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산문집-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2008 우수 문학 도서
최영철 글/박경효 그림/산지니 출판/첫판1쇄 2008.5/첫판2쇄 2008.10/271쪽/읽은 때 2023.11.27~12.26
최영철(1956~ )경남 창녕에서 출생, 부산에서 자람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2000년 백석문학상 수상
(이 글은 부산에서 반백 년을 살아온 부산 사나이의 이야기다.
알라딘 중고에서 카페라테 한 잔 값으로 산 책이다. 2008년 '우수문학도서'라는 표지 안내에 마음이 끌려 사들였지만 앞에서 읽었던 '얘들아~' 와 '똥꽃'과는 결이 다르다. 이 별 맛 없을 것 같은 카페라테를 마셔, 말어?
그러다가 한번 손에 들어온 건 허술히 내보내지 않는 성깔 때문에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부산여행을 몇 차례 했으니 글을 통해 좀더 깊은 맛을 보면 좋겠구나 생각했다.)
1부 풍경들
영도대교--태종대--부산성 충렬사-- 산복도로--대청공원--범어사 --동래온천 노천 족욕탕--천성산--달맞이고개--해월정--청사포--구덕포--송정 해수욕장--용궁사--연화리--대변항--동해남부선(부전- 거제- 동래- 수영- 해운대- 송정- 기장- 일광- 좌천- 월내- 서생- 남창- 덕하-선암- 울산- 효문- 호계- 모화 -임실- 죽동- 불국사- 동방- 경주- 나원- 청령- 사방- 안강- 양자동- 효자 -포항) --간절곶 --장생포항-- 부산 서면의 일출--동래 온천장, 금강공원, 금강식물원--구 조방[조선방직]터 거리(부산진시장,평화시장,자유시장)--호포
(69)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까지 갔다오곤 했던--(같은 과~ㅎ)
(72)부산사람의 불뚝성질이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이 된 적이 몇 번 있었다. 3ㆍ1운동과 4ㆍ19 의거를 전후한 학생들의 끈질긴 저항이 그러했고,1979년과 1987년의 항쟁은 두 독재 정권의 무릎을 꿇게 하는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다.부마항쟁과 유월항쟁은 부산이 도화선이 되거나 핵심이 되었던 항쟁으로 시민의 힘으로 절대 권력을 굴복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런 시민 주체의 신화가 부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두고두고 부산의 자긍심이 될 만하다. 그 덕택에 '부산 사람이 일어나면 역사가 바뀐다' 는 말까지 생기지 않았던가.
(75)시간과 공간
우리의 기억은 시간보다 공간에 더 많이 의지한다.시간은 쉼없이 흐르는 강물과도 같아서 붙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지만 공간은 일정한 범위를 유지하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 속성으로 하여 공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느라 놓쳐버린 시간의 기억들을 재생하고 환기한다. 저만큼 멀어져 버린 시간도 공간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잠시 재현된다.
(76-79)유월 항쟁의 기억
1987년 1월14일 박종철군 고문 치사와 관련해 가장 먼저 일어섰던 것은 2월 4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박종철군 범국민 추도대회>와 관련해 전국14개 교구의 사제와 신도들에게 보내는 공한 형식의 성명을 발표한 일이다.
2월 7일 남포동의 추도대회는 1만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박종철: 부산출생/서울대 언어학과 학생회장
---대학과 종교시설을 기점으로 한 부산의 유월항쟁은 그렇게 촉발되고 점화되어 그해 5월에 이르러서는 부산교구의 사제 수녀 신도들이 가톨릭센터와 중앙성당 등에서 단식 기도에 들어갔으며 부산대 동아대 부산여대 부산산업대 소속 교수와 학생들의 시국 성명과 거리시위가 뜨겁게 이어졌다.
---부산 유월 항쟁에서 성직자와 대학생들이 항쟁의 불씨를 지폈다면 노동자들은 그 불씨를 살리기 위해 맨몸으로 뛰어들어가 스스럼없이 불쏘시개가 되었던 사람들이다.
