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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맑은 바람 2021. 11. 10. 22:19

박완서 기행산문집/2005.12초판1쇄/2009.12초판10쇄/실천문학/253쪽/읽은 때 2021.11.02~11.10

1.생각하면 그리운 땅
**자연은 위대한 영혼을 낳고<남도기행>
(수다쟁이 아줌마는 어디로 가고 설교조로 변한 걸까. 그래서 글이 딱딱하고 지루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간  여행<하회마을 기행>
(31)언덕에서 내려다본 하회마을은 낙동강에 떠 있는 한 송이의 커다란 연꽂처럼 보였다.

**생각하면 그리운 땅<섬진강기행>
(33)화창한 봄날이었다. 하동을 거쳐 화개장터까지 덜덜거리는 시외버스를 탔다. 그때만 해도 마을사람들이 손만 들면 버스가 서던 때였다. 버스도 더디고 봄날도 더뎠다. 황혼이 마냥 길게 꼬리를 끌고 도무지 깜깜해질 줄 몰랐다. 멀리 가까이에서 벗꽃인지 배꽃인지 모를 흰 꽃들이 분분히 지고 있었다. 달밤의 섬진강은 청승맞고도 개울물처럼 친근했다.
--그 고장의 황혼이 그토록 길고 유정했던 것은 달빛 때문도 낙화 때문도 아니라  섬진강의 물빛, 모래빛 때문이었구나,  비로소 알 것 같았다.
(44-45)운조루(雲鳥樓) , 이 옛 명문가의 살림집(조선 낙안군수 유이주 가옥)은 그 규모에 있어서나 아름다움에 있어서나 아마 섬진강 가에서 으뜸일 것이다.
이 이름난 양반가옥은 풍수지리적으로 금환낙지(金環落地)에 자리잡았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리산의 선녀가 섬진강으로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떨어뜨린 금가락지가 영롱하게 빛나는 형상의 땅이라나.
--문득 사랑 누각 밑에 멈춰선 한 쌍의 수레바퀴가 보였다. 혹시 시간을 굴리다가 저기 멈춰선 게 아닌가 싶게 운조루 안의 시간은 파문조차 없이 조용히 고여 있었다.
(47-48)보성강을 끼고 압록에 이르러 섬진강과 만나고 구례를 거쳐 화계, 악양, 하동까지의 길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파스텔조로 사위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그날 온종일 한 번도 공장이나 고층아파트의 회색빛 직선을 보지 못하였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아아, 바로 그거였구나. 오늘 하루 누린 평화와 행복의 원인이 바로 그거였구나. 그건 소리라도 지르고 싶게 놀랍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지막 남은 보석같은 땅이여, 영원하라.

2.잃어버린 여행가방
**잃어버린 여행가방
(62-63)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이런 걸 약발이 떨어졌다고 하나? 도무지 치열한 데가 없고 여행기의 짭짤한 맛도 없다. 밍밍함 그 자체.

이 책은 작가 나이 74세에 나왔다.)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감동<바티칸 기행>
(70)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의 장례식 참석:
교황을 애도하는 몇 백만 조문객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비통하기만 한 것도, 경건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미사곡은 우리의 영혼을 속세에서 해방시켜 들어올리듯 황홀했고, 교황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그가 남긴 업적을 낭독하는 동안 광장에서 터져 나온 십여 차례의 박수와 환호성, 그때마다 물결치던 폴란드 국기를 비롯한 각국의 깃발, 그건 애도라기보다는 환호에 가까웠다. 슬픔과 환희가 이렇게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 본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중국 백두산 기행>
(73)순전히 얹혀가는 꼴:취재와 답사차 떠나는 이이화씨와 송우혜씨의 동행/'그래, 기왕 얹혀갈 바에는 동행에게 부담이나 안 되게 먼지처럼 얹혀 가자, 먼지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먼지저럼 자유롭게'
그렇게 생각하니 전혀 새로운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75)진정한 여행자의 자세는 뭘까?:될 수 있으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외국이나 외국인 앞에서 마음을 도사려 먹지 않고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
(87)온대로부터 한대까지를 한몸에 거느린 백두가 마침내 머리에 인 마지막 비경을 드러냈다. 우리는 천지에 가까이 가기 전에 우선 머리를 땅에 조아려 경배부터 했다. 천지는 듣던 것보다 더 장엄하고 신령스러웠다. 우리는 마침내 거기에 이르렀다는 데에 복받치는 기쁨을 느꼈다. 우리 땅을 통해 오르지 못한 게 속상하지도 않았고, 아득한 태곳적 화산폭발로 생긴 호수 위에도 인간이 그어놓은 국경선이 있다는 게 그닥 대수롭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인간사가 다만 미소하게 여겨지는 게 우리를 자유스럽게 했다.

