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인도

(1)<인디라간디공항-델리-굽트미나르-라지갓트>

맑은 바람 2010. 5. 13. 22:50

***밖을 보는 자는 꿈을 꾸고 안을 들여다보는 자는 깨어있다-칼융***

EBS의 <세계테마기행>에서 북인도를 보며, 8 년 전 흥분된 마음으로 그곳을 떠돌던 기억이 새롭다. 참 멋진 여행이었고 여행내내 행복했다.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준 몇 가지가 있다면 그 중의 하나가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2010. 5. 13

 

 <기간: 2002.1.6~1.18 (12박 13일)>

  2002. 1. 6(일)

- '다름'의 아름다움을 찾아-

시간과 약간의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여행가방을 싼다.

내가 머무는 곳과 다른 그 어떤 곳으로 떠나기 위해 서울을 떠나 8시간 15분만에 <인디라 간디

공항> 착륙.

매캐한 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국지전이 펼쳐지고 있다더니 포연인가?

델리의 밤안개엔 부탄가스 냄새가 난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짐을 찾고 중국식 음식점으로 이동,-아무래도 느림의 미학, 체념을 배워야 하는 나라.

에스코터가 음식을 재촉하러 갔더니

"너희 나라에선 빨리빨리지만 여기서는 천천히" 라고 하더란다.

초특급 <메리어트 호텔>문을 들어서니 8등신 미인이 이마에 붉은 점을 찍어주며 welcome한다.

 인도에서의 첫날 밤이 깊어간다.

 

2002. 1.7(월)

--<델리>의 아침--

짙은 안개 속에 점점이 가로등불만이 깜박이고

삼성TV의BBC World에선

1분 간격으로 파키스탄 이란 단어가 튀어나온다.

어둠이 물러가면서 드러나는 숲의 윤곽

검은 소들이 겅중겅중 뛰어다니고

개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아이들마냥 장난을 친다.

우리나라의 33배나 되는 영토를 말해주듯

아라베스크 모양의 성곽으로 단단히 둘러쳐진 드넓은 숲속에

대저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해는 안개 속에 주황빛 동그라미로

점점 그 모습을 또렷이 드러내고.

 

  --인도인 가이드 라지브씨?

' 이 항아리는 으로 만들었어요.'

'신발 밖에서 들어가세요.'

'이 성엔 이 많이 있어요. (검은 이끼)'

 

나이 33세, 힌두스탄

아들 하나, 아내하나

고향이 델리에서 1000Km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젊은이

힌두교 풍습에서는 부모가 살아 있어야

코밑 수염을 기를 수 있다고

검은 수염을 자랑스러워한다.

 

연세대학교 한국 어학당에서 6개월 연수 받은 사람이라고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인도인 가이드 라지브

단편적인 단어의 나열,

제멋대로 갖다 붙이는 조사

적절한 단어가 생각 안나 끙끙거리면서도

제 이야기에 절로 흥이 나서 껄껄거리고 웃는 라지브,

어처구니없어 웃는 우리들--

 

답답해서 어쩌지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우리 가이드는 어디까지 할 거냐니까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한다고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굽트미나르>(승전탑)를 보다

성 안으로 들어서니 다람쥐들이 수도 없이 발 아래로 돌아다닌다.

이슬람이 힌두교도를 물리친 기념으로 세웠다는 승전탑.

거대한 사암(sand stone) 기둥이다.

한 켠에 왕이 살던 당시의 우물이 바싹 마른 채, 이름 모를 풀들을 키워내고

항아리 모양의 돌탑을 이중으로 쌓아 만든 창고(대형 냉장고라고 라지브는 표현)가 있다.

또 다른 한 켠엔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기도소, 불교도들을 위한 기도소, 회교도들을 위한 기도소 들이 회랑으로 둘러쳐 있다.

드넓은 대지를 다스렸던 주인답게 종교 앞에 너그러웠던 술탄의 모습이 그려진다.

 

**인도문

사람, 차가 가장 붐비는 곳에 우리의 독립문, 파리의 개선문처럼 우뚝 서 있