--부산의 공장 노동자와 재래시장 상인들이 1987년 6월 그런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재래시장 상인들은 대학생들의 형이요 어머니였으며 노동자들의 언니요 할머니였다.
(82)서면로터리:
1987년 6월, 충무동에서 남포동 부산역으로, 온천장에서 연산동 양정으로, 사상에서 개금 가야로 환하게 출렁이며 흘러가는 물결들이 있었다. 누구의 강요도 없었으나 그들은 어둠이 밀려드는 저녁 거리로 나섰고, 어디로 나아가라는 명령이 없었으나 모두 일정한 방향을 향해 걷고 뛰기 시작했다.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이 없었으나 밤이 깊을 즈음 그들은 더운 김을 내뿜으며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서면로터리였다./백여 명으로 시작된 시위는 곧 오백, 천, 삼천, 오천 명으로 불어났고 연좌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머리 위로 시민들이 던진 빵과 우유가 날아왔다./대학생과 노동자는 뿌리로 스며드는 빗물이었으며 시민은 그 영양분으로 핀 꽃이었다. 그리고 20년,돌아보니 그날 우리가 피워올린 꽃이 온데간데 없다.
(85)水營城 수영사람 수영강:
수영으로 이사 와서야 알았다.그동안 산업화로 급조된 소란스러운 동네를 부산의 전부로 알고 있었던 나는 부산으로 흘러들어온 지 거의 반백 년 만에 비로소 부산의 관문을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수영은 지대가 높고 비교적 조용하고 안정된 동네다.
(90-91) 25의용과 안용복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좌수사 박홍은 성을 버리고 도망을 쳤고 수영성에 침입한 왜군은 7년 동안 이곳에 주둔하며 약탈과 살육을 감행했다. 이에 맞서 이곳 수군과 성민 25인이 죽기를 각오하고 왜군과 싸우기로 결의하고 7년 동안 유격전으로 적에 대항하였다./수영사적공원 북쪽에 자리한 <25의용단>은 그들의 義勇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92)안용복 장군
동래부에서 출생한 조선 숙종 때 어부/1693년 울릉도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일본인 어부들에 의해 납치되었는데, 안용복은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주장하여 그들로부터 이를 인정하는 서계를 받았으나 돌아오는 도중 쓰시마 島主에게 빼앗겨 조선인의 울릉도 출어금지 요청서를 받아 가지고 귀국했다/그후 1697년 일본은 공식으로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확인하는 통지를 보냈다./수영사적공원 안에 동상이 있다
(95)수영동 푸조나무:수령 500년/이 나무 때문에 이곳으로 이사했다.
(108)鄭瓜亭碑
고려 의종 때 충신 정서가 귀양 와 지금의 수영구 망미2동 인근의 수영강변에서 오이를 기르며 살았다.
임금이 다시 부를 때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읊은 것이 <정과정곡>이다.이곳에 그를 기리는 비가 세워졌으니 <정과정비>가 바로 그것이다.
2부 작품들
(113)사진작가 최민식의 작품들:
그의 사진이 드러낸 궁색하고 비극적인 정황들, 생선상자 옆의 무료한노인들과 바닥에 엎드린 상이군인과 쭈그러진 양재기에서 무엇인가를 허겁지겁 집어먹고 있는 하층민의 절박한 모습들은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변주된다.어떤 폭풍우가 몰아쳐도 쉽게 침몰할 것 같지 않은 질기고 옹골찬 생명력으로 다음 출항을 기다리고 있는 얼굴들이다.
(121-122)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동백은 부산사람의 질긴 생명력을 닮았다. 진녹색 잎과 진홍색 꽃의 조화는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한 넓고 싱싱한 생명력을, 거기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부산 사람의 뜨거운 가슴을 닮았다. 찬바람을 묵묵히 이겨내고 피었다가 만개한 통꽃 상태 그대로 툭 떨어지는 꽃의 낙화 역시 부산 사람의 화통한 기질과 닮았다.
