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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바로티'

맑은 바람 2022. 11. 23. 23:57

종로구평생교육원 프로 '오페라교실' 그 12회의 막이 내렸다.
아이다, 나비부인, 라보엠 등을 설명을 들으며 전편을 감상하는 호강을 누렸다.
그 유명한 오페라의 아리아들을 만난 것도 큰 즐거움이었지만 그동안의 수업 내용 못지않게 오늘 본 론 하워드 감독의 '파바로티'는 명작 중의 명작이었다.

파바로티의 다양한 노래로 귀를 호강시킨 것은 물론, 파바로티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말들이 금과옥조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면서 마음껏 정지 버튼을 누르며 대사를 적었다. 필사 좋아하는 사람의 또 다른 취미활동이다. 두 번 보았어도 또 좋다. 최근에 만난, 가장 감동적인 영화다.

(영화내용)
--100년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파바로티의 답변)
긍정적인 사람으로~
*오페라를 친근하게 해 준 사람
*레퍼토리가 다양했던 사람
*명성을 위해서만 새로운 오페라를 추구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
*늘 비평의 대상이었으니 용감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네.

--한 인간으로서의 파바로티는?(임종을 앞두고)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면 좋겠어. 그리고 좋은 친구로. 내 친구들과 주변사람들 모두에게.
지금 제일 속상한 건 생각만큼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는 거야. 당신이 언제까지나 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혹시 오늘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일도 있으니까"

*전 운이 좋았어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에서 자랐으니까요.
아버지는 성가대 테너였어요. 경이로웠고 저보다 훌륭했어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요.
1955 웨일즈 합창경연대회에 아버지 따라가서 합창 우승--제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잊을 수 없는 날이었지요.

(당시 초등학교 교사)
그때 공부 더 해서 대학교수가 되라는 아버지 말에 어머니는 반기를 들었어요.
"난 내 아들의 노래를 들으면 가슴 속에서 뭔가가 느껴져"
1955년에 성악공부를 시작해서 1961년에 데뷔했다.
첫번째 부인 아두아 베로니를 만남. 그녀는 말했다.
"어떻게 파바로티 목소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돈은 필요 없었어요. 빈손으로 시작했죠"
파바로티는 말했다.
"시적이고 로맨틱하고 긍정적인 관계였죠. 눈앞의 사랑을 꽉 붙잡았죠"
*1963년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함. 스테파노가 병으로 공연 취소가 되면서 파바로티가 '라 보엠' 주역을 맡음
*조안 서덜랜드와 투어 공연
"지구상에 존재했던 가장 이상적인 목소리였어요"--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지상 낙원을 연상하게 하는 소리예요."--소프라노 캐롤 바네스
"파바로티처럼 되려면 하이 C를 낼 줄 알아야 돼요. 하이 C를 못 올리면 대형 테너는 될 수 없죠"

파바로티는 줄리어드에 마스터 클래스 강사로 초빙되어, 거기서 학생 신분인 소프라노 매들린 르네를 만났는데 그녀를 비서로 채용하면서 사랑에 빠졌으나 1980년대 후반에 매들린은 자책감을 느끼고 파바로티를 떠난다.

"목소리는 여성 명사예요.굉장히 질투심이 강하고 원하는 게 많은 여자일 거예요"--플라시도 도밍고
"그녀없이는 못살아요, 목소리와 함께하다 보면 목소리가 모든 것에 반응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녀는 제 몸 안의 프리 마돈나예요"-파바로티
"오페라는 사랑이고 증오고 죽음입니다. 오페라는 분명 가짜인데 무대에서 조금씩 서서히 진짜가 돼갑니다. "--파바로티
*허버트 브레슬린: 1967~2003 동안 파바로티의 메니저
-미국 농촌투어:신께 받은 걸 나눈다. 내가 유명해지는 게 아니라 그곳들을 세상에 알리는 게 목적
*사람들이 파바로티에 열광하는 이유: 그 미소, 그 실력, 그 인성에 빠져들었다(100%공감!)
*파바로티가 여성들을 더 좋아한 이유:부모가 결혼한 지 6년만에 태어나 고모들과 여자들 속에서 자랐고 결혼해서도 첫 부인과의 사이에 딸만 셋 두었다.