**상해와의 인연<상해 기행>
(98-99)상해의 인상:
처음 상해를 보았을 때의 가슴이 탁 터지는 것 같은 해방감을 매번 맛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국의 개방과 발전의 속도를 이 도시처럼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있을 것 같지 않았고, 그게 거인이 내는 속도이기 때문에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3.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숨쉬지 않는 땅<에티오피아 방문기>
--소말리아 접경 난민촌(고데)을 찾아--
(105)에티오피아--솔로몬과 시바여왕의 아들 메넬리코 1세를 시조로 한 3000년 왕국이 1974년 군부 반란 때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아프리카 여러나라 중 유일하게 고유 문자가 있다./한 번도 강대국의 식민지가 돼 본 적이 없는 나라
(106)숨쉬지 않는 땅:하늘에서 내려다 본 국토는 산도 들도 경작지 농도가 조금씩 다른 황갈색이었고
마을도 당산나무는커녕 울타리나무 하나 없이 적도의 태양 아래 무자비하게 노출돼 있어  폐촌 같은 느낌이 들었다.
(107)국토의 70~80%가 경작 가능한 평원이라는, 우리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지형이 오랜 가뭄으로 말라있을뿐 아니라 운동장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다시는 숨을 쉴 것 같지 않은 게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 없었다.
(110-111)난민 캠프와 아이들:
내부는 흙바닥이고 한 평 남짓한 넓이에 여러 아이와 한두 어른이 오물오물할뿐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 집들이 메마른 땅에 돋아난 부스럼 딱지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한없이 펼쳐져 있다.
또 하나 상상 밖의 일은 그곳 아이들의 용모의 뛰어남이었다. 앞뒤로 톡 튀어나온 수려한 두상과 깊고 맑고 검은 큰 눈과 조밀하고 긴속눈썹과 아름다운 쌍꺼풀은 그들이 솔로몬의 지혜와 시바 여왕의 미모를 면면히 잇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미소였다. 그들은 절대로 구걸이나 읍소를 하지 않고 다만 웃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인도네시아 방문기>
--유니세프 친선대사 자격으로 해일 피해가 극심했던 반다아체지역 방문--
해일에 의해 한 달 만에 20만 명이 사라짐