동백은 강건한 꽃이다. 늦겨울에서 이른 봄 사이, 혹한에 시달리며 그럭저럭 겨울을 견뎌낼 내성이 생겼을 때 동백은 빨간색과 흰색의 꽃을 피워 올린다. 추위에 얼어붙은 대자연의 감각 세포를 두드려 깨우며. 이제 그만 봄을 포기하려는 우리를 나무라며 동백은 핀다.무채색의 겨울,빛을 잃고 맛을 잃고 향기를 잃어갈 즈음 동백은 핀다.이대로 꽁꽁 얼어붙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며 동백은 핀다.
동백은 애절한 꽃이다.겨울 칼바람을 꿋꿋이 견뎌냈음에도 불구하고,그것을 짙붉은 입술로 녹여 물리쳤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찾아온 봄을 다 껴안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아지랑이처럼 다투어 피는 작은 싹들 위에 그 육중한 몸을 내려놓는다. 살얼음의 겨울은 나의 것이고 이 환장할 봄 기운은 모두 너의 것이라며 땅 속 씨앗들의 거름이 된다.왜장을 안고 강물에 뛰어들었던 논개처럼, 동백은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몹쓸 겨울을 부둥켜안고 아래로 떨어진다.
(123)가요, <동백아가씨>:
대중가요는 그 애절함에 기댄다.동백아가씨는 작사 작곡 노래의 삼박자가 그 애절함의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백영호의 애조 띤 선율과 그리움에 멍든 가슴을 동백꽃에 비유한 한산도의 가사와 스물네 살 이미자의 풋풋한 노래가 잘 버무려져 있다./그런데 동백아가씨는 세상에 나온지 2년 만인 1966년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되고. 1970년 음반이 판매 금지되는 아픔을 겪었다.걸핏하면 왜색이나 퇴폐를 이유 삼던 시절이었다. 어떤 이는 금지곡이 된 연유가 곡이 아닌 가사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터졌던 동백림사건을 연상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는 것이다.
20년 금지곡 딱지를 뗄 수 있었던 것은 1987년에 찾아온 민주화 열풍 덕이었다.
이 노래는 1964년 개봉한 김기 감독,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곡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이 노래의 작사가 한산도, 작곡가 백영호는 각각 부산 부평동과 서대신동이 고향이었고 영화의 첫 촬영지도 다대포 해변이었다./음반 판매량 200만장의 기록을 세워, 가수 이미자를 엘레지의 여왕 자리에 올려 놓은 것도 이 노래였다.
(127)구포 둑 너머 봄이 왔다.:
1980년 전후의 구포는 억압된 현실을 향한 자의식과 그것을 억누르는 외부의 힘이 팽팽히 대처한 공간이었다.강둑 저편 강이 유구한 역사의 진행과 쉼없이 나아가고자한 열망의 다른 모습이었다면 강둑 이편의 도시는 먹고 사는 일에 발목 잡혀 일상의 무사 안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굴욕의 공간이었다.
(133-136) 영화 <친구>:
친구의 흥행 대박은 부산으로서는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었다.전 장면을 부산에서 찍었고 부산 출신 영화인이 대본과 감독을 맡았으며 영화의 대사 역시 모두 부산말이었다.---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부산사투리를 일관되게 사용한 경우는 우리 영화 사상 초유의 일이었을 것이다.활달하고 팍팍한 부산 사투리는 영화의 전체 이미지를 동적으로 끌고가는 큰바탕이 되었다.
(145)세 마디 말의 깊은 뜻:
부산 남자들은 저녁에 귀가해 대체로 아내에게 다음 세 마디만 한다.
--밥 문나?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던지는 말이다. 오늘 하루의 무사 안녕을 묻는 이 한 마디에는 쌀은 떨어지지 않았느냐는, 가정경제에 대한 걱정도 함께 묻어 있다.
--아는?
산과 같은 마음이다.산이 뭇 생명들을 품어 키우듯이, 그들을 위해 거처를 내주고 일용할 양식을 키우듯이 자식들의 안부를 묻는다.
--자자.
