틈에 끼어서 풋고추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실 때 나는 오래된 농경사회의 평화를 느꼈다.
(15)소주:
아아! 소주.한국의 근대사에서 소주가 정신의 역사와 대중 정서에 미친 영향을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주는 대중의 술이며 현실의 술로서 한시대의 정서를 감당해 왔지만 풍미가 없고. 색감이 없고 오직 찌르는 취기만 있다. 소주는 아귀다툼하고 희로애락하고 생로병사하는 아수라의 술이다. 소주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 소망과 좌절을 멀리 밀쳐내고 또 가까이 끌어당겨서 해소하고 증폭시키면서 모두 두통으로 바꾸어 놓는다. 소주는 생활의 배설구였고 종말처리장이었는데, 나 역시 거기에 정서를 의탁해서 힘든 날들을 견디어 왔다.
(16)사케:正宗, 淸酒
사케의 맛은 쌀의 엑기스를 추출해내고 사케의 취기에는 稻作農土의 질감이 들어 있다.사케는 깊이 스며서 넓게 퍼지고 익어가는 밥의 안온함으로 몸을 덥혀준다. 사케를 마실 때 나는 술이 나를 안아주는 느낌을 받는다.
사케는 겨울의 술이고 나이 든 사람의 술이다.
**사케--쌀을 누룩으로 발효시켜 맑게 걸러낸 일본 전통술
(17)위스키:
위스키의 취기는 논리적이고 명석하다. 위스키를 넘기면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그 전류의 잔잔한 여파들이 몸속으로 퍼진다.몸은 이 전류에 저항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인다.저항과 수용을 거듭하면 저항의 힘은 적어지고 수용의 폭은 넓어져서 취기가 쌓인다.
온 세상 사람들이 너도나도 위스키를 마신다 해도 위스키는 공동체의 술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술이다. 그래서 위스키를 좋아하면 혼술을 자주 마시게 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기 쉽다.
1부 새를 기다리며
(37)늙음은 병듦을 포함하는 종합적 생명 현상이다.
--나이를 먹으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져서 시간에 백내장이 낀 것처럼 사는 것도 뿌옇고 죽는 것도 뿌옇다.
(39--40)나와 세상 사이에 본래 칸막이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내 손으로 칸막이를 세워 놓고 말의 감옥 안에 스스로 갇혀서 그 안에서 말을 섬기면서 살아왔으니 불쌍하다.
나여,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개념에 해당하는 실체가 실재하는지 아닌지 확실치 않은 저녁들이 뿌옇다.
(43-44)햇볕을 쪼일 때
햇볕은 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 온다.햇볕은 신생하는 현재의 빛이고 지금 이 자리의 볕이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 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나와 해 사이에는 사이가 없다.그때 내 몸의 모든 세포가 깨어나고 숨구멍이 열린다.빛과 볕이 내 창자와 실핏줄의 먼 구석에까지 닿아서 음습한 오지가 환해지고 공해에 찌든 간과 허파가 기지개를 켠다.
햇볕을 쪼일 때,
나는 햇볕을 만지고. 마시고 햇볕에 내 몸을 부빈다.
햇볕을 쪼일 때,
내 몸의 관능은 우주 공간으로 확장되어서 나는 옷을 모두 벗고 발가숭이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햇볕을 쪼일 때,
나는 내 생명이 천왕성,명왕성 같은 먼 별들과도 존재를 마주 대하고 있음을 안다.
햇볕을 쪼일 때,
나와 해 사이의 직접성을 훼손하는 장애물은 없고, 내 그림자가 그 직접성의 증거로 내 밑에 깔린다.
(51)뼛가루 한 되 반: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 하듯이, 세수하고 면도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었다.
(54)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의술의 목표는 생명이고 죽음이 아니다.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들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다 살았으므로 가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고무호수를 꽂아서 붙잡아 놓고서 못 가게 하는 의술은 무의미하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66)우리 새, 우리 나무:
꽃과 나무는 본래 정해진 주인이 없는 것이고 쳐다보는 사람이 주인이건만 제 집 마당에 들어와 박힌 것에 각별한 인연을 느끼는 것은 인생의 옹졸함이겠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5월에 숲속의 모든 새들이 둥지를 짓고 알을 품어도 내 집 마당에 들어온 새를 보고서야 모든 새들의 둥지와 거기에서 깨어나는 새끼들을 생각할 수 있으니, 나의 아둔함은 내 자식들과 마찬가지다.
