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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허혁 지음

맑은 바람 2018. 7. 22. 16:14
  

저자는 재치와 유머와 글 솜씨도 훌륭한 재주꾼이다.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다.

나의 버스사랑을 떠올리며~~

몰타와 뉴질랜드와 캐나다까지 그 좁고 넓은 땅덩어리를 종횡무진 구석구석 살피게 해준 것은 그 나라의 버스들이었다.

6개월 가까이 그들 나라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그 기사들의 등이 얼마나 든든했던지~

 

-아저씨 딱 한 분을 모시고 밤안개 자욱한 고갯길을 넘어가야 했다.

술 먹다 늦은 것 같지도 않고 남루한 옷차림에 삶의 무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비 온다고 바지 끝을 꼭 양말 속에 몰아넣고 다녀야만 했는지 물어보고도 싶었다.

 

-내 몸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정적이고 편하던 가구점을 그만두고 버스기사가 된 것도 그런 기질 때문일 수 있다.

고여 있으면 아프고 흐르면 원만하다.

 

-없는 듯 살아야 하는 위치에서 보면 사람 됨됨이가 잘 보인다.

상대방이 돈도 없고 완력도 없어 보이면 굳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번 얕보이면 한도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온다.

 

-자울자울; 잠이 들 듯 말 듯 하여 몸을 앞으로 숙였다 들었다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씨방새: 씨름에서도 날고 방송에서도 나니 강호동은 씨방새~?

(욕처럼 들리는데~~)

 

-도공이 맘에 들지 않는 도자기를 깨는 심정을 이제는 안다.

별 뜻 없이 시작한 동료들 사진 찍기가 소득이 컸다.

동료의 사진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맑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전주 시내버스에는 적페속도와 공정속도가 있다.

적페속도는 효율이 우선인 속도이고 공정속도는 사람이 우선인 속도이다.

요약하면 적폐는 이고 공정은 이다.

언제나, 어느 곳에든 은 빠르고 은 더디다.

막살기는 쉽고 착하게 살기는 어렵다.

우회전은 어느 때고 할 수 있지만 좌회전은 신호 떨어져야 갈 수 있다.

 

-어릴 때 터미널에서 보았던 기사아저씨들이 멋있었다.

어디선가 시간 맞춰 나타나 행선지가 적힌 커다란 버스를 승차대에 절묘하게 대놓고는 영화대부의 말론 브란도처럼

비스듬히 앉아 있던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시내버스가 나의 운명인 이유는 나이 오십에 드디어 관촌 터미널에서 어릴 적 꿈을 이뤘다는 것이다.

 

-시내버스의 세 가지 덕목

1. 승객이 있건 없건 시간 맞춰 제 궤도를 돈다.

2. 빠르고 넓은 길을 놔두고 굽이굽이 돌아 나온다.

3.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중년의 봄은 애도의 봄인 듯하다.

생의 중심에서 아직 어린 마음이 어른노릇하기가 쉽지 않다.

몇 번 보지도 못했는데 마당의 매화나무에 꽃이 다 져 있다.

눈물을 콕콕 찍으며 집을 떠나는 어머니 뒤로 어머니의 다섯 평 텃밭이 더욱 작아 보였다.

 

-돈 걱정 않고 삼겹살 외식이라도 즐겨 할 수 있었던 장사를 접었던 진짜이유는 잔머리 그만 쓰고 예술

하고 싶어서였다.

거창한 예술 말고 우리가 흔히 와우, 예술인데~’, ‘! 예술이다할 때 그 예술이다.

막연하게 시를 써보고자 했으나 내 영혼이 시에 닿질 못했다.

이미지를 빌려 사는 얘기나 좀 해보려고 시작한 사진이었다. 조금 배우다가 지금은 그냥 오토로 막 찍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기를 들고 있는 것과 내려놓은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삶이 예술이 된 뒤로 그토록 밝히던 돈 생각이 잘 안 나는 것도 신기하다.

예술은 너무 쉽다. 그냥하면 된다.   (2018.7.22.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