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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된 광부

맑은 바람 2021. 1. 24. 13:56

글 권이종/이채/260쪽/초판2004.1/읽은때 2021.1.22~1.24

권이종:(1940~ )전북 장수 출생, 전주 신흥고 졸업, 1964년 파독 광부, 3년간 광부로 일함, 독일 아헨교원대학 학사 석사 박사. 아헨 한글학교 설립, 1979전북대 조교수,  한국교원대학교수,생활관장,학생생활연구소장, 도서관장, 한국청소년개발원 원장 역임, 1991년 한국청소년학회 출범

(14쪽)정부의 약속:4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약속한 것(1964년 박대통령이 독일 광산촌 방문 때, 귀국하면 국가가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함)을 떠올려보니 우리 광부들에게 해 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1960년대 초 국민소득이 90달러가 안 되었을 때와  2004년 국민소득  11,000달러가 넘는 현재의 광산촌의 생활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6쪽)(석탄연료의 수요가  줄어들 것을 내다보고 독일이 광부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편 내용을 보면 입이 딱  벌어져 말문이 막힐뿐이다.
선진국의 참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굉산촌에 실내스키장, 박물관, 현대식 음식점, 어린이들의 놀이시설, 디스코테크--등을 설치하여 연간 30만의 손님을 끌어들인다니, 이런 발상이 '아마추어 정치인들'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겠는가?)

(90쪽)(글뤽  아우프:'무사히 올라오라.' 광부들이 막장으로 들어갈 때 주고받는 인사다)
(광부의 지하세계에서의 노동하는 모습이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졌는지, 내가 그 속에서 같이 일하는 듯, 갑갑하고 숨이 막힌다. 때론 울컥하고 눈물이 치솟는다.)
(92쪽)슈템펠(쇠기둥, 목숨기둥이라고도 한다)을 세우며 전진하는 광부:갱 안에 있는 동안에는 광부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광부는 지하에 있는 동안 덤으로 얻은 목숨인 양 감사하며 일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힘든 노고를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탄광에서의 원칙이란 어길 수 없다.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광부의 하루하루는 목숨을 담보로 연명되는 것이다.
(99쪽)석탄 문신:온몸과 얼굴에 박힌 탄 조각이 그대로 살갗이 된다.
지하에선 석탄을 덩어리째 파내고 지상에선 살갗을 들춰내며 석탄가루를  끄집어낸다.
(111쪽)근면ㆍ성실ㆍ절약이 나의 현재 좌우명이다: 광부 3년차 끝날 때까지 밀린 빚은 없었으니 독일 생활하는 동안 내가 받은 교훈 중의 하나는 돈과 물건과 시간을 아껴쓰며 성실하게 사는 것이다. .
(125쪽)공부한다는 것은 나의 본능적인 선택: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짬이 날 때마다 항상 책을 손에 들고 다녔다. 스스로를 책에 미친 '看書痴'라 불렀던 선인들의 지혜를 얻고싶었던 욕구가 평생 동안 나를 뒤따라다녔다. 독일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쓴 안전모에서  비쳐나오는 전등불 외에 불빛이라곤 찾을 수 없는 지하 수천 미터의 갱내에서도 독일어 공부를 쉬지 않았다. 독학을 하면서도 그것도 모자라 광부 1년차부터 독일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매월 40마르크를 주면서  매주1회씩 개인교습을 받아왔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뭔가 공부한다는 것은 나의 본능적인 선택이었다. 그것 이외에 육체적 노동의 고통과 향수로부터 달아날 길은 없었다.