(82)나는 며칠 후 퇴원했다.호수공원에 산책 나갔다가 두 다리로 걸음을 걷는 일의 복됨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 땅이 있어서 인간의걸음을 받아주었다. 꽃들이 피어 있는데, 창세기 때 핀 꽃을 이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내 옆에 꽃이 피어 있었구나. 이걸 모르고 먼 데를 헛되이 헤매고 있었구나. 살던 세상으로 돌아오길 잘했구나.
(병실에 갇힌 체험을 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리라. 저 거리를 두 팔을 휘저으며 활보하는 사람들을 넋놓고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순간의 경험을)
(98)지금보다 젊었을 때 나는 태풍전망대에서 소나기를 만나면 나무처럼 두 팔을 치켜들고 비를 맞았다. 짧은 바지와 짧은 티셔츠 차림으로 소나기를 맞으면 빗줄기는 내 맨 몸을 직접 때리고 몸의 구석구석을 흘러내린다. 그때 나는 한 그루의 나무였는데, 지금은 신명이 줄어서 이런 기막힌 놀이를 할 수가없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오른다. 김훈의 작품을 번역원에서 일찌감치 다루었더라면 그에게도 노벨문학상의 기회가 주어졌을지도 모르는데~~<하얼빈>,<칼의노래>, <흑산> 등은 한국인의 정신의 표상을 제대로 다룬 작품들 아닌가!
고난의 순간들을 다룬 작품도 의미 있지만 한국인의 자긍심을 보여주고 미래의 표상을 제시한 작품들이야말로 진정 가치있는 게 아닐까? )
2부 글과 밥
(128)호수공원의 연꽃을 보고:
모든 생명은 본래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가득차며 스스로의 빛으로 자신을 밝히는 것
(133)18세기 조선의 지리학자 신경준<1712~1781>의 道路考 중에서: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집과 길은 중요함이 같다.길에는 주인이 없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138-141)'-에'의 매력에 빠지다:
'吾等은 玆에 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3ㆍ1독립선언서 첫 문장
'열치매 나타난 달이
흰구름을 쫓아 떠가니'--<찬기파랑가> 중에서
'서울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니다가'--<처용가> 중에서
'청산에 살어리랏다'--<청산별곡> 중에서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국화 옆에서> 중에서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나그네> 중에서
'친한 벗이 한자 글월도 없으니
늙어감에 외로운 배만 있구나'
(親朋無一字 老去有孤舟)<두시언해> '악양루에 올라서' 중에서
'가는 비에 고기 물에 나와 있고
가만히 부는 바람에 제비 비껴 나는구나'(細雨魚兒出 微風燕子斜)--<두시언해> '초당 앞 정자에서' 중에서
한국어 조사 '--에'는 문장의 논리적 기둥을 이루면서도 문장 안에 자유의 공간을 유지한다.한 음절뿐인 그 성음은 낮고 작아서 잘 들리지 않지만, 논리의 경직성을 풀어주고 글의 세상을 넓혀 준다.
'소나기에 들이 깨어났다',
'바람에 꽃이 진다',
'봄볕에 노인의 몸이 마른다'
라고 한국어로 쓸 때, '에'는 인과관계를 말하기도 하지만, 논리와 정한을 통합하는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연다.
조사'에'는 헐겁고 느슨하고 자유로워서, 한국어의 축복이다.
(조사 하나를 가지고 一家見을 펴는 이 놀라운 솜씨!)
(154-157)독서광 김득신(1604-1684):
조선 중기 시인/세익스피어와 동시대인/詩話集<종남총지>가 있다./여러 시인 묵객의 풍류행각과 작문을 수집,비평한 글/ <史記> <漢書 ><韓兪文集> 같은 책들은 손으로 베껴 써가면서 만여 번을 읽었고 <伯夷傳>은 1억 1만 3천 번을 읽었다/경술 흉년 때에 죽어 나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때도 책만 읽고 있으니, 어떤 사람이, "금년에 굶어 죽은 사람과 자네가 읽은 책 중에 어느 것이 더 많은가" 라고 물었다고 스스로 조롱거리가 되었음을 인정했다 한다./괴산에서 독서하던 중 화적의 칼에 맞아 죽었다./숙종실록은 김득신이 젊어서부터 글을 좋아했으나 사람됨이 *오활하여 시대에 쓰인 바 없었다고 기록했다./60대 중반에 **장령으로 임명되었으나, 부적절한 인사라고 탄핵받아 해직되었다.
