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전라도

순창에 가면-<Q모텔>과 <옥천골 한정식>

맑은 바람 2010. 10. 19. 13:49

 

 <순창 고추장>을 달아놓고 먹으면서도 순창 땅을 밟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0월도 어느덧 중순이라 해가 이미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사위가 어둑어둑해서야

순창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넜다. 여기저기 애드벌룬을 띄운 걸 보니 이 가을에

무슨무슨 축제가 한창인 모양이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번화가를 빠져나가 한갓진

곳에서 숙소를 발견했다. 일단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니 숙소로 찍어 놓은

건물 바로 옆에 <옥천골 한정식>이 있었다.

차림상이 들어오자 입이 딱 벌어졌다. 육해공군이 한 자리에 좌정하고 순창 고유의

장류 음식이 그득했다.

숯불 불고기가 후각을 자극하고 된장찌개와 참외장아찌가 醬의 고장답게 특별히 감칠맛이 났다.

왕후장상 부럽지 않은 저녁을 마치고 바로 옆 <Q모텔>로 자리를 옮겼다.

가격대비 시설이 깨끗하고 조용했다. 모텔=러브호텔의 이미지만 사라진다면 여행자의 가벼운

하룻밤 숙소로 손색이 없다. 밤안개가 자욱이 내리는 가운데 순창에서의 짧은 밤을 보냈다.

      

 

     

      

 

 이튿날 공주로 가는 차 속에서 남편의 손목시계가 없음을 발견했다.

몇 년 전 만해도 여러 날 여행 후 경유지라든가 비용 등을 정리할라치면 거의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세히 기억해 내어 늘 나를 감탄하게 만들더니 근래에 와서 부쩍 정신없는

행동을하기 시작한다. 곰곰이 생각해 낸 결과 아무래도 <Q모텔>의 이부자리 속에 놓고 왔음에

틀림없다. 방을 나서기 전에 화장실과 세면대 위는 찬찬히 살폈기 때문이다.

 

순창114에 전화를 걸어 숙소 번호를 알아내고 여주인과 통화를 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있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택배로 보내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주소를 묻는다.

이틀 후 물건이 도착했다. 선물 봉투 속 빨간 보석 상자에 얌전히 담겨서 주인 곁으로

왔다.

 

값의 고하를 떠나 여러 해, 고장 한 번 안 일으키고 손때와 살 냄새가 밴

손목시계-무정한 시계일망정 먼 낯선 땅에 달랑 남겨놓고 떠났을 때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새삼 소중하고 반갑다.

바로 Q모텔로 전화를 걸어 감사의 말을 전했다.

덧붙여, 기회 있으면 꼭 다시 찾겠노라고 했다.

이번 여행에 ‘옥의 티’가 될 뻔 했던 사건-

한 사람의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씨가 이렇게 고맙고

흐뭇해서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0. 10.19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