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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위독하다> 김겸섭

맑은 바람 2024. 8. 13. 17:37

김겸섭 지음/토기장이 출판/2017.4 초판 발행/278쪽/읽은 때 2024.8.10~8.13

삶을 지켜주는 두 마음,
初心
操心
이것들이다.
초심,
그것은 거짓으로부터 삶을 지켜주고
조심,
그것은 가짜로부터 삶을 지켜준다 --프롤로그에서

<PART1>
사랑은 그 사람의 곁이 되어주는 것
*인격은 할인되지 않는다
(26)먹을 것을 앞에 놓고 경쟁을 시켰을 때 아이들은 손을 잡고 함께 뛰었다. 그 이유는,
"나만 기쁘면 다른 친구들은 슬프잖아요. 우리는 서로 우분트를 잊지 않아요"--반투족 아이의 말
**우분트는,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당신이 있기에 우리 모두가 있다'는 뜻

*생선이 썪을 때는 머리부터 썪는다
(50)살청(殺靑)
대나무의 푸른빛을 죽이기 위해 자른 대나무에 불을 쬐는 행위를 말한다.
찻잎을 따서 솥에 넣고 불로 다리는 것도 살청이라 한다.

살청을 통해 차는 깊은 향을, 대나무는 견고한 목질을 유지하게 된다.

殺靑, 그것은 삶에 필요한 무두질이다.막 벗겨낸 소가죽의 그것처럼
인격 안에도 제거해야 할 푸른빛이 있을 터인데, 그것을 살청으로 무두질하지 않고 평생 가슴에 담은 채
끌어안고 산다면, 삶은 탄성 잃은 위태이기 때문이다.
살청은 삶의 질감을 기품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엄중한 자기 검열이다.

자신 안에 범람하고 있는 汚濁, 그것을 날카롭게 도려내는 외과처치이다.
그래서 살청은 참 아프다.
그러나 거절해서는 안 된다.
(67)다독거리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등을 두드려 주는 그 '다독거림'에 곧 잠드는 아이,
그대가 가장 돋보이는 순간,
그것은 '험담' 대신 '다독거림'을 선택할 때이다.
삶에서 기피해야 할 사람, 그는 多情으로 채워져야 할 식탁의 담소조차 험담으로 채우는 험담보균자이다.

*트롤의 거울은 거절되어야 한다.
(76)이둔의 사과
이는 북유럽에 나오는 신비의 사과이다. 시간의 유한이라는 굴레를 벗은 神들조차 일출 이후에 이둔이라는 신비한 여인이 매일 선사하는 이 사과를 먹지 않으면, 늙어 하늘의 神力을 잃어버린다는 과일이다.神조차 神으로 살기 위해 매일 먹어야 했던 이둔의 사과, 그렇다면 사람이 참사람으로 살기 위해 매일 섭취해야 하는 이 대지의 이둔의 사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피조물이 창조주앞에서 지녀야 할 敬畏, 곧 '거룩한 두려움'일 것이다.
(80-82)트롤의 거울:
안데르센作 <눈의 여왕>속의 이상한 거울이다.
트롤은 교사 이름이고 그는 모든 물건의 모습을 지금보다 더 흉하게보이게 하는 악한 힘을 가진 거울을 가지고 있으며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우울과 낙심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고 그것을 즐긴다.
그와 학생들은  마침내 하느님과 천사들을 비춰보기로 하고 높이 들고 춤을 추다가 거울을 떨어트려 깨트린다.
거울은 10억 개의 조각들로 산산조각이 나서 그 조각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다가 사람들의 심장과 눈에 들어갔다.
그 거울조각이 사람들의 심장에 들어가면 그들의 심장은 얼음조각처럼 차갑게 변했고, 그들의 눈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눈은 모든 것의 나쁘고 추한 것만을 보게 되었다.
현대인의 가장 문제되는 것은 '불안'과 '편견'이다.
(91)"편견은 그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그대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오만과 편견>에서

*그대, 손잡이는 있는가?
(104)유대 랍비 힐렐, 제자들에게 세 가지를 조심해야 삶의 균열이 없다고 했다.
발을 무겁게 하는 게으름을 조심하라.
입을 가볍게 하는 자기자랑을 조심하라.
눈을 흐리게 하는 편견을 조심하라.
(115-127) 절제
그것은 '삶의 손잡이'이다.
벼랑끝에 서있는 발을 꽉 붙잡아, 추락에 제동을 걸어줄 강력한 '손잡이'이다.
또한 쾌락에로의 수몰을 방지하는 견고한 제방이다.
이런 까닭에 쾌락은 절제를 껄끄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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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는 기다릴 줄 아는 힘이다.
절제는 조급을 멀리하는 기다리는 힘이다.
절제는 시간ㆍ사람ㆍ기회를 고요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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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그것은 인격이 '後熟'이 되는 시간이다.
그 후숙에 실패한 인격은 '不實'이 된다.
어릴 때는 '좋은 것'과 '싫은 것'만 보인다
젊어서는 '옳은 것'과 '잘못된 것'만 보인다.
그러나 나이들면 '진짜'와 '가짜'까지 보인다
삶에 그 '후숙'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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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는,
욕망을 향한 삶의 질주에 잠시 '쉼표'를 찍고,
달려왔던 지난 발걸음을 復棋하는 힘이다

**복기하다:바둑을 둔 경과를 검토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그 순서대로 벌여 놓다
그래서 '삶의 녹색 쉼표'인 절제,
그것은 전방만 아닌 좌우 측면도 바라볼 줄 아는 조망과 시야를 확보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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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오래 빛나는 일, 타인이 아닌 '자신을 설득하는 일'이다.
곧 과잉이라는 '검은 손'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끌려가던 병든 자신,
그런 자신을 멈추게 해주는 손잡이인 그 '절제'와 지금 사귀어 보면 어떨까?

