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두리와 금강이

맑은 바람 2011. 5. 1. 22:23

 

우리집엔 두 마리 개가 살고 있다.

다섯 살짜리 마당개 <금강>이와 열 살이 넘은 집안 개 <두리>-

 

어려서 개한테 발뒷굼치를 물린 적이 있어 개라면 슬슬 피해 다녔는데 이렇게 개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 화정에 살 때다.

남편이 재택 근무를 하면서 넓은 집에 낮에 혼자 있기가 적적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우리도 강아지 한 마리 기를까?'

아파트라서 실내에서 길러야 하니까 털이 잘 빠지지 않아야 하고 또 크게 자라지 않아야 하고-

이런 저런 조건을 갖춘  말티즈가 적당하다는 결론을 얻고 충무로 애견센타를 돌아봤는데 소문에

의하면 충무로에서 사간 것들은 며칠 안 돼 장염 등으로 곧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동네 가까이에 있는 동물병원을 찾았다. 마침 가정집에서 출산한 말티즈 수컷 한 마리를 데려왔다.

종자가 아주 작고 예쁜 말티즈였다. 혼자서 외로우니 이름이라도 적적하지 말라고 '둘'의 의미를

담은 '두리'로 지었다. 지금 십 년 넘게 우리집에서 살고 있는 두리는 두 번째 '두리'이다.

첫 번째 두리는  더 활기차고 짖기도 잘해 좀 극성맞다 싶었는데 우리 가족과 인연이 없었던지

데려온 지 얼마 안 돼 교통사고로 죽었다. 저녁에 돌아온 루도비꼬가 얼마나 슬프게 우는지 나도

덩달아 흐느끼며 울었다. 흰 타올로 싼 두리를 어디 조용한 데 묻어 주려고 한밤중에 원당 인근

산 속을 루도비꼬와 울면서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녀석은 이러저러한 일로 귀여움도 많이

못 받고 일찍 갔다.

 

 첫 번째 두리를 잃고 상심하는 모자를 보고 먼저번에 두리를 보내온 집에서 이미 다른 데로 입양

시킬 예정이던 놈을 내줘서  데려온 것이 지금의 <두리>다.

가끔 귓병을 앓고 습진에 걸리기도 하고 집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식탁 밑에, 쓰레기통 옆에

실례를 하곤 하지만 와룡공원 산책 때 데리고 가면 한 시간 반 이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잘도

따라다닌다. 십 년 넘도록 총각으로 살지만 장난감 강아지를 제 여친 삼아 그럭저럭 잘 지낸다.

인간 위주의 이런 일들이 과연 잘하는 짓인가 의심이 들 때도 많다.

 그때 이를 빼주지 말 걸 -미안하다 두리야.

 

 

마당개 <금강>이-

금강이가 우리집 마당에서 살게 된 건 순전히 보안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이곳 혜화동 단독주택으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에 도둑이 들어  끔찍한  살인사건까지 난 것이다.

도무지 불안해서 살 수 없어 시위용으로라도 한 마리 마당에 풀어 놓아야겠다는 내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어떤 종류로 할 것인지 논의되었다. 이때도 나보다 더 발언권이 센 루도비꼬가 말라뮤트를

기르고 싶다며 대구 모처에까지 가서 족보있는 개를 하나 데려왔다.

한 이십 일 됐다는데 생김새도 훤하고 하는 짓이 얼마나 귀여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세상 구경한 지 한 달도 안 됐어요.

 

 아빠가 여러 날 공들여 지은 집이건만 답답한지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밥도 서로 나눠 먹고 두리형님 보디가드 노릇 확실하게 하는 금강이

 

두리의 질투가 눈에 띄게 심해졌다.

처음엔 귀가 축 늘어져 있더니 석 달이 지나니 귀가 꼿꼿이 서고 성견의 모습이 갖추어져 갔다.

어느새 우리집에 온 지 오 년이 넘었다. 50키로가 넘는 거구이지만  장난기 많고 애교도 많다.

아침마다 현관 유리문 앞에 와서 창틀을 벅벅 긁으며, 빨리 나와 자기가 눈 똥도 치우고 축구도

하잖다.  내가 화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어깨 바로 위에서 콧김을 뿜어 대며 침방울을 흘린다.

 큰 덩치 때문에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겁을 먹는다-알고 보면 순한 놈입니다.

 

 

두 놈의 공통점은, 종일 거의 짖는 법이 없어 밖에서는 개가 안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다만 두리는 가족이 돌아오면 현관까지 뛰어나가 맹렬하게(?) 짖으며 환영을 하고 물리적 접촉을

마친 후에야 쏜살같이 방으로 와 그때부터 제 밥을 먹는다.  

두리가 신통한 것은, 식구가 밤 한 시가 됐건 두 시가 됐건 다 귀가한 후에야 제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옛날 지아비가 돌아올 때까지 밥상머리를 지킨 어느 지어미같이- 

 

 금강이의 경우는 간혹 대책이 안 설 때가 있다. 한밤중에, 그것도 달밤에 하늘을 향해 느닷없이

'우 어-' 하며 동네가 다 울리도록 늑대 울음을 울 때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울음소리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섬뜩한가 말이다. 더구나 속설에 '밤에 개가 울면 어쩌구 저쩌구' 하니.  

-그때마다 쫓아 나가서 말리지만 저도 가끔은 저 시원의 알라스카가 왜 그립지 않겠는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그냥 우는 거라 생각하니 맘이 짠-하다.

 

개를 싫어하거나 개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개 주인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또한 웃을 일이겠지만 그 누가 확실히 말할 수 있나, 개의 여러가지 울음과 짓의 의미를--

(200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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