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부의 이야기가 국영방송에서 방영이 되었다길래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했다.
2010년 1월 16일 48세로 생을 마감한 살레시오회 소속 이태석 신부 이야기였다.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의 딩카족들과 지낸 9년 세월-끊임없는 내전으로 질병과 가난 속에
인간의 권리가 무언지도 모르고 석기시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과대학을 나온 그는
<톤즈 공동체 돈보스코 병원>을 세워, 결핵과 한센병과 말라리아와 싸우는 현지인들에게 의술을
베풀면서 한편으로 전쟁과 가난 속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 주는 학교를 세워 1400명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기숙사까지 직접 지어 주었다.
그밖에 태양열 발전기 돌리기, 아이들에게 농구대 만들어 주기, 심지어 학생증까지도 일일이 만들어 주어, 그의 손이 안 간 데가 없었다. 그는 마치 손수건 끝에서 비둘기를 만들어 날려 보내는 마술사와 같았다.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 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그의 곁에서 한때 의료 자원봉사를 했던 분이 증언한다.
“한밤중에 환자가 찾아와 문을 두드려도 두 번 두드리게 한 적이 없다. 한 번도 짜증낸 적이 없다.
기다려라.” 한 마디하고는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신부는 그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100km를 달려온 사람들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또 그는 35인조 브라스 밴드를 결성,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
자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지켜 주었던 음악의 힘을 믿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후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
사랑이 깊으면 그리움도 아픔이 된다던가,
그가 톤즈에 영정사진에 담겨 돌아왔을 때 그들은 말했다.
“졸리 신부가 떠난 우리들의 삶은 눈물”이라고.
수단의 아이들은 울 줄 몰랐다. 이 신부의 사랑이 그들에게 기적을 일으켜 눈물을 되찾아 주었다.
그를 못 잊어 눈물짓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의 뜻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오늘도 톤즈에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40절(이태석 신부가 늘 가슴에 새겼던 말씀)
(2010.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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