*삶에도 立冬은 있다.
(130-)立冬
그것은 삶에도 있다
삶에 입동이 깃들면 사랑,너그러움,배려와 같은 하늘에 속한 이 땅의 신성한 가치를 냉동시킨다.
약자들의 유일한 위로인 희망까지 '결빙'시킨다
그렇다면, 삶의 입동, 그것은 언제 유입되는가?
서로가 서로에게 '他人'이 될 때다. 곧 사람이 사람에게 '남'이 될 때이다.

<PART2>
어떤 눈물은 때로 빛보다 눈부시다
*사랑이 위독하다
(170-171)사랑의 파열을 막기 위해 기억해야 할 준칙은 무엇인가?

해 주는 것
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잘 선별하여 행사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기쁘게 해 주는 것,
그대가 아끼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의 '산뜻한 조화'에 있다.
전자를 통해 사랑은 '시작'되고
후자를 통해 그 사랑은 '완결'되기 때문이다.
(178-180) "지극히 아름다운 사랑도 약간은 쓰다"--니체
지극히 아름다운 사랑도 약간은 써서 아프다는데, 잘 깨지고 자주 부서지는 '가벼운 사랑'이야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문제는, 이 시대의 사랑이 가짜 사랑, 곧 욕망에 의해 매우 심한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 內傷이 의외로 깊어 지금 사랑이 매우 '위독'하다.시급한 응급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그대, 이 처절함 앞에서 조사를 읊는 애도만 하겠는가?

깨진사랑, 그래서 위독해진 사랑은, 집을 짓는 '커다란 수고'로만 희생된다.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녹색순교'를 통해서만 한껏 재활된다.
그래도 만약,
"이런 힘든 사랑 꼭 해야 합니까?"
라고 그대가 묻는다면, 작가 김연수의 방식으로 대답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사랑은 사람의 일이다."

*세 개의 訃告
(187)귀도 레니의 1662년 작, <베아트리체의 초상>
13세기 로마에 실재했던 비극을 담아낸 작품
이 그림은 이 시대에게, 세 개의 生의 訃告를 알려준다.

傾聽의 부고,
思惟의 부고,
倫理의 부고,

--傾聽의 부고,
그녀에게 사형을 언도한 여섯 명의재판관들은 살아있는 악마를 죽여야 했던 베아트리체의 피맺힌 절규와 젖은 눈동자에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듣지 않아서 사람이 죽은 참사, 그것이 어찌 이때뿐이겠는가?

이 시대가 소통 부재의 '난청'으로 신음하는 것, 그것은 청력의 문제가 아닌 '귀를 막고' 있어서이다.
귀를 막으면 삶도 막히고 가슴은 恨으로 맺힌다

--思惟의 부고,
삶에서 쉽게 결정해도 될 만큼 '하찮은 것'은 없다.

세상이 기다리는 사람,
그는 생각의 힘과 정신의 깊이로 몸과 권력의 거친 완력을 제압하는사람, 곧 巨匠이다

--倫理의 부고
(205)윤리,
그것은 삶의 飾緖이다.
느슨한 우리 삶을 촘촘히 엮어 상시 제자리에 있게 하는 식서이다.
**飾緖:직물 양쪽 끝부분의 옷감이 풀리지 않도록 세로 방향으로 만드는 테두리

*狂人日記를 소각하며
(219)작가 고골의 소설 '광인일기'
어설픈 증오가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철저히 붕괴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 속의 남자 포프리신의 몰락과정을 일기형식으로 쓴 글

---포프리신의 몰락, 그것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모든 세상에 대한 증오에서 발원이 됐다.

"항상 적을 용서해라.
그것만큼 적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없다."---오스카 와일드

*싫증에 싫증내다
(235)싫증
싫증은 중병이다.
살았으나 죽음을 살게 하는 맹독, 그것이 싫증이다.

*오늘, 가장 위험한 단어를 알게 되다
(259)위험한 세 개의 望:
삶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은 '세 개의 望'이다.
욕망,
절망,
원망,
욕망은 삶에 만족을 죽인다.
절망은 삶에 설렘을 축출한다.
원망은 삶에 감격을 사라지게 한다.
(268--271)중독, 그 달콤한 질환
중독의 위험,
그것은 '통증 없이 죽게하는 맹독'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언가에 '중독'된 채 살아간다.
특히 증오,거짓,욕망,게으름에 중독되어 살아간다.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중독은 어떤것인가?
그것은 '이기심'이다.
(275)그대가 하늘로부터 받은 복의 總量, 그 가운데는 '이웃의 몫'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복이 '전부 내 것'이라 강변해서는 안 된다.
(277)중독,
그것을 치유할 항체는 없는가?
불행히 아직은 없다.
다만 '중독'에 중독되지 않는 것,
그것만이 현재, 처방 가능한 '유일한 항체'이다.

(나는 정원지기였다.
무수한 묘목을 길러냈다.
어느 날 한 그루 느티나무 아래 선 자신을 발견했다.
그 느티나무는 김겸섭 목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