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15 흐리고 더움
9시가 조금 넘어서 어제에 이어 두 번째로 매미들(?)이 다녀갔다.
어제보다 소리가 더 크게 들려 친구들과 함께 다녀간 게 아닌가 싶다.
우는 소리도 맴 맴 맴 매에-엠- 하는 것으로 보아 도시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매미
소리다. 그런데 이름이 뭐더라~
오늘은 배롱나무를 블로그에 올려 보려고 이리저리 각도를 맞춰 가며 사진을 찍는데
아니, 웬 호박벌이 윙윙 날며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게 아닌가?
백합과 수국과 배롱나무꽃을 넘나들며 일하는 중이었나 보다.
꽃벌들에 비해 덩치가 몇 배로 커서 겁이 난다.
'알았어, 그만 갈께.'
여름은 봄보다 꽃의 가지 수가 훨~ 적다. 한바탕 꽃잔치를 벌이고 봄이 떠나면
여름은 조용히 녹색의 깊이를 더해가는 일에 주력하나 보다.
제각기의 열매들을 키워가며-
그러기에 뙤약볕 아래 의연히 서 있는 여름 꽃들은 귀하고 장하다.
배롱나무(목백일홍)를 눈이 시리도록 본 건 여러 해 전이었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충남 당진의 왜목리 마을을 지나는데
버스 차창 밖으로 줄지어 늘어선 가로수 배롱나무-
그 꽃들 덕분에 동네 이미지도 밝고 화기애애한 인상을 주었다.
우리집 마당엔 이사올 때부터 꽤 연륜이 쌓인 배롱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초대받은 친구들이 서초동 꽃시장에서 샀다며 어린 배롱나무를 가져왔다.
내깐에는 사이좋게 지내라고 원래 있던 배롱나무 옆에 어린나무를 심었다.
여름이 다가기 전 나무는 시름시름하더니 죽고 말았다.
나무 하나 제대로 건사를 못해 죽이다니 자책하며 친구들에게 몹시 미안했다.
그런데 다음 해 계단 옆 화단에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작지만 단단한 나무가 한 그루 자라기 시작했다. 틈틈이 살펴보니 수피가 매끈한 게 '혹시 배롱나무 아니야?' 혼잣말을 해 가며 '제발
그렇기만 해 다오.' 하고 빌었다.
두 해를 지난 지금은 완전히 배롱나무 모습을 갖추고 맞은편 배롱나무보다 더 짙은 분홍색의
꽃을 피웠다.
'아아, 이들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구나.' 내가 심어준 그 자리가 크게 자라기엔
너무 비좁고 또 선배나무를 치고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아예 좀 넓은 쪽으로 자리를 옮겼나 보다.
친구들아, 아무때와도 상관없다. 난 이 사연을 자랑스레 얘기할 수 있으니까.
선배 배롱나무(목백일홍)
계단 옆에 자리잡은 후배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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