(글쓴이의 성공비결이 아니었을까?)
(146쪽)로즈마리 부인:광부시절, 겨우 안 지 몇 달 안 되는 60대 노부인이 공항까지 따라나와 한사코 귀국을 말리며  글쓴이를 양아들로 받아들여 아헨교원대학 입학을 돕고, 등록금을 대주겠다고 약속하고, 취직자리까지 마련해서 독일 체류를 도와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던가?
(152쪽)외국인 학생이 한 명도 없었던 교원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건 푀겔러 학장의 결단이었고 글쓴이의 간절함이었다.
(156쪽)한국의 은인이며 후원자:초등학교 교장이신 김상균 선생님은 음으로 양으로 광부생활 3년을 포함해 총 16년간 그를 보살펴 주었다

(인복이 많은 건가, 하늘의 보살핌이 남달랐던 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알면 사랑하지 않고 못 배기게 하는 마력을 지닌 인물인가?)
(173쪽)독일인의 절약 정신:화장실이나 부엌에서 흐르는 수돗물에 양치질을 하거나 그릇 씻는 일은 찾아볼 수 없다.  물을 받아놓고 사용하는 절약정신도 가정교육을 통해 배우게 된다. 청바지 하나로 사계절을 보내는 어린이와 청소년,그리고 대학생, 가정주부가 수두룩하다.
결혼 축하금이라는 것은 절대 없다. 현금은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
경제적 여유가 생겨도 자동차는 굴러다니지 못할 때까지 탄다. 냉장고 세탁기는 족히 20~30년을 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사회봉사활동의 참여를 적극 권장한다.
(176쪽)독일어로 진행되는 강의는 아무리 독일책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 나의 경험상 외국 유학은 박사과정만으로도 최저 5년에서 1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몇몇 힉자들 중 외국 체류 2년이나 3년도 채 되지 않아서 다른 나라의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경우가 있다. 독일에서 16년간 체류하면서 공부했던 내게는 좀처럼 이해 안 가는 부분이다.
(178쪽)내게는 독일친구들과의 친교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일주일 중 4일은 아르바이트에 쫓기고 3일만 학교에 나오니 사귈 시간이 없다. 더구나 아헨교원대학 수천 명의 학생 중 유일한 외국인이라는 자격지심이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독일어에 대한 강박과 고향에 가고싶은 집착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여, 횡단보도와 도로, 인도를 분별하지 못하고 위험하게 헤매고 다닌 일도 있었는데, 이 시절의 미친 듯 방황하는 모습이 내 자화상이었다.
(179쪽)푀겔러 교수님은 1979년 내가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13년간 지도해주신 학문의 아버지이다. 푀겔러 교수님은 22세 때 독일 역사상 최연소 평생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으셨고, 27세 때 철학박사 학위 취득과 함께 정교수가 되셨다.
(202쪽)독일의 많은 교수와 대부분의 직업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자기직업과는 전혀 관계없이 가정마다 작업실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크박사(처형)도 병원에서 진료가 끝나면 집에 와서 목공일을 한다. 많은 가구와 가재 도구를 직접 만든다. 삶 자체가 이론과 실제의 병행인 셈이다. 독일에서는 모든 교육과정이 실천을 전제로 프로그램화된다. 듀얼시스템의 삶이다.
(211쪽)귀국 후의 은인:고 이규호장관
이장관님 역시 내게 도약의 발판이 될 만한 계기를 마련해 주신 평생 잊지 못할 존경하는 인물이다.
교육부에서 일하는 동안 이규호 장관님께서는 내가 하고자하는 많은 사업을 행정적 재정적 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다.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이어서 보람차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215쪽)계몽사 김춘식 사장:계몽사 사장의 제안으로 '계몽아동연구소'개설, 어린이들이 즐겨 칮는 공간이 되었다.
(253쪽)독일정신(2):
-독일제라는 의미는 '완벽함'을 담고 있다. (장인정신)

-텅 빈 거리에서도 빨간불 앞에 일단 정지하는 국민(질서 지향적)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습관(실리추구)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다(합리적)

-때에 알맞은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의 습관화

-가족여행은 필수(가족적)

끝으로 그는 말한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易地思之할 일이다.

 

(최근에 읽은 김병종의 <화첩기행>, 노은님의 <내 짐이 내 날개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그리고 지금 읽은  이 글은 모두 사실을 기록한 글이다. 모두 재미있다. 우리의 근대사도 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신변잡기 수준이라 깨알 재미와 더불어 질곡의 개인사를 '굳은 의지'로 이겨내서 뜻을 이루기까지의 긴 여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감동을 준다.

이 책은 '보은이야기'의 인상이 짙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돕고 키운 이들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져, 읽는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이미륵, 노은님도 그랬다. 독일정신의 영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