강과 같은 마음이다. 저녁강이 스스로 깊어지며 사랑하는 것들을 껴안듯이 피곤하고 짐진 자들과 함께 휴식에 들듯이.
(148-152)사직야구장과 부산갈매기:
부산 사람들의 활기와 열정을 만날 수 있는 곳/<부산갈매기>는 부산 롯데자이언츠 팀의 공식 응원가다./갈매기들은 얼핏 활기차 보이지만 실은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허풍쟁이와 같은 유랑의 비애가 숨어있다. 역사의 질곡에 밀려 일용할 양식을 쫓아 부산에 유입된 현대사의 민초들에게 그런 유랑의 비애가 있었다.낯선 삶의 전장에 내동댕이쳐진 그 비애가 파닥이는 생동감과 질기고 모진 근육을 만들었다.
갈매기는 하늘에서 바닷속의 멸치를 분간할 정도로 눈이 밝은 새라고 한다. 먼곳과 깊은 곳을 보는 시야가 있고 비행 솜씨도 뛰어나 어디가든 제 한 몫은 단단히 하고 사는 새라고 한다. 부산은 그런 갈매기를 알아보고 제 가슴 언저리에 품을 줄 아는 동네다. 그렇게 철새갈매기를 받아들이고 텃새갈매기를 키웠다.
(153)중앙동 사십계단:
중앙동에 나갔다가 부산우체국 뒤편 사십계단 앞 벤치에 앉아 보았다. 무르익은 봄날의 따스한 햇살과 헐렁한 주말 오후의 적요가 평화로웠다./중앙동은 이름 그대로 부산의 중심이어서 갑갑한 느낌을 주지만 부두가 지척이고 사십 계단 주변에 헐렁한 풍물들이 생겨나면서 훨씬 넉넉해졌다./사십계단을 크게 주목하지 않던시절에 이곳을 영화<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주배경으로 설정했던 이명세 감독은 사십계단이 지닌 문화사적 의미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듯하다./1999년 개봉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사십계단 살인 장면은 우리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데 나 역시 잔혹한 살인장면을 극도의 절제와 미학으로 풀어낸 감독의 시적 감수성에 충격을 받았다./그리고 그 살인 광경을 주시하는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를 깔아놓은 아이러니가 놀라웠다.
(갈수록 깊이 있고 재미있는 책, 관점에 따라서는 너무 부산을 我田引水격으로 바라보지 않았나 생각도 들지만 이 책을 덮을 무렵엔 무궁화열차를 타고 부산을 내려가 보고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160-163)影島
영도는 섬이지만 섬이 아니다./영도라는 지명은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을 만큼 빨리 달리는 말을 생산한 곳이라 해서 붙여진 옛지명 절영도에서 유래한 것이다.영도는 그러니까 말을사육하고 길들이기에 적합산 지형과 기후였다.
그림162
영도는 부산의 해안경비대다.영도의 지형은 부산 내륙을 방위하는 자연적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164-167)김종식<1918~1988>의 그림:
그의 그림에는 그늘이 없다.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 절영도의 말처럼 빛이 어디에서부터 달려와 어디를 관통해 어떻게 스러지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김종식의 그림은 그래서 전체가 한 덩어리이고 전체가 중심이고 전체가 주변이다.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동경 유학을 같이했던 서울 화가들의 손짓에도 불구하고 줄곧 부산에서 그림을 그렸던 김종식의 고집스런 생이 그러했다.
김종식은 바다의 표면을 그리지 않고 그 내면을 그렸다. 흐르는 피와 뛰는 심장과 솟는 힘줄을 그렸다./그는 여명기의 부산 畵壇을 가꾼 1세대 토박이 작가다.
(176)이별의 부산정거장;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이 노래는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환도 열차에 님을 떠나 보내는 부산사람의 애타는 심정을 담아 1953년 남인수가 부른 노래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품어준 부산이 고맙고 내것 네것 없이 아픔을 나누어 가질 줄 알았던 부산사람과 맺은 정분이 그만큼 두터웠기 때문이리라. 그동안 정들었던 부산은 그들에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고 귀향열차는 그래서 눈물겨운 이별열차였다.