*오활하다--현실의 경우와는 관련이 멀다
**장령--사헌부 기간 요원. 고위관리의 부정부패를 조사하고 기소하는 중책으로 강직한 젊은 엘리트를 임용했음
백이전을 '1억 번 이상' 읽었다는 데 대한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쳇지피티에 물어봤다.
(207)키스에 대해:
키스는 현재의 폭발이고, 함몰이고, 新生이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에 속박되지 않는다. 이것이 키스의 본질이다.
---
키스는 인간의 생명이 매 순간마다 새롭게 맞닥뜨리며 살아야 할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 시간의 꽃으로 피어난다.
(210)전국의 거리에 여러 정당들의 정치 구호를 적은 현수막이 가득 내걸렸다.---그것은 치매의 깃발처럼 대도시의 중심부에서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그 현수막 아래서 젊은이들이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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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저렇게 살아서 서로 끌어안고 키스하고 있으니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다.그 키스는 미세먼지 자욱한 세종로 네거리의 키스였고 치매 증세로 펄럭이는 현수막 아래서의 키스였지만, 새롭게 살아 나가야 할 날들의 키스였고 한용운의 시에 나오는 '이제'와 '지금'의 키스였다. 키스는 관능이고 혁명이다.
3부. 푸르른 날들
(231)정약용과 정약전:
형틀에 묶인 정약용은 천주교인들을 적극적으로 고발했다.정약용은 이승훈과 조카사위 황사영, 주문모신부를 지목했고, 천주교인들을 효과적으로 색출해 낼 수 있는 방안을 포도청에 조언했다.정약용은 사형을 면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
정약전은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받은 후 교회 모임에 여러 번 참가했고, 그의 동생인 순교자 정약종에게 전도했다.정약전은 그후 천주교와 결별했으나 신유박해 때 다시 기소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235-237)황사영:
정약용의 조카사위[1775~1801]
황사영의 생애와 죽음은 순결하고 참혹하다/황사영은 15세에 진사로 급제해서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왕조의 금지옥엽으로 입신했고 만고역적으로 죽임을 당했다./수배망이 좁혀지자 그는 충북제천 산골 옹기마을 토굴에서 북경의 주교에게 보내는 밀서를 썼다.그것이 <황사영 백서>다.
황사영은 초야의 布衣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현실의 야만성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 야만성의 현실적 뿌리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는 순결했으므로, 순결한 만큼 세상에 분노했고, 순결한 만큼 세상 물정을 몰랐다. 그는 세상물정에 아둔한 만큼 담대했고, 담대한 만큼 무모했다. 그는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아마도 그때 내가 동료 신앙인으로서 그의 곁에 있었더라면 나는 그의 행동을 말렸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인간이지만, 그의 순결하고 또 거침없어서 무모한 청춘의 영혼이 살아 남아 이 가짜 뉴스로 어수선한 시대를 향해 한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238)찰스 다윈, 정약전, 정약용, 이벽, 이승훈, 황사영, 안중근은 모두 내 마음속의 영원한 청춘이다.
(239)訊問 받는 안중근:
--그대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일 것이다.
--그렇다.
--그렇다면 그대는 사람의 도리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닌가?
--성서에도 살인은 죄악이라고 했다.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가 있는 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한 것뿐이다.
(253-255)東學의 이념:
어린이를 자유롭고 창발적인 個我로서 인식, 어린이는 사회의 공적 구성원이며 공동체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인적 자산이라 가르쳤다.
이는 수백 년 역사의 어둠을 걷어내는 개벽이었다.
동학의 敬人 사상은 하느님은 초월자인 동시에 인간의 내면에 살아있다고 가르쳤고, 이러한 인간관은 2세 교주 최시형에 이르러 여성과 아동을 '한울님'으로 존중하는 교리를 구축했다.
**동학의 교조 최제우1824~1864:邪道亂正의 죄인으로 처형됨
*2세 교주 최시형1827~1898:左道亂正의 죄로 교수형에 처해짐 (동학을 邪敎 취급함)
*3세 교주 손병희1861~1922
*방정환1899~1931 손병희의 사위/사회활동가/아동 존중 사상을 사회적으로 실현/그는 '젊은이'와 '늙은이'와 대등한 '어린이'라는 말을 지어내서 통용시켰고 어린이 운동 조직을 만들었고 어린이 잡지를 발행했고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동화와 동요를 口演했다./1923년 5월1일에 최초의 어린이날 행사를 천도교회당 앞마당에서 열었다.
