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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맑은 바람 2022. 9. 11. 22:28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향연/유은경 옮김/초판1쇄2004.5/개정판 1쇄 2009.2/285쪽/읽은 때:2022.9.7~9.11

나쓰메 소세키(1867~1916)향년 49세
에도출생/가난 때문에 양자로 보내져 성장한다/두뇌가 명석해서 월반도 하며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한다/구마모토 제5고등학교강사로부임, 29세에 나카네 교코와 결혼/32세에 주임교수가 됨/문부성으로부터 영국유학 통보받고 유학, 1년 후 35세에 신경쇠약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귀국함/38세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발표, 호평을 받음/40세에 도쿄대학 교수직을 사퇴하고 아사히신문사 입사/42세에 만주와 한국 여행/43세에 '문' 연재 후 위궤양으로 입원/49세에 '명암' 연재 도중, 당뇨와 위궤양으로 사망

(5)언제 읽어보아도 정말 재밌는 작품/주옥같은 문장과 해박한 지식/대학생 필독도서로 추천하고 싶음--역자 유은경의 말
(6)'문'은 1910년 3월1일부터 6월12일까지 도쿄 아사히신문과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그후', '산시로'와 함께 소세키의 대표작(1910년은 우리나라가 한일병합 조약이 체결되던 해)

소스케와 오요네, 시동생 고로쿠,
('속솔이 뜸의 댕이' 아주 오래 전 동아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이었다. 무척 재미 있어 담 날을 기다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어떤 매력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았을까?)
(24)도쿄가 이런 곳이었구나 하는 인상을 머릿속에 또렷하게 새겨서 오늘 일요일의 선물로 가져가고 싶었다.
(35)소스케는 대엿새 전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대한 호외를 보았을 때 오요네가 일하고 있는 부엌까지 달려가서 "여보, 큰일났어.이토 히로부미가 암살 당했대"라며 들고 있던 호외를 오요네의 앞치마 위에 올려놓고는 자시키로 들어갔는데, 그 말투는 오히려 침착했다.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영국유학하여 선진 문물 습득/미국과 유럽을 순방, 경험의 폭을 넓힘/초대 내각 총리/조선의 초대 통감/안중근에 저격당하여 사망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112년 전 소설을 읽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1909년이고 작가는 1910년에 이 소설을 썼으므로)
(문장이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역사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니고, 줄거리가 톡톡 쏘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노벨상 수상작도 아닌 이 작품을 독서모임에서 필독서로 추천한 이유가 무얼까?)

**유튜브에 보니,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국민작가로 세익스피어와 맞먹는,대단한 작가로 존경받고 있고, 지페에까지 나왔다고 한다. 한편에서 표절의 끝판왕이라고 혹독하게 몰아부치는 사람도 있다.** 
(80)'성공'이란 소스케와는 인연이 없는 말이었다. 소스케는 이런 이름의 잡지가 있다는 것조차 여태 몰랐다. 그래서 신기하게 여기며 일단 덮어버렸던 잡지를 다시 펼쳐보니, 문득 나란히 한자로만 된 네모난 글자 두 줄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에 바람이 불어 구름이 밀려가니, 달은 동쪽 산에 떠올라 구슬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는 의미가 씌어 있었다. 소스케는 웬일인지 이 시구를 읽고서는 매우 감동했다. 이런 풍경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필시 인간들도 즐거울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91)(비가 새는 방, 밑창이 뚫린 구두, 대책도 없는데 학비 내놓으라는 동생, 아버지 집을 거의 빼앗다시피하고 돌아가신 숙부, 집 판 돈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오리발 내미는 숙모, 병든 아내--소스케 앞에 놓인 현실이다.)
(143)(오요네의 발병:협심증? 의사가 처방한 수면제 과용으로 위기를 넘김)
(173)점쟁이는 큰길가에 자리를 펴고 일이 전에 행인들의 운명을 점쳐주는 자들과 똑같이 여섯 개의 산가지를 이리저리 늘어놓기도 하고 오십 개의 대나무 점대를 비비거나 세어 보았다. 그런 뒤 문제가 있다는 듯이 턱수염을 쥐고 한참 생각하다가, 오요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자식은 안 생겨"라고 침착하게 선고했다. 오요네는 한동안 점쟁이의 말을 잠자코 머릿속에서 곱씹어 보다가 얼굴을 들고선 "왜 그런가요?"하고 물었다. 그때 오요네는 점쟁이가 대답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에 잠길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그는 오요네의 미간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바로 "남에게 나쁜 짓을 한 적이 있지? 그 죗값으로 자식은 절대로 못 가져"라고 잘라 말했다.
그 한마디는 심장에 화살이 꽂히는 듯했다.
(198)소스케와 오요네의 과거:
불륜의 발각이 정통으로 그들의 미간에 꽂혔을 때, 그들은 이미 도의적인 경련의 고통을 극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창백한 이마를 솔직하게 앞으로 내밀고 불꽃과 비슷한 낙인을 받았다. 그리고 무형의 쇠사슬에 묶인 채 서로 손을 잡고 어디까지라도 함께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부모를 버렸다. 친척을 버렸다.친구를 버렸다. 크게 보면 일반 사회를 버렸다. 어쩌면 그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쪽이 옳았다. 물론 학교로부터도 버림받았다. 다만 표면적으로는 스스로 퇴학한 것으로 하여 형식상 인간다운 흔적을 남겼다.아, 이것이 소스케와 오요네의 과거였다.