(182)하단
시내버스로 두어 시간, 도시의 중심부로부터 충분히 떨어진 곳이어서 도피처로 적당하다. 이윽고 길의 끝, 낭만과 피안의 안전한 무풍지대에 이르렀다는 안도감, 끊잉없이 우리를 추궁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난 해방구였다./강이 흐르고 갈대가 서걱대고 강의 낙조를 따라 철새가 일제히 날아오르던 하단포구, 그 서정을 신창호 그림. <하단정경>에서 다시 만났다./하단은 낙동강의 끝이란 의미/기원 전 4~3세기경부터 사람이 살았다./일제시대 상업의 요지였으나 개발에 밀려 낙후된 곳
(185)을숙도:
하단 건너편에 있다/우리가 갈 수 있는 막장 속 최후 갱도
(187)난개발의 현장 부산:
한적하고 평화롭던 항구도시가 일시에 북새통이 되었던 오십 년대와 물밀듯이 밀고 들어온 산업화의 격랑을 정신없이 받아들인 6,70년대를 겪으연서 부산의 면모는 조감도나 설계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집을 지은 꼴이었다. 그렇게 무차별로 진행된 부산의 근대화는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아슬아슬한 측면도 없지 않다.
지상과 고가를 어지럽게 넘나드는 도로망과 스카이 라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고층 건물과 눈앞을 막아서는 무질서한 간판들 사이에서, 사람이 다니는 길은 좁아졌거나 없어졌다.
(188)유익서의 소설 <우리들의 축제>
유익서는 1945년 부산 출생/이 소설은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난개발의 문제점을 다룬 소설/매축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설계의 실수로 건물이 기울자 입주자들이 모두 빠져나가 텅빈 빌딩으로 남아 있다./'마침내 그 빌딩은 무너졌다. 그 속내를 알 까닭이 없는 항구도시의 시민들은 마침내 빌딩이 수명을 다해 스스로 무너진 것으로 생각했다.'
(193195)용두산공원:
부산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120m 높이의 부산타워를 오르면 시가지와 항구의 전경은 물론 맑은 날에는 멀리 일본 대마도까지 보이는 곳으로 부산을 찾아온 국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고봉산 작사 작곡 <용두산엘레지>가 있다.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 말자. 한 발 올려 맹세하고 두 발 딛고 언약하던 한 계단 두 계단 일백구십사 계단에 사랑 심어 다져놓은 그 사랑은 어디 가고 나만 홀로 쓸쓸히 그 시절 못잊어~~'
(이제는 그곳에 에스컬레이터가 생겼다!)
(199)범일동:
시외버스터미널과 재래시장이 있다/영화관에서 성교육을,포장마차촌에서 술을 배웠다.
김희진 감독의 영화<범일동블루스>는 범일동의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6)망양로 산복도로:
부산이 만든 길 중 가장 높이 위치한 길/5,60년대 부산에 정착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둥지를 틀었던 처음의 길/산의 복부, 산의 허리,산의 중간을 관통하는 도로다. 오늘의 부산을 땀 흘려 일군 주역들이 살고 있다./산복도로 주민 강영환 시인의 '산복도로' 연작시가 있다.
(212)해운대의 여름:
한산도 작사,백영호 작곡, 손인호 노래<해운대 엘레지>가 있고 해수욕장 한켠에 노래비가 있다.