(256)어린이날의 약속: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내 아들놈, 내 딸년하고 자기 물건처럼 여기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사 아쉬움 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드는 생각은, 어린이날이나 아이들 생일에 그 아이들만을 위한 잔치를 베풀 게 아니라 아이를 데리고 고아원이나 불우시설을 찾아가서 그들 형편껏 작은 선물을 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 다른 아이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면 참으로 의미있겠다 싶다.)
(280)여덟 명의 아이들을 생각함:
낳자마자 죽인 두 아이를 냉동실에 넣고 산 한국인 어머니, 그녀에겐 길러야 할 네 아이가 있다.12살짜리 큰애가 빨래라도 할 줄 알 때까지 밥을 해줘야겠어서 신고를 안 했다고 한다.
콜럼비아 밀림으로 추락한 경비행기--어른 셋은 죽고 아이들 넷이 40일만에 구출된 이야기/구조대가 한 살짜리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냈는데 그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 데 있었다. "한군데 모여 있으라"라는 외할머니의 음성을 아이들은 듣고 있었으리라.
(이 두 공간에서 일어난 아이들 이야기가 좀체로 잊혀지지 않을 듯싶다)
(288)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공자--그는 늘 지지고 볶는 인간 잡사에 대해 말했고, 생애의 대부분을 得道하지 못한 世人들과 더불어 지냈습니다. 공자는 이 발가벗은 일상성에 바탕을 두고, 언어와 삶이 서로 배반하지 않는 세계를 향한 인간의 소망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습니다. 그의 말본새는 맑고 단순했는데, 그의 메시지가 인류사에 울리는 강력하고도 생생한 호소력은 이 단순한 어조에 바탕해 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인문주의의 외양--말 앞에서의 경건함, 말을 검소히 사용하는 망설임, 혓바닥을 너무 빠르게 놀리지 않는 진중함, 사람 사는 동네를 걸어다닐 때 어깨를 거들먹거리지 않는 걸음걸이가 인문주의의 중요한 외양일 것입니다.
(297)듣기의 괴로움과 말하기의 어려움은 순환관계입니다.
이런 말들은 사회를 추동해 나가는 힘으로서의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수군거림과 와글거림을 번져가게 합니다. 근거없고 쓸데없는 헛소리를 한자로는 譁(화)라고씁니다.온세상에 말의 쓰레기들이 물끓듯 들끓는 모습이 譁沸(화비)이고, 그런 세상의 이름은 譁世입니다.
(322-324)볕의 냄새:
햇볕 속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물어서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네 머리통에서 햇볕 냄새가 난다"라고 말했다. 햇볕에 냄새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엄마의 말을 믿었다.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개천가나 무너진 옛 성터에 올라가서 놀 때 땅에서도 햇볕 냄새가 났다.
---
나는 마당에서 무말랭이와 감말랭 이를 집어 먹었는데, 거기서는 햇볕의 냄새가 났고, 햇볕의 맛이 났다.그 맛은 고소하고 감미로웠고 그 냄새는 희미하면서도 끝간 데 없이 넓었다.
---
내 소년시절에 햇볕 냄새는 똥 냄새와 맞먹을 만큼 지배적이고 보편적인 냄새였다.똥냄새는 밥과의 순환고리에 묶여서 생로병사의 무게로 장엄했고, 햇볕 냄새는 먹을 것이 모자라는 헛헛함이나 어른들의 부부싸움, 숙제조사와 시험, 매 맞기와 벌서기의 고통이 없는 자유의 냄새였다.
---
햇볕 냄새는 가벼워서 눌어붙지 않았고 천지간이 가득 차면서도 질량감이 없어서 걸리적거리지 않았다.나는 이처럼 좋은 것이 세상에 가득 차서 모두 공짜라는 현실이 놀라웠다.나는 자고 깨면 날마다 놀랐다.아이들은 늘 허기져 있었는데, 나는 햇볕이 먹는 것이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면서 해를 향해 입을 벌렸다.
(328)육조 *혜능(당나라 대표적 禪僧)의
사람의 향기:
마음 속에 그릇됨이 없고
질투와 성냄이 없고--
악을 짓지 않고---
외롭고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참성품에 변함이 없는 것--
이러한 향기는 각자의 안에서 풍기는 것이니, 결코 밖을 향해 구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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