4.해오(解悟)의 여정
모독<티베트 기행>
(134)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에선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
(139)얄룽창포 강을 건너며:
배에 탄 티베트 사람들은 근방의 농촌사람들로 보이는데 부자랄 것도 없지만 부족한 것 없이 사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느긋하고 근심없고 충족된 표정으로 잘 웃었다. 수양이나 투쟁으로 얻은 것이 아닌 천성적인 자유스러움이 보기에 참 좋았다. 더 신기하고 반가운 것은 우리보다 더 우리나라 사람 같이 생긴 거였다. 그들은, 생활이 편해지고 음식이 서구화 되면서 우리도 모르게 용모와 체형이 변하기 전의 조선사람하고 신기할 정도로 똑같았다. 술과 음식에 의해 서로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서로 간의 마음을 다정함으로 채우려 드는 것까지 닮아 있었다.
(148)티베트에서 만난 김치와 콩나물:
여행사측에서 마련한 김치를 눈치를 살피며 먹고 있는데 티베트 웨이트리스는 도리어 "뷰티플  뷰티플!"한다.
그들의 콩나물 반찬은 모양과 맛이 우리의 것과 똑같아 놀라웠다.
(148-149)라싸의 포탈라 궁:
라싸 시내 어디서나 바라다보이는 금빛 찬란한 지붕의 장려한 궁전/999개~1000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가장 높은 것은 13층 높이/홍궁과 백궁이 있다/17세기 중엽 5세 달라이 라마 때 지어짐/강을 따라 목재를 실어 날랐음을 벽화로 추정/목재와 석재만으로 지어졌으나 300년간 끄떡없음/달라이 라마의 방은 비어 있음
이 호화의 극치와 단순 소박한 티베트인의 삶의 모습은 극단의 대조를 이루어 납득하기 어렵다.
(150)이곳은 티베트 민족의 종교와 역사와 문화와 기술이 총집결된 박물관이기도 하다. 그들이 민족적인 열정을 바쳐 증거한 그들 문화의 독창성과 우수성이 있었기에 중국에 의해 주권을 빼앗기고 달라이 라마가 망명한 지 사십 년이나 되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티베트를 중국의 서장이라고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154)조캉사원: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며  티베트  최대의 사찰이자 이 민족의 정신적 구심점/7세기 경 티베트를 최초로 통일한 토번왕국의 송첸캄포왕이 당 현종의 딸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불을 모시기 위해 창건했다 함/티베트가 세계 역사에 처음 등장한 때이기도 하다.
(156)붉은 가사를 걸친 라마승들이 마당 가득 앉아서 독경을 하고 있다. 독경을 하는 승려들도 자기들끼리 사담도 주고받고 관광객을 보고 웃기도 한다. 계율에 짓눌리지 않는 산만한 모습이 속인들의 열광적인 신앙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164)야크에 의존하는 삶
들에서 밭을 가는 야크들/야크 고기/피와 오장육부도 다 먹는다/털은 모직물/뼈는 공예품(목걸이,팔찌,그릇,부처--)/야크 똥(취사용, 월동 원료)
(168)고산지대에서는,
나무보다 풀이 더 강하고 풀보다  꽃이 더 강하다.
(169)양들의 먹이:부드럽고 푹신한 이끼류의 식물들
(169)그들의 진언:성황당 같은 돌무더기에 새긴 글/옴마니반메훔(연꽃 속의 보석이여)/이곳에서는 말 한 마디, 일거수 일투족이 부처하고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169)가장 아름다운 길:해발 5200m에 위치한  '얌드록초'(전갈 모양의 터키석 호수) 호숫길

