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창세기>를 쓰는 일은 의미가 크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내게 주어진 ‘오늘’은 내가 ‘처음으로 만드는 세상’이다.
어렴풋이나마 다 아는 얘기 같은 창세기 내용-
한 자 한 자 줄치고 메모하며 체계적으로 써 나가니 재미도 있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좋다.
<순종을 시험하는 하느님?>
하느님은 善惡果를 심으셨다.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와 아담(히브리어로 ‘사람’)을 가차없이 벌하시는 하느님-
또 카인과 아벨의 제물 중 드러내놓고 아벨의 제물만 좋아하셨다.
카인은 질투로 아우를 죽이고 인류 최초의 살인자라는 기록을 남긴다.
하느님은 왜?
굳이 선악과를 심으시고, 표 나게 한쪽만을 사랑하시어 질투를 유발하셨을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순종하는 종’만을 하느님은 원하시는 걸까?
<하느님은 全知全能하시다?>
노아시대에 하느님은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하셨다.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홍수로 그들을 휩쓸어 버리셨다.
하느님도 태생적으로 사악한 인간의 마음 속까지는 꿰뚫어 보실 수 없었나?
<아담의 족보>
아담은 ‘보시기에 좋은’ 세상의 첫 사람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이라 첫아들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대를 이은 셋을 낳아 9대를 이어갔으나
인류의 타락은 걷잡을 수 없어 마침내 하느님은 10대째인 노아 때 대홍수로
창조시대 1막을내린다.
노아는 제2 창조시대의 시작이다.
<노아의 저주>
술 취해서 알몸으로 잠든 자신의 허물은 탓하지 않고 그것을 보고 소문을 낸 작은아들에게는
저주를 퍼붓는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다만 남의 ‘허물을 들추는 죄’가 크다는 것만은 예나 이제나 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세상의 중심은 이스라엘 민족?>
“홍수가 있은 뒤에 이들에게서 민족들이 세상으로 갈라져 나갔다.”-10:32
우리 귀에 익숙한 나라들-에티오피아, 이집트, 필리스티아, 히타이트, 가나안, 아시리아--
등이 모두 노아의 자손들 이름이다.
그렇다면 중동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조상은 아담이다?
<바벨탑, 주님의 개입>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11:6-7
인간은 뭉치면 죽는다!!
뭉치면 못할 짓이 없기 때문에 흩어놓아야 한다.
하느님의 뜻은 이러하다.
<땅! 땅! 땅!>
구약의 하느님은 ‘당신 마음에 드는 이’에게 '땅'을 약속하신다.
그것도 하늘의 별만큼, 땅의 먼지만큼 많은 자손들이 살 수 있는~
그래서 기독교도들은 세계의 곳곳을 누비며 원주민의 ‘땅을 차지했다.’
전염병을 퍼뜨리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고, 무력으로 그들을 몰아낸 후에--
그러면서 그들은 ‘하느님이 주신 땅’이라 확신한다.
<비겁한(?)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두 차례나 자기 목숨 보존을 위해 아내를 누이라 했다.
그리고 임금 손에 넘어가게 하고 임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하느님으로부터 위협을 당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변치 않았다.
사실, 사라는 어머니가 다른 그의 여동생이기도 했으므로--
어쨌거나 사라는 절세의 미녀가 틀림없나 보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아내 때문에 죽을까 두려워했고 힘 있는 자들은 사라의 나이 80이 넘었을때도
그녀를 탐냈으니 말이다.
<아브라함이 하가르에게 한 일>
흠 없는(?) 아브라함은 하가르와 이스마일에게 ‘빵과 물 한 가죽부대’를 주고 광야로 내쫓았다.
한때 자신들의 뜻에 의해 하가르에게 임신을 시켜 아들을 얻고는 이제 와서 ‘나가죽게’ 만든 것이다.
보통사람도 하지 않는 짓을 사라와 ‘민족들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저질렀다.
<아브라함의 지혜>
막펠라의 무덤 사들이기-23:3-16
사라의 무덤 자리를 놓고 아브라함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두 사람 모두 정중하게 예의를 다하면서도 자연스런 거래가 이루어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브라함의 지혜로운 모습이 돋보인다.
<야곱의 해괴한 이야기>
“이제 내가 이집트로 너에게 오기 전에, 이집트 땅에서 태어난 너의 두 아들을 내 아들로 삼아야겠다.”-48:5
이 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 걸까??
<성서의 맏아들>
왜 성서 속의 맏아들들은 하나같이 아우들에게 밀린 걸까?
특별히 지은 죄도 없고 모자람도 없는데 말이다.
*카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사악
*에사우와 야곱
*르우벤과 요셉
-“르우벤아, 너는 나의 맏아들 나의 힘, 내 정력의 첫 열매. 너는 영광이 넘치고 힘이 넘친다.
그러나 물처럼 끓어오르니 너는 남보다 뛰어나지 못하리라.”-49:3
*므나쎄와 에프라임
<해몽가 요셉>
요셉은 그 조상 누구보다 영이 맑고 흠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해몽하는 재주가 뛰어나 이집트의 재상에 까지 오른다.
그 형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도, 형들이 저지른 惡을 하느님이 善으로 바꾸어주셨다며
형들을 용서한다.
그는 長子를 아껴 므나쎄에게 축복을 받게 하고 싶었으나 아버지 야곱이 받아주지 않았다.
요셉, 그는 가장 인간적이고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다.
그 형들을 시험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내용은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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