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어느 靈前에

맑은 바람 2009. 6. 10. 01:21

“엄니, 윤*이 왔에유-”

 

검은 리본 속에서 환하게 미소짓고 있는 영전에 향을 사르고 절을 하려는데, 상주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고인에게 아뢴다.

옆에서 말없이 서 있는 며느리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닷새 전에만 해도, 치매 시어머니 간병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며느리의 푸념 아닌 푸념을 듣고 마음

절였는데, 느닷없이 육신의 옷 훌훌 벗고 떠나셨다.

개밥을 개와 함께 나누어 먹고 변기에다 그릇을 씻고 하셨다는 그 노인이--

 

육십이 내일모레인 그 아들은 남다른 효자였다.

친구들이 부부동반해서 며칠씩 여행을 떠날 때도 어머니가 맘에 걸려 서둘러 귀가를 하고

출근해서도 매일 두세 번씩 부인을 통해 안부를 확인하곤 했단다.

 

칠순 때는 또 어땠는가

외아들이라서 어머니가 외로워 하실까봐 친구부부들이 아들 메느리 노릇해야 한다고 해서 여섯 쌍이

 모두 한복을 입고 자식 행세를 했다.

그렇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그분이 계모였다는 것을 안지 얼마 안 된다.

한 핏줄을 나눈 부모에게도 데면데면하게 굴어 늘 섭섭함을 안겨 드리고 있는데--

 

오늘 그 육신마저 영 지상을 떠나는 날-모자가 쌓은 아름다운 정을 하늘도 아시어 이렇게 좋은 날을

베푸시는가 보다.

안녕히 가세요, 어머님!!

 

(200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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