(174)방코르 초르덴:시내 중심부에 있는 장채의 대사찰 안에 있는 8층으로 된 아름다운 불탑/15세기경 창건/

티베트 최대의 불탑

(191)고원의 목동:
산간 고원에서는 야크 가죽 텐트를 치고, 야크의 허파로 만든 풍구로 야크 똥 연료에다 풍구질을 하는 목동은 결코 구걸하지 않는다. 때에 찌들어 갑옷 같이 된 옷을 입고 머리에는 야크 머리보다  훨씬 간소한 장식을 하고 야크뼈와 터키석으로 만든 장신구를 주렁주렁 걸친 목동은 수줍고 당당하고 섹시하기조차 하다. 때의 갑옷을 걸친 섹시함은 애인의 잇새에  낀 고춧가루만 봐도 정떨어지고 마는 우리의 얄팍한 감성 그 밑바닥에 남아있는 야성을 일깨우는 원초적 숫컷스러움이다. 그러나 그들의 수효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나중까지 남을 방법이 있다면 자신의 희소 가치를 상품화하는 것밖에 없으리라는 게 불을 보듯이 뻔하게 느껴진다.
(193)시가체의 흥청거림
판첸 라마를 받드는 곳/호텔 주차장엔 일제승용차가 빼곡하고/판첸 라마는 어용/한족들이 많음/판첸 라마의 본거지는 시가체의 대사찰 타시룸포 사원
(티베트는 자연 환경이 빼어난 곳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손들은 피폐하기 그지없는 삶을 산다. 게다가 여행자들이 겪는 고산증 이야기는 티베트를 향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접게 한다)
(197)두 법왕에 대한 티베트 인의 견해:
안내인은, 지역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받드는 지방과 판첸 라마를 받드는 지방이 있다고 했고, 티베트인 안내인은 두 법왕을 형제간처럼 말했다.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제일의 법왕이고 판첸 라마는 그 아우격, 즉 제2의 법왕이라는 거었다. 또 일반적으로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 보살의 화신으로, 판첸라마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믿어진다고도 했다.
(206)팅그리 가는 길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히말라야산맥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같은 지방/그 길은 고난의 길인 동시에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여정이기도 했다./광활한 고원, 거친 암갈색의 불모지/양떼를 몰고 이동하는 유목민들의 텐트를 볼 수 있다.
(210)카일라스 산을 향하여
히말라야의 불교 성지/수미산격
(214~215)모독
(한족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요리를 시켰으나 우리는 가져간 라면과 김치만 먹었다.)
식당 여주인은 우리가 남긴 라면, 김치국물을 한데 모으더니 거기다 남은 자기네 요리를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개죽같이 만든 걸 그들에게 안겼다.
그 여자가 한 짓은 적선도 보시도 나눔도 아니었다. 같은 인간에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건 순전히 인간에 대한 모독이었다.
--뚱뚱한 식당 주인을 나무랄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니.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주오.
(고산증 때문에 갈 수 없는 땅이, 거기 거지로 사는 티베트의 어른과 아이들의 눈이 무서워, 이제는 그쪽으로 갈 생각조차 접어야겠다)
(217)초모랑마('에베레스트'는 최고봉임을 발견한 서양인 이름)를 향하여 국경 도시 장무로
희말라야 최고봉/세계의 지붕 초모랑마

**신들의 도시<카트만두 기행>
(228)카트만두의 첫인상
선진국의 폐차장을 방불케 함/지구를 반 바퀴 도는 긴 여행의 종착역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카트만두
(229)이마의 빨간 곤지:아침에 기도를 하고 나왔다는 표시
(230)두르바르 광장
구왕궁 광장/이 나라 특유의 목조건물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역사와 현재가 함께 화해롭고도 명랑하게 살아 숨쉬는 곳/하누만 도카-입구에 원숭이 신인 하누만 상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17세기 초에 건조된 목조 건물은 복잡하고 아기자기한 조각이 돋보임

(233)카트만두의 어원:
광장 안의 오래된 목조사원의 이름이 '가스타 만다프라'
(233)쿠마리:살아있는 여신/네팔에 있는 여러 종족 중 특히 네와르족이 믿는 여신/생리 전의 소녀만이 자격이 있다.
(240)다멜거리
카트만두 쇼핑의 천국/가격이 비싼 편인 고급품들이 많다
(네팔에서는 거지 얘기가 없다. 쇼핑의 즐거움을 말할 뿐이다.)
(243)스와얌부나트 사원:
일명 몽키 템플/언덕 위의 흰 사원/카트만두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

(245-246)티베트 난민촌:
아주 밝고 정갈하고 정돈돼 있다./학교도 있고 나이 어린 소녀들이 카펫 공장에서 카펫을 짜기도 한다./난민들의 의식이 충족되고 심성이 이지러지지 않은 걸 보니까 난민들이 몸 붙인 이 나라가 얼마나 괜찮은 나라인지 알 것 같았다.
(252)유혹하는 네팔 여행:
네팔여행은 상대방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신기해하며 인정해 주고 같이 즐길 수가 있어 좋고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낭비를 와장창 하고 나면 책임감과 약속에 얽매인 사람 노릇과 공해로 질식할 것 같은 몸과 마음이 당분간은 견딜 수 있는 생기를 회복한 것처럼 느껴져서 또한 좋다. 요새도 뭔가로 벌충을 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을 것처럼 심신이 바스라졌다고 여겨질 때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고 거기서 누가 부르는 것처럼 마음이 달뜨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