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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맑은 바람 2018. 11. 12. 00:47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역

 

J.D 샐린저: (1919.1.1.~2010.1.27.) 92세 유대교도. 뉴욕대, 컬럼비아대 중퇴,

2차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

1951<호밀밭의 파수꾼> 발표, 명성을 얻음

1965년 이후 작품활동 중단, 스스로 사회적으로 격리된 삶을 살아감

 

**현대문학의 최고봉-윌리엄 포크너

**20세기 최고의 소설-랜덤하우스

**금세기 100대 소설-미국 여대생들이 뽑은 소설 중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고 알라딘 중고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전에 읽은 기억이 있지만 기억일뿐, 줄거리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데 갑자기 그 내용이 궁금해진 것이다.

지금도 이 기록을 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줄거리가 잊혀지고 말 게 뻔하지만 말이다.

이제는 무엇을 한동안 기억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용량이 초과되서인가, 나이 탓인가?

하기사 옛날부터 무언가를 한두 번 보고 정확히 기억해내는 비상함이 내겐 부족했으니까--

 

미국인들에게 이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난 것이었다 해도 난 이 책의 어디가 좋아서 그 야단들인지

책장을 덮고 나서도 잘 알지 못하겠다.

누군가가 말했지~

예술은 그 예술가를 빛내주는 평론가 덕을 크게 입는다고~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많지만~

안목이 좁은 자의 변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덕형선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톡톡 튀는 재치와 유머를~~

이 번역에 쓰인 말투는 이덕형선생만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강해서(뛰어난 묘사력?) 책을 손에서 떼기 어려웠다. 잡다한 일이 많아 계속

붙들고 있기 어렵긴 했지만~

그러나 세계 여론을 들끓게 한, 原文이 지니는 어떤 장점이, 뛰어넘을 수 없는 번역의 한계 때문에 내게는

대단한 작품으로 다가오지 않는 게 아닐까?

 

고등학교 재학 중인 주인공 콜 필드는 16세 소년으로, 성적 불량으로 퇴학 통고를 받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삼일 밤낮을 집밖에서 헤매는데 그날들의 이야기다.

친구와 선생님과 그리고 거리에서 만나는 群像들을 10대 특유의 상스런(?) 욕지거리를 해가며 독백조로 읊는다.

어떤 때는 통쾌하기도 하지만 이 녀석 삐딱선을 많이 탔군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콜 필드의 인간성이 읽힌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아서, 더럽고 거짓된 인간들의 모습을 보기 역겨워하며 그 때문에 자주 우울해진다는 것을~

특히 제일 사랑하는 여동생이 오빠를 따라 가출하겠다고 했을 때 그간 계획했던 일들을 단박에 접고 함께 집으로

가게 되는 대목에서는 더없이 순수한 콜 필드를 본다.

 

제목과 관련해서--

여동생 피비가 물었다.

오빠가 장차 되고 싶은 것이 뭐냐고~

콜 필드는 말했다.

--넓은 호밀밭의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다가 아이들이 뛰고 놀다가 그리 떨어지지 않게 붙들어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바보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그 일만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고~

그런데 철부지 콜 필드(?)의 파수꾼은 앤톨리니 선생이 아닐까? 

--학교교육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깨우쳐 주기 때문에 훗날 자신의 숨은 재능과 창조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니 지체하는 일 없이 학교교육은 꼭 받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