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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 사진- 글 김영갑

맑은 바람 2019. 7. 9. 00:13


--Misty Ecstasy to Open the Eyes of Our Spirit

(우리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신비의 황홀경)

 

김영갑(1957~2005.5.29) 향년 49

충남 부여 출생.  2002<김영갑 두모악 갤러리> 오픈

**두모악: 한라산의 옛이름

 

-음미하고 싶은 문장들(저자의 서문 중에서)-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나는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간다.

거기서 며칠이고 수평선을 바라본다. 마라도에선 수평선이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이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어 홀로 걸었다. 자유로운 만큼 고통도 따랐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의 어두운 부분도 내 몫이기에 기꺼이 감수했다.

 

*혼자선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혼자이길 원했다. 혼자일 땐 온전히 사진에만 몰입할 수 있다.

*이십여 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며 내가 발견한 것은 이어도.

제주사람들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이어도를 나는 보았다.

제주사람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호흡곤란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을 때 나는 이어도를 만나곤 한다.

 

*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 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그때는 몰랐었다. 파랑새를 품안에 끌어안고도 나는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이 낙원이요, 내가 숨 쉬고 있는 현재가 이어도이다.

아직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날숨과 들숨이 자유로운 지금이 행복이다.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궁금해 사진가가 되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 대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하늘과 땅의 오묘한 조화를 깨달았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내 사진 안에 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나는 그 사진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삶을 여한 없이 보고 느꼈다. 이제 그 아름다움이 내 영혼을 평화롭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지금 나의 하루는 평화롭다.

 

*내 사진은 외로움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크기의 필름으로 작업을 했었다.

그중에서 파노라마 사진이 내사진의 주제를 표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병이 깊어가면서 그는 젓가락을 들 힘도 없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이 글의 상당부분도 이 책을 펴낸 출판사의 편집장이, 작가가 구술한 것을 받아 적어 정리한 것이라 한다.

사진은 온전히 김영갑의 작품이지만 글에는 옷을 입힌 것 같아 그의 체취가 덜하다.

찬찬히 그의 사진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할 뿐이다.

(2019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