"세상엔 훌륭한 스승도 학생도 따로 없다.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한 거다."--파바로티
*뉴욕주 뉴욕시 매디슨 스퀘어 가든1984년, 록큰롤 가수 대신 파바로티가 공연을 하게 됐는데 기획자가 특별히 자기 부모를 초대했다는사실을 알고 사람들을 물리치고 그 두 분 앞에서 아리아를 불러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파바로티는 상대에게 친구로서 다가갔고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재주가 있었다.
*딸이 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에 걸리자 파바로티는 콘서트도 오페라 공연도 모두 취소하고 줄리아나 곁에서 간호했다. 다행히 딸은 회복되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딸에게 말했다.
"생명은 네가 가진 가장 소중한 거란다. 다시 시작하자"
*파바로티 중국 공연:
"파바로티가 흰 손수건을 들고 미소를 지으면 온세상이 마음을 열었어요"--피아니스트 랑랑

**매들린이 떠난 후 그는 야간 공연을 다니며 팔리아치를 부른다
"삶이란 이런 거야, 나가야 해. 나가서 웃어야 해. 내 마음은 죽어갈지라도 매일 밤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줘야 해."
'사무치는 고통을 웃음으로 바꿔 놓아라. 고통 속의 눈물은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웃어라,광대야. 네 사랑이 무너졌으니 그 고통을 웃음으로 바꾸어라.네 심장을 난도질하는그 고통을'--팔리아치 중에서
*1990년 7월7일 이탈리아 로마 카라칼라 욕장에서 쓰리테너 공연
(지휘자 주빈메타도 쓰리테너도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간 그 속에는 따뜻한 우정이 스며 있었다. 최고의 순간이었다)
*런던 하이드 파크를 휩쓸고 간 허리케인: 모금공연/청중 25만명/파바로티 데뷔 30주년 축하 공연도 겸함/
폭우가 쏟아짐/주최 측에서 말했다/"우산을 접어 주실 수 있을까요? 모두 비 맞으며 즐깁시다.감사합니다"/그때
"가장 먼저 나서준 사람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였어요"경호원더러 우산을 접으라고 했을 때 마치 파도가 치듯이 맨 뒤의 청중까지 이어졌어요."
그 광경을 지켜본 파바로티가 말했어요.
"좀 전에 부른 것과 같은 '마농' 속의 아리아인데요, 제목은 '돈나 논 비디 마이' 해석하자면, '일찍이 본 적 없는 여인'입니다. 허락하신다면 다이애나 왕세자비께 바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영국 적십자 12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그때부터 파바로티는 자선공연에 쏠리기 시작했다. 이젠 온통 남들을 위해 뭔가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모데나에서 열린 '파바로티 인터네셔널 자선 콘서트'(1992년)
*첫 공연 후에 만난 니콜레타 만토바니(두 번째 부인)/23세의 자연과학도/파바로티보다 34살 연하/니콜레타는 사귄 후 얼마 있다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음/계속 만나면 안 될 것 같다 했더니 파바로티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까진 널 사랑했지만, 이젠 널 사모하게 됐다."
('남 몰래 흐르는 눈물'로 마음을 대변한다)
그리고 "병을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병을 기회로 보라, 불운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파바로티는 12살 때 밖에서 놀다 파상풍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다.그 이후 낙관적 성격의 소유자가 된 것 같다.
"지금 이 순간만 이겨내면 난 인생을 즐길 거야, 태양을, 하늘을, 나무를 모든 걸 즐길 거라고."
*루치아노는 보노에게 곡을 써 달라고 직접 부탁했다. 그리고는 한 술 더 떠 모데나로 와서 공연을 해달라고 졸랐다.
보노는 '미스 사라예보'라는 곡을 만들었다. 모데나 공연은 성사됐다.
*'미스 사라예보'첫 공식 무대/파바로티와 친구들/보스니아 어린이들을 위한 콘서트
**사라예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994

루치아노는 부당한 세상에 짓밟혔고 전쟁은 깊은 상처로 남았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차라리 현재 세상의 흐름을 이용해서 뭔가 해보자는 생각을요---보노
파바로티는 직접 사라예보로 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1996년 2월 바베이도스:파바로티 휴양지/ 이때 니콜레타와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언론과 대중의 질타를 받았다

(질투하고 씹고 싶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전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배웠어요. 그리고 신뢰하라고.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면 나란 존재는 없을 겁니다."
(세상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요인이었을까?)

늙은 파바로티의 공연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는 이들을 두고 보노가 한 말: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당신이 노래를 알아?
파바로티의 노래가 위대한 이유는 그 노래 안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그 아픔을 느껴야만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예요. 노래에 담을 수 있는 건 자신의 일생뿐이예요"
(파바로티는 죽음을 예견하고 처절하게 '별은 빛나건만'을 불렀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절망 속에 죽는구나. 삶이 이토록 소중할 때가 있었는가 너무나도 절실하구나'
임종을 앞두고 딸은 말했다.
"더 이상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고.(그녀는 가족과의 화해를서둘렀다)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하느님, 제가 벌 받지 않도록 해 주소서. 영원한 불구덩이에서 당신의 엄격함으로 인해--'

**2007년 사망할 때까지 파바로티의 앨범은 1억장 이상 판매됐고 공연을 관람한 청중은 천만 명이 넘었다.

'내가 승리하리라! 내가 승리하리라! '-'넷슨 도르마'에서
(그는 노래가 끝날 때마다 다른 세상에서 돌아온 듯, 잠에서 깨어난 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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