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뒤쪽 하늘공원 가까이에 번듯하게 지어진, 그러나 人跡이 드물어 적막하고 휑뎅그레한 건물-
남편 친구 내외를 기다리느라 2층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가니 카운터의 나이 지긋한 아줌마가 반색을 하며 맞는다. 손님이라고는 우리가 처음인 모양이다.
잠시 뒤에 친구 내외와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2월에 개관했다는 박대통령 기념관엔 찾는 손님이라고는 우리 이외에 두 세 명이 있을 뿐이었다.
정치판의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많아서인가?
도서관은 정비가 안됐는지 입장할 수 없었으나 전시실엔 박대통령이 이룩한 근대화의 다양한 자료들과
저서, 사진, 영상물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 나이의 사람들에겐 삶의 일부가 되었던 세월이라 새삼 회상되는 일들이 많았다.
중 2 때(1961년 5월 16일) 지금의 한국일보사 뒤쪽에 살았던 나는 신새벽 어둠 속에서 地軸을 뒤흔드는
굉음을 듣고 광화문 쪽으로 뛰쳐나갔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탱크의 대열을 보고 魂飛魄散하여 집으로
뛰어 들어와
“전쟁 났다!!”
고 외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古稀를 바라보는 두 남자는 각별히 감회가 새로운지 사진들과 遺品 앞에서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한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전시실 입구
가발공장
생사공장
라면으로 세 끼를 때워가며 이들은 고향의 부모님께 송아지를 사드리고 동생들을 공부시켰다
엄마는 머리칼을 잘라 아들에게 엿을 사줬다!
침침한 호롱불 밑에서도 아이는 숙제를 하고 엄마는 바느질을 하시고--아버지는 한 잔 술로 고단한 하루를 달래고-
좀 살기 괜찮은 이 집에는 남포등(석유 램프)을 밝히고--
농촌마을에 전기가 보급되자 이장님 댁에 흑백 티비가 놓이고 동네 사람들은 김일선수의 레슬링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박대통령이 직접 스케치한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고속도로공사로 끊긴 마을 진입로를 교량으로 연결하도록 지시한 그림
육여사 가신 후 박대통령 부녀
두 남자는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육영수 여사의 소녀 시절
붓글씨와 그림 솜씨도 뛰어나신 분
청와대 시절 사용하던 물건들
부끄럼 타는 영웅, 눈물 많은 초인--
맨발에 쓰레빠 바람으로 화폭에 빠져든 대통령
세계적 석학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도 나라 안에서 오히려 대접 받지 못하고 過小評價 받는 대통령- 우리들 속에는 功을 드러내어 稱讚하는 일보다 허물을 들춰내어 膺懲하려는 심사가 더 강한 것 아닐까?
군사 정권 시절 누구보다도 핍박받고 힘든 세월을 산 김지하씨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우리 같은 사람(정치적 반대자) 3만 명을 못살게 했지만 다른 정치인들은 국민 3000만 명을 못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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