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6일 오후 5시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선 시인 김지하에게 제 14회 <정지용 문학상>이 수여되었다.
그간 박두진, 김광균, 박정만 등 시단의 빛나는 별들이 이 상을 수상했지만 올해는 정지용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 온갖 풍상을 겪고 ‘지하(地下)’에서 ‘노겸(勞謙-김지하의 새 이름)’으로
우뚝 선 시인에게 주어지는 상이라 더욱 의미 있다.
문단의 기라성 같은 시인들이 조용한 미소 속에 자리한 가운데, SBS라디오 본부장 류자효의 사회로
식이 진행되었다.
김재홍 교수의 심사보고에 이어 김윤식 교수의 심사평이 있고 이어 고은 시인의 축사가 이어졌다.
뒤이어 축가가 울려 퍼졌는데,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시다.
***이 시는 월북작가의 시였으므로 1988년까지 세상 빛을 보지 못해서
채동선의 '그리워 그리워'라는 노래로 바뀌어 불림***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뒤 이어 구부정한 어깨에 개량 한복을 입은 시인 김지하가 다소곳한 자세로 수상 소감을 피력한다.
유신 시절 7년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돌아와요, 부산항’이라는 노래가 귀에 쟁쟁하길래 출옥 후
그 노래의 주인공 조영남을 만났더니
‘저는 대중가수입니다“하더란다.
그래 김지하도 “나도 대중시인입니다”라고 응대했단다.
그런 자신에게 淸淨하고도 빛나는 세계를 구축한, 열 번 죽었다 깨도 흉내 못 낼, ‘백록담’의시인,
우리 現代詩史 백 년에 가장 뛰어난 시인 정지용을 기리는 상을 준다 길래 매우 놀랐고, 그 상은
‘상금이 없는 상’이라고 해서 또 한번 놀랐단다.
그리고 시인의 길을 말했다.
정지용의 시 세계에서 보여준
‘카톨릭시즘, 모더니즘, 향토적 서정 즉 靈性과 理性과 感性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시’야말로
우리 시인이 이룩해야 할 시의 세계라고.
밤 깊은 우면산 봄 숲에 소리 없이 촉촉이 비는 내리고 열기로 가득한 시인들 가슴엔 파랗게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2002.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