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산맥의 숨겨진 보석 '조지아' 산골 생활기--
글 박성호/그림 박윤수(저자의 누나)/넥서스북스/243쪽/초판1쇄2020.10/초판4쇄2023.1/읽은 때 2024.1.20~1.23
박성호(1992~ )서울 출생/수필가가 된 여행작가/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수석 졸업/80여 개국 여행
--이 책을 적당히 '여행을 멈춘 여행자의 허풍 담긴 수다'정도로 생각하고 편안히 읽어준다면 더 바랄 게없다
--저자 프롤로그
(문장 몇 줄만 읽어 보면, 이 사람과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이야기가 되겠는데~~라는 사람이 있다.
<책에 미친 바보>의 이덕무가 그렇고, 이 책의 저자가 그렇다. 난 조용히 입다문 채 그들이 쉬엄쉬엄 하는 이야기만 듣고 있어도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질 것 같은~~)
(17)내가 지금 기차에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작가는 스페인에서 카메라를 도둑맞았다. 수천 장의 사진이 들어있고 한 달은 족히 호텔에 머물 수 있을 만큼의 고액의 카메라를~그런 후 깨달았다. 이쯤에서 여행을 중단해야겠다고)
일단 코카서스 산맥에 가면, 설산의 근사한 풍경에 둘러싸인. 작은마을이 가득하다는 정보를 들었다. 당분간 그곳에서 세상과 연락을 끊고 온종일 책만 읽으며 살아볼 생각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꿈 꿔왔던 일이다. 살면서 한 번쯤은, 책 읽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20)스테판츠민다의 절벽 옆 주방없는 집:
(요리를 좋아해서 주방이 있으면 소기의 목적[책읽고 명상하는 일]을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므로 주방 없는 집을 택하고 밥은 마을식당에서 사다가 먹는다)
(31)조지아 음식이야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무엇이 나올지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 푸시킨조차, '조지아 음식 하나는 한 편의 시와 같다'고 극찬할 정도이니 말이다.
(50-51)조지아 치즈:
조지아는 치즈도 유명하고 값이 싸서 와인을 마실 때는 늘 치즈가 옆에 있다.---치즈를 살 때면 항상 심각해진다. 게다가 산골마을 가게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수제치즈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오직 감만으로 치즈를 골라야 한다.--
아무리 길게 고민해 봤자 우연히 집은 치즈의 맛이 머릿속에서 상상한 맛과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오히려 집에 돌아와 분위기까지 잡아놓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치즈를 크게 베어 물고 '으악' 하는 비명을 지른 적이 더 많았다.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참 혼자서도 재미지게 잘 논다' 싶으면서 그 옛날 월든 호숫가에서 2년여 혼자 잘 살다 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생각난다)
(63)도전적인 삶을 선택하고 싶다:
나는 내 인생에 변화가 있을 수 있도록, 때때로 도전적인 선택을 하면서 적당히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산골마을의 생활처럼 늘 편안하고 고요하길 바라기보다는, 험난한 역경과 주변의 염려하는 시선들을 견뎌내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당나귀씨처럼 평야의 풀과 절벽의 풀을 선택하는 순간이 온다면, 주저없이 낭떠러지로 발길을 향하고 싶은 마음이다.이는 용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두렵기때문이다. 나는 불안해지는 것보다 불행해지는 것이 더욱 두렵다.
(65)언젠가 나이가 들어 내 인생이 더는 바뀌지 않을 것이란 씁쓸한 확신이 들었을 때, 비참해진 내게 위로가 되어주는 것은 내 삶에서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때의 기억들일 것이다.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삶은 어설프게라도 굴러간다.그러나 나는, 그렇게 평범히 굴러가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야 내 시간이고, 그래야 내 인생인 것이므로.
