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夫唱婦隨

맑은 바람 2021. 2. 19. 23:39

20210219 여행을 떠나며

손녀 유치원 봄방학 기간에 콧바람좀 쏘이고 오마고 가족들한테 미리 공언하고 차표와 숙소를 예약했다. 남은 일은 대니와 툭탁거리지 않고 즐겁게 잘 다녀오는 일이다.

속초행 버스 안에서 마음 먹는다. 이번 여행 중에는 마찰없이 잘 지내보리라고~
그럴라면 '내 주장(고집)'을 내려놓고
"You are the boss! "라고 말해야 한다.
'맘먹으면' 글쎄, 그리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서울을 떠난 지 세 시간 가까이 됐을 때 숙소 가까운 한화콘도 앞에서 차를 내렸다.

예상치 못했던 세찬 바람이 마중을 나왔다.
갑자기 등 뒤에서 누가 미는 것같이 발이 저절로 앞으로 내디뎌지며 몸이 균형을 잃는다.
학사평 벌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 순간 모자가 훌러덩 벗겨지더니 저 혼자 풀떡풀떡 춤을 추며 길 위를 굴러간다. 그러더니 이번엔 대니의 마스크가 훅 벗겨져 띠구르르 저만치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파란불이 켜지자 허겁지겁 마스크를 향해 뛰어가는 두 노인네를, 정지된 차 안에서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바람의 환영인사가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그 바람에 상큼한 봄향기가 실린 듯해, 오늘은 많이 걷고싶다고 말했다.

인적없는 외곽도로를 걸을 만큼 걷다가 택시 타자면 택시 타고, 저 식당 어떠냐면 "네~ 좋으실대로~"
"전복해물탕에 모듬생선구이 어때?"하면 "괜찮네"하고 대답한다.
내가 예스맨이 되기로 작심을 하니까 대니는 더 정중하게 이것저것 일단 물어본다.
아니, 이런 간단한 산수를 아직 모르고 그렇게 오랜 세월 티격태격 하며 살았단 말인가?

숙소로 돌아와 따끈한 차를 마시며 문득 생각이 든다.
'이거 철들자 노망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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