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서울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찾아서

맑은 바람 2012. 8. 16. 23:38

그곳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뒤쪽 하늘공원 가까이에 번듯하게 지어진, 그러나 人跡이 드물어 적막하고 휑뎅그레한 건물-

 

남편 친구 내외를 기다리느라 2층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가니 카운터의 나이 지긋한 아줌마가 반색을 하며 맞는다손님이라고는 우리가 처음인 모양이다.

잠시 뒤에 친구 내외와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2월에 개관했다는 박대통령 기념관엔 찾는 손님이라고는 우리 이외에 두 세 명이 있을 뿐이었다.

정치판의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많아서인가?

도서관은 정비가 안됐는지 입장할 수 없었으나 전시실엔 박대통령이 이룩한 근대화의 다양한 자료들과

저서, 사진, 영상물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 나이의 사람들에겐 삶의 일부가 되었던 세월이라 새삼 회상되는 일들이 많았다.

 

2 (1961516) 지금의 한국일보사 뒤쪽에 살았던 나는 신새벽 어둠 속에서 地軸을 뒤흔드는

굉음을 듣고 광화문 쪽으로 뛰쳐나갔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탱크의 대열을 보고 魂飛魄散하여 집으로

뛰어 들어와

전쟁 났다!!”

고 외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古稀를 바라보는 두 남자는 각별히 감회가 새로운지 사진들과 遺品 앞에서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한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전시실 입구

 

 

 

 

 

 

 

        가발공장

 

          생사공장

 

      라면으로 세 끼를 때워가며 이들은 고향의 부모님께 송아지를 사드리고 동생들을 공부시켰다

 

          엄마는 머리칼을 잘라 아들에게 엿을 사줬다!

 

 침침한 호롱불 밑에서도 아이는 숙제를 하고 엄마는 바느질을 하시고--아버지는 한 잔 술로 고단한 하루를 달래고-

 

  좀 살기 괜찮은 이 집에는 남포등(석유 램프)을 밝히고--

 

 농촌마을에 전기가 보급되자 이장님 댁에 흑백 티비가 놓이고 동네 사람들은 김일선수의 레슬링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박대통령이 직접 스케치한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고속도로공사로 끊긴 마을 진입로를 교량으로 연결하도록 지시한 그림

 

                  육여사 가신 후 박대통령 부녀

 

 

                두 남자는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육영수 여사의 소녀 시절

 

                 붓글씨와 그림 솜씨도 뛰어나신 분

 

 

                              청와대 시절 사용하던 물건들

 

               부끄럼 타는 영웅, 눈물 많은 초인--

 

                                       

             맨발에 쓰레빠 바람으로 화폭에 빠져든 대통령 

 

세계적 석학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도 나라 안에서 오히려 대접 받지 못하고 過小評價 받는 대통령- 우리들 속에는 을 드러내어 稱讚하는 일보다 허물을 들춰내어 膺懲하려는 심사가 더 강한 것 아닐까?

 

군사 정권 시절 누구보다도 핍박받고 힘든 세월을 산 김지하씨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우리 같은 사람(정치적 반대자) 3만 명을 못살게 했지만 다른 정치인들은 국민 3000만 명을 못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