(137)여행은,
하나의 사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다만 그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함께 떠나야 한다. 나와 관련된 모든 것에서, 그리고 나에게서 떠나야 한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유튜브로 작가의 강연을 보고, 탄자니아 여행도 보았다.짐작대로 체격이 훌륭하고 음성도 좋고 이야기가 막힘이 없으면서도 자신감이 내비치어, 스스로가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이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는다. 다만 아침에 양복을 쫘악 빼입고 결혼식에 가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저러구 회사를 가면 얼마나 좋아"하시던 작가의 어머니 음성이 귓가에 맴돈다.그 학력에 그 직업[여행작가], 기성세대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149)걱정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것은 이토록 기분좋은 일이다. 나는 꽤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그러니 만약 운 좋게 소원을 하나 빌 수 있다면, '침대에서만큼은 아무 고민없는 삶'을 바란다고 말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150-153)어느 비바람 치던 끔찍한 밤에 만난 요괴:
'두려움의 실체를 두 눈으로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상황은 더욱 힘들어질 뿐이야.미지의 두려움은 너의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지독한 악마를 불러낼 거라고'
슬며시 눈을 떴을 때 그만 요괴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만한 요괴는 바로 거미였다. 그것은 창문 근처에서 벽을 타고 서서히 내게로 다가왔다. 지나가는 발걸음이 아닌 의도적인 접근으로 보였다.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소름 돋는 오싹함을 느꼈다.
(공포추리소설을 능가한다. 작가의 글솜씨가 피부로 느껴진다. 소설의 구성단계로 말하면 절정부분이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홀로 외딴집에서~'를 꿈꾸었던 사람들의 꿈이 박살나는 순간이다.)
(155)참 힘든 시간이었다.분명 집에서 거미가 차지하는 공간은 내가 사용하는 공간에 비해 한참이나 작았지만, 존재감을 생각하면 내가 거미가 사는 집에 세 들어 사는 것 같았다.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애처롭게 지냈다.
(205)그 남자의 히든카드:
살면서 좋아했던 사람은 많지만, 같이 살아보고 싶다고 느낀 사람은 많지 않다. 치즈 버거와 바닐라 셰이크 사이로 청첩장을 건네던 그녀는, 그 적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210)안녕,안녕,안녕!:
나는 세 번 인사하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했던 그 세 번의 인사는 분명 과거에 만났던 그녀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였지만, 어쩐지 과거의 나 자신과 그때의 모든 기억에 보내는 인사로도 느껴졌다.나는 유리문을 열고, 바깥의 냉기를 온몸으로 맞았다.
그때였다. 마음 어디에선가, 과거의 나와 이어져 지금의 내 행동과 생각을 조종하고 있던 연결고리가, '탁'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발걸음이 가벼이 날아갈 듯했다.내게 이보다 완벽한 떠남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로소 몸만 아니라 마음도 함께 떠날 준비가 된 것같았다.
(이 이야기를 책의 앞 부분에 실었더라면 글이 한결 맥 빠졌으리라)
(215)종종 내 두 눈은 대상을 잘못 이해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도구가 된다. 이렇게 단순히 본 것만으로 안다고 착각한다면, 오히려 상상이 만들어낸 주관적이고 거짓된 지식만 가득찬 사람이 되기 쉬웠다. 나는 그렇게 지식은 없고 무의미한 경험만 쌓은 답답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경험의 축적과 지식의 축적은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216)신비로 가득한 미지의 세상이 문밖에 있다는 것에, 그곳을 걸을 온전한 두 발이 있다는 것에,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갈구하는 정신적 젊음이 있음에 감사하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세상이 넓고 내 삶도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여행은 '세상이 깊고 내 삶도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시간이다.
(217)나는 내가 항상 내 인생의 주체로 살아가길 바란다.
내가 설레고 즐거워하는 일에 열정을 쏟길 바란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 확신이 드는 기회라면 어떠한 노력도 적당히하고 싶지 않다.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조지아로 향한 첫 번째 작업인 이스탄불까지와 이스탄불에서 서울까지의 비행스케줄은 예약이 됐다.
그런데 들려오는. 팔레스타인 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수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다.
박성호의 이 글은 우물쭈물하지 말고 박차를 가하라고 부추긴다.
다음 주엔 해외 여행자 보험을 들고, 터키항공사에서 조지아 왕복 티켓을 끊고, 숙박 예약에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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