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1887.7.2.~1962.8.9.)
독일 슈바벤 칼브 마을 출생
난폭하고 다루기 어려운 아이였다.
라틴어학교에 순응,
14세에 신학교에 합격, 입학- 6개월 후 낙오자가 되어 학교 퇴학, 자살기도, 서점 견습점원-칼브 마을 공장 견습공-
문학수업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상 수상
**히틀러(1889~1945), 까뮈(1913~1960)와 동시대인
<중심 배경>: 마리아브론 수도원
<인물>:
*원장: 다니엘
*제자: 나르시스
수습수사, 후에 수도원 원장의 자리에 오름
냉정하고 학자풍, 자제력이 뛰어남. 사색가/분석가, 영리하고 슬기로움
목소리가 아름답고 야무진 인상에 날씬함
때론 약간 어두운 인상
*신입생: 골드문트(황금의 입),
나르시스보다 서너 살 아래
처음엔 수사가 되고 싶었으나 나르시스의 깨우침에 의해 수도원을 떠나 방랑의 세월을 보냄.
사랑스런 황금새의 이미지, 꽃처럼 눈부심, 몽상가, 동심의 소유자, 예술가적 특징이 보임,
**둘의 공통점: 고귀한 성품, 두드러진 재능, 운명적 사명
-학문에 대한 나르시스의 견해:
나는 천성이 학자이고 천직은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라네. 학문이란 차이점을 발견하려고 열중하는 것 말고 다른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학문이란 차이점을 찾아내는 기술이야.
이를테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발견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을 인식하는 것이지.
-나르시스가 규정한 두 사람의 차이:
너와 같은 성질의 사람, 강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 영감을 받은 사람, 몽상가, 시인, 연애하는 사람, 그와 같은 사람은 우리들 정신적 인간보다는 우월하게 마련이야.
너희들의 본성은 모성적이다. 너희들은 충일 속에 살고 있어서 사랑의 힘과 체험할 수 있는 힘이 제공되어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들 정신적인 인간은 가끔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지배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일지는 모르지만 충일 속에 살기는커녕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지.
넘쳐흐르는 삶, 충실한 생활, 과실의 즙, 사랑의 뜰, 예술의 아름다운 나라가 너희들의 것이다. 너희들의 고향은 대지이지만 우리들의 고향은 관념이야.
너는 예술가이고 나는 사색가이고 너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잠을 자지만 나는 황야에서 깨어있어. 내게는 해가 비치고 있으나 네게는 달과 별이 비치고 있지.
-골드문트의 가치관:
사랑과 성의 쾌락은 그를 참으로 따뜻하게 해 주었으며 가치를 가지고 마음속을 채워줄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것이었다. 그는 명예욕도 소용이 없었으며 소득도 재산도 그를 붙들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런 것들을 깔보았다. 그런 것을 위해서라면 눈곱만큼의 희생도 하지 않았으리라.
그는 사랑을 대하듯 그 비애와 무상의 전율에 대해서도 몸과 마음을 바쳤다.
그에게는 우수도 또한 사랑이고 둘도 없는 쾌락이었다. 죽음과 쾌락은 하나였다. 생명의 어머니를 사랑 혹은 환희라고 부를 수도 있듯이 그것을 무덤과 부패라고 부를 수도 있다.
어머니는 이브이며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죽음의 원천이었다.
***궁금한 거
카뮈(1913~1960)나 헤세(1877~1962)나 20세기 중반 사람이고 페스트가 유행한 시기는 1337~1352년과 1721~1722년 사이라는데 둘 다 소설 속에서 ‘페스트’를 소재로 다루었다.
워낙 공포스런 소재라 끌어온 것일까?
-골드문트의 예술관:
예술은 아버지의 세계와 어머니의 세계의 결합이고 정신과 피의 결합이었다.
예술은 가장 감각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가장 추상적인 것으로 흘러갈 수가 있었다.
혹은 순수한 관념의 세계에서 시작하여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덩어리로 끝날 수도 있었다.
예술은 결코 순수한 선사품은 아니었다.
-유랑자:
유랑자들은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날씨와 계절에만 예속되며 아무런 목표도 없이 하늘을 지붕 삼고 아무것도 갖지 않은 채 우연에 대해서는 자신을 몽땅 드러내놓으며 어린애 같고 용감한 생활, 초라하지만 굳센 생활을 보낸다.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의 아들들이다.
아무 죄 없는 동물의 황제이다.
그들은 시시각각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받는다. 해와 비, 안개와 눈, 더위와 추위, 편안함과 괴로움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시간도 역사도 노력도, 집을 가진 자들이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발전이나 진보라는 묘한 우상도 없었다.
유랑자는 그가 상처받기 쉬운 감정을 가졌든, 안정되지 않은 마음을 가졌든, 능숙하든, 우둔하든, 용감하든 겁쟁이든 간에 마음은 항상 어린아이다.
-나르시스의 고백
수도원은 천당이 아니야. 불완전으로 가득 차 있지. 그러나 성실하게 수도원 생활을 보낸다는 것은 나같은 종류의 인간에게는 세속적인 생활보다 얼마나 유익한지 모르네.
-기도의 자세
자네가 노래를 부르거나 기타를 연주할 때 무슨 현명한 생각이라든가 사색을 좇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순수하고 완전하게 차례차례로 소리를 내고 손가락을 놀리듯이 말일세.
사람이란 노래를 부를 동안에는 그것을 부르는 것이 유익한가 아닌가를 생각지도 않고 부르지. 자네는 그와 마찬가지로 기도를 드려야 하네.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조건:
방황하지 않는 자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골드문트의 생각
관능적인 것을 정신화 시킬 수 있는 일을 체험하는 행복을 맛보았네.
거기에서 예술이 생기는 거야. 하지만 이제는 두 개의 불꽃도 꺼져버리고 말았어.
육체적인 향락의 동물적인 행복도 없어졌지. 지금 다시 여자들이 나를 따른다고 해도 나는 그 행복을 갖지 않을 거야. 이제는 예술품을 만드는 것도 나의 소망이 아니야. 형상은 싫증나도록 만들었어.
그러니 이제야말로 죽어야할 시기야.
고백해도 좋다면 나는 彼岸 같은 것을 믿고 있지도 않아. 말라버린 나무는 영원히 죽고 얼어죽은 새는 두 번 다시 깨어나지 않아. 사람도 죽으면 마찬가지야.
나르시스의 손에 이끌리고 매듭지어지는 골드문트,
그러나 주인공은 골드문트.
세속의 사랑이 끝나고 스스로가 너무 나이 들고 아름다움도 즐거움도 갖추지 못했음을 깨달았을 때 모든 미련을 내려놓고 죽음을 맞이하는 골드문트에게서 헤밍웨이를 본다.
더 이상 작품이 씌어지지 않고 더 이상 부부의 생활을 할 수 없다면 그때가 죽을 때라며 자살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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