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것은 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내가 알고 있는 최씨들은 대게 개성이 뚜렷하고
여물고 비교적 자기 관리들을 잘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유로, 노총각 아들에게 너는 이왕이면 최씨 가문의 여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싱거운 소리를 한다.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의 의무)’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경주 최씨의 고택을 찾아가는 길은
즐거웠다.
아흔 아홉 칸 저택을 상상하고 대문을 들어섰는데 상상 외로 소박한 한옥이었다. 원래 99칸이었으나
사랑채와 별당이 불타 없어져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꾸준히 보수한 흔적이 있어 옛 정취는
별로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담벼락에 걸려 있는 최씨 가문의 가훈과 좌우명들이 발을 멈추게 한다.
시대를 초월해서 ‘있는 자들이 지녀야 할 삶의 자세’가 明示된 警句들이다.
누구나 막상 그 입장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지만 권력, 금력, 명예를 거머쥔 자들이 솔선해서 국가방위의 의무를 이행하고 많이 번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아흔 아홉 가진 자가 하나 가진 자에게서 빼앗는 게 ‘부자의 생리’라든가, 일찌감치 자식들 해외 유학 보내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게 하려는 게 ‘권력층 부모들의 생리’ 라며 비아냥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칼레의 부자처럼 이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일까지는 말고라도 저녁 시장의 떨이는 가난한 이들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행랑아범에게 아침 장을 보러가게 한 지혜는 서로 배워야 할 것이다.
(2010.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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