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2017노벨문학상 수상작

맑은 바람 2018. 1. 7. 15:08


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작/송은경 번역

 

***가즈오 이시구로(1954~ )일본계 영국작가.

일본 나가사키 출생으로 영국에 이주해서 철학과 문예창작을 공부함.

<창백한 언덕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나를 보내지 마>

<남아 있는 나날>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상을 받고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The Remains of the Day-

제목 자체가 노년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적합한 책인가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거라는 말을 떠올릴 때, 모든 이들에겐 남아 있는 나날이 있을 뿐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영국의 귀족 집안의 집사라는 것도 호기심을 끌지만, 작가는 감칠맛 나는 문장 전개로 독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잘 끌고 간다. 읽어나가면서 참 재밌다는 말이 입에서 자꾸 맴돈다.

 

주인공은 영국의 전통 있는 <달링턴 홀>의 집사인 스티븐스다.

그는 평생(35)을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오로지 명문 집안의 가풍에 어울리는 집사일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자존감과 직업인으로서의 권위를 지킨다.

더 나아가서 위대한 신사(달링턴 경)를 섬기는 일이야말로 집사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전 주인이 집을 팔고 새 주인이 들어오면서 새 주인 덕분에 평생 처음으로 6일간의 시간을 허락받고 여행을 떠난다. 집주인의 차를 타고~

 

그러나 스티븐스는 단순히 여행을 떠난 게 아니다.

자유를 허락받고도 그의 머릿속엔 같이 일할 직원을 물색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자신이 임무에 충실하느라 그만 놓쳐버린 파랑새(?) 켄턴 양을 만나 다시 달링턴 홀로 돌아올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이 이번 여행의 목표가 되었다.

왜냐하면 켄턴양은 그녀의 편지에서

 

-내 인생의 남은 부분을 어떻게 유용하게 채울 것인지~~

라고 여운을 남겼으므로.

그래서 켄턴양은, 스티븐스가 원하는 대로(?) 결혼생활에 실패해서 그와 함께 달링턴 홀로 돌아가야만 한다.

 

-내 앞에 앉아있는 캔턴양의 모습은 대체로 지난 세월 내 기억 속에 살아온 그 모습과 놀라울 만큼 비슷해 보였다.---얼굴에 움직임이 없을 때면 표정에서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내가 잘못 본 건지도 모른다.

-제 인생은 결코 공허하게 펼쳐지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이제 곧 손자가 생긴답니다.

-스티븐스씨, 달링턴 홀로 돌아가면 당신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일 다음에 일, 그리고 또 일이 기다리고 있을뿐이죠.

 

(캔턴양의 고백)

-달링턴 홀을 떠나온 건 당신을 약 올리기 위한 또 하나의 책략쯤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후 오랫동안 저는 무척이나 불행했어요.

--그러나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고 어느 날 문득 남편을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요, 스티븐스씨, 이제 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씨, 당신과 함께 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그럴 때마다 곧 깨닫게 되지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는 사실을.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이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그녀의 말에는 여러분도 짐작하겠지만 내 마음에 적지 않은 슬픔을 불러일으킬 만한 의미

함축되어 있었다.

이제 와서 뭘 숨기겠는가?

실제로 그 순간, 내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벤부인, 말씀하신대로 시간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당신도 지적했듯이 우리는 지금 현재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옛말에 있듯이, ‘계획은 세우되 일은 하느님이 하신다는 말대로 스티븐스의 기대는 여지없이 어긋나고 혼자 달링턴 홀로 돌아오게 된다. 파랑새는 영원히 날아가고~~

 

(석양 무렵 바닷가에서 만난 어느 노인)

-사람은 때가 되면 쉬어야 하는 법이오. 나를 봐요, 퇴직한 그날부터 종달새처럼 즐겁게 지낸답니다.

--즐기며 살아야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농담에 대하여)

나는 지금 한데 어우러져 즐겁게 웃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금방 이토록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은 그저 다가올 저녁에 대한 기대로 엮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저렇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농담의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이미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지만, 내 모든 역량을 바쳐 농담이라는 이 직무에 접근한 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내일 달링턴 홀로 돌아가면 새로운 각오로 연습에 임해야 할 것이다.

--내 주인께서 돌아오실 즈음에는 그분이 흐뭇하게 감탄하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그 누가 뭐래도 스티븐스씨는 집사라는 입던 옷을 다시 입어야 편안하고 행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