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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가는 길

맑은 바람 2020. 9. 5. 16:56
아침에 여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자기  카일라스가는 길 보러간다고.
언니가 정신줄 놓고 살까봐 좋은 책이나 좋은 영화 있으면 그때그때 알려준다.

요샌 누구더러 뭐 같이 하자고 말 내놓기가 어려운 때라 각자도생이다. 나도 바로 대한극장을 검색한다. 2시 35분에 한 번 상영한다.

요새 극장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관공서 출입할 때처럼 통제를 한다. 입구에서 일단 손세척을 하고 얼굴을 찍으며 열 체크를 한다.
문이 한칸 열리면 소독약 샤워를 하고 그 다음에 안으로 들어간다.
매표 후엔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긴다.
표를 손에 넣기까지 절차가 좀 번거로운들 어떠랴!
대한극장이 문닫지 않고 기사회생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뿐이다.

티벳의 성산 카일라스를 사십대 아들이 84세 노모를 모시고 떠난다. 아들은 영화감독이다.
노모는 나이보다 훨씬 건강하다. 5000m가 넘는 카일라스산에 무사히 도착했으니까.

노모는 경력이 화려한 어떤 배우들보다 멋있다.  진솔함이 몸 전체에 묻어나니 그보다 더 보기좋은 게 어디 있나?
그녀에겐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유정하고 고맙고 기쁨을 준다.
아이들을 만나면 사탕을 주고 젊은 솔로여행객을 만나면 길에서 혼자 텐트치고 자지 말라고 통하지도 않는 말로 신신당부하고, 노인을 만나면 우리 한국 노인들은 저하고 싶은대로만 하는 고집불통들인데 너흰 어떠냐고.
그럼 한국이나 몽고나 세계 어떤 나라도 노인은 다 그렇다는 대답에 깔깔거리고 웃는다.
도처에서 만나는 산과 물과, 황야에 홀로선 돌부처에게도 말을 걸며 부처님에 대한 끝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모자는 2만키로 가까운 여정을 기차와 벤과  낙타와 노새까지 타고 끝없이 끝없이 간다. 노모는 이 끝이 어디냐고 자꾸 묻는다.
노모는 이 길을 떠나기 전에 아마 각오했을 것이다.
살만큼 살았는데 가는 길 어디메쯤에서 생을 내려놓은들 무슨 한이 있을까?

영화보는 중간중간에 옆자리 여성은 자꾸 눈가를 훔친다.
난 담담한 맘으로 보며 팔십다섯 나이에도 카일라스 산을 오를 수 있겠구나 하며 희망을 품는데~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의  카일라스 산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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