(영국왕실의 카밀라는 낯 두껍게 50년을 버티더니,마침내 대영제국의 왕비까지 되었는데--)
(199)부부는 해 앞에서 웃고, 달 앞에서 생각하며, 조용히 한 해를 맞이하고 보냈다.
(210-211)"여기(사카이의 서재)는 제 동굴이죠.귀찮은 일이 생기면 이곳으로 피신한답니다." 소스케도 두툼한 솜방석에 앉아서 일종의 적막감을 느꼈다. 가스가 타오르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리더니 이내 등쪽부터 따뜻해져 왔다.
"여기 있으면 아무 간섭도 받지 않지요. 아주 편하답니다. 천천히 놀다 가세요. 정말이지 설날이라는 건 예상외로 복닥대거든요. 저도 어제까지는 힘들어서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신년을 지내기가 정말 괴로워요. 그래서 오늘 낮부터는 드디어 속세를 피해 들어와 몸도 안 좋고 해서 한숨 푹 잤습니다. 방금 전에 일어나 목욕하고 밥먹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났더니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척집에 가고 아무도 없더라구요.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심심해지는 거예요.인간도 꽤나 제멋대로죠? 하지만 아무리 심심하다고 해서, 더 이상 경사스러운 것을 보거나 듣는 것도 힘에 부칠 터이고 또 설 음식 같은 것을 먹거나 마시는 것도 진저리가 나서, '설날답지 않다'고 하면 실례되겠지만 하여튼 세상과 별로 인연이 없는 노나카씨, 이렇게 말해도 또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한마디로 말해서 초연한 사람과 이야기가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일부러 오시라고 청한 겁니다. 하고 사카이는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로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소스케는 이 낙천가 앞에서는 종종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자신이 만일 순조롭게 발전해 갔다면 이런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어제 추석날 행사를 마치고 오늘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와 책을 펴고 앉았으니 사카이의 말이 100% 공감이 된다. 명절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꼭치러야 하는 통과의례다.
매스컴에서는 명절을 맞이하는 세간의 분위기를, 해마다 천편일률적으로, 호들갑을 떨어가며 보도하지만 정말 기쁘고 신나는 건 아이들 말고 또 있을까. 어른들은 경제적 형편에 맞게 선물을 준비해야 하고, 여자들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장을 봐야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한편으로 한동안 방치했던 먼지들을 구석구석 털어내야 하고--명절 며칠 전부터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나 고맙게도 명절이 되어 가족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더 할 나위 없이 기쁘고 즐겁다.
아들과 메눌과 할미할비는 적당히 일을 안배해서 얼굴 찡그리지 않고 차리고 먹고 치운다. 가족들의 특별한 놀이 문화가 없는 우리 집은 TV에 눈을 주거나 대화를 나눈다.어린 손녀들이 있어서 화제가 궁하지는 않다. 달이 중천에 떠오를 무렵, 귀가하는 아들네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들어온다.뭐 대단한 일을 치른 것도 아닌데, 큰일을 무사히 잘 치뤘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싫어도 좋아도 꾀가 나더라도 제 할 일을 마쳤을 때의 이 뿌듯함을 누리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명절의 통과의례를 반갑게 맞고 보내야겠다.)
(263-264)문:

나는 나의 문을 열려고(산문에) 왔다. 하지만 문지기는 문 뒤에 있으면서 아무리 두드려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없다. 네 힘으로 열고 들어오너라"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그리하여 그 수단과 방법을 분명 머릿속에 준비했다. 그러나 빗장을 실제로 열 수 있는 힘은 전혀 양성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무능하고 무력하게, 닫힌 문 앞에 남겨져 있다.---그는 오래도록 문밖에서 서성이는 운명으로 태어난 듯했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도 없었다.하지만 어차피 통과할 수 없는 문이라면, 일부러 거기까지 찾아가는 건 모순이었다.--그는 앞을 바라보았다.눈앞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나 전망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는 그 문을 통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앞에 우두커니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우리 속담에 '죄 짓고 못 산다'는 말이 있는데, 소스케의 열흘 간의 피 말리는 시간(야스이와 마주치게 될 것 같은 불안 때문에 산문으로 피신했던 일)은 바로 그 적절한 예가 되겠다.)

(마침내 숙제를 마치는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다. 독서모임의 필독도서 선정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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