(217)경상도 어머니:
경상도 어머니는 그 어느 어머니들보다 질기고 억세어 그 모성이 쉽게 약화되거나 도태되지 않을 것 같다. 지칠 줄 모르는 사낭은 간섭이 되고 억압이 되고 끝내는 어서 탈출해야 할 족쇄가 되기도 한다.어머니는 고향과 같은 곳이어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따스한 품이지만 그 전근대성 때문에 어서 벗어나고픈 감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윤택 희곡 <어머니>는 경상도 어머니를 잘 말해주고 있다./이윤택 자신의 어머니가 작품의 모델이 되었음을 밝혔다.*이윤택은 부산사람
(222)<우리 형>
안권태 감독의 2004년 데뷔작/김해와 부산과 그 인근이 배경/모든 대사가 부산 사투리
(228)자갈치시장:
삶의 충전소 같은 곳/해방을 전후해 노점이 들어서면서 시장이 형성된 곳으로 전쟁 후에는 맨주먹으로 피난 내려온 팔도사람들의 삶터가 되었다./부산은 전쟁에 내몰린 팔도사람들의 최종 귀착지였고 자갈치 시장은 막장과도 같은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만난 훌륭한 생활근거지였다. 부산사람들의 악착같은 기질과 끈질긴 생명력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다./화가 박병제의 <자갈치 시장의 오후>가 있고 이현대 희곡 <자갈치>가 있다./지금은 지하 2층,지상 7층 규모의 현대식 시설로 새롭게 개장했다.
(233)영도다리:
영도다리를 보존하자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것도 영도다리를 아프고 아팠던 흉터로 남기려고 했던 것이다./이별, 만남,기다림,눈물과 한숨의 다리/한때 철거 예정이었다가 문인들의 보존운동에 힘입어 아직 우리 곁에 있다./<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른,부산 출신의 가수 현인의 노래비와 동상이 영도다리 옆에 섰다.
(239)부산의 진산 금정산:
오색 향기 나는 구름을 타고 내려온 금빛고기가 그 속에서 놀았다는 금샘의 전설에서 유래함/최고봉이 고당봉이고 금정산성의 위용과 범어사의 각 암자들이 지닌 운치도 자랑할 만하다.
시인 유병근의 '금정산'연작시가 있고 이해웅의 '금정산'도 있다 그리고 엄국현 시인의 '금정산'도 있다./유병근 시인의 금정산이 엄격한 아버지의 품성을 닮았다면 이해웅 시인의 금정산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성을 닮았다./이해웅 시인의 금정산은 지평선에 가까워서 모든 것을 수용하고 수긍한다. 도심의 소란스러움과 찬바람을 피해서 온 사람들을,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숱한 인파를 잠자코 받아준다. 낮에는 초록의 싱그러움과 솔바람으로 품어주고 밤에는 시원한 개울물 소리로 멍든 영혼을 달래준다.
(248-250)부산항:
1876년 개항한 한국 최초 최대의 항만으로 우리나라 무역의 관문이다./최근 연결된 남북철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면 부산항은 신선 대부두,우암 부두, 신항과 함께 유라시아를 잇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화가 최봉준의 <부산항> 작품이 많다.
남인수 노래 <울며 헤진 부산항>도 있고 손인호 노래 <함경도 사나이>도 있다./그밖에 <고향의 그림자>, <항구의 사랑>, <아메리카 마도로스>,<잘있거라, 부산항>은 모두 부산항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다./그중 대표적인 것은 조용필을 국민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다.
(253-256)낙동강:
가락국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생명의 젖줄인 물을 찾아 정착한 사람들이 선사시대부터 살았다./시인 허만하의 <낙동강 하구에서>, 강은교 <낙동강-심연에 비추는 풍경 넷>, 임수생의<낙동강>이 대표적인 시들이다.
(260)최해군 소설 <부산포>
유구하고 자랑스러운 부산의 발자취가 담겨 있다.
(264)영화 <리베라 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의 라틴어/이 작품은 제37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청룡상,촬영상 등을 수상했다/불같은 성질의 부산사람을 잘 표현했다.
(부산 사람들은 자기 고향에 대한 애착이 유별난가, 다른 지방 사람들도 다 그러한가?
토박이들의 부산을 그린 시, 영화,소설들이 의외로 많은 데 놀랐다. 그리고 그것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최영철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붓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게 수필이라지만 이렇게 부산에 천착하여 역사가 될 만한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을 듯싶다.이 책이 '우수문학도서' 반열에 오른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서울토박이들은 어떤 작품들로 서울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스토리와 함께 감성을 느끼며 유유자적 읽는 자세가 필요하다.진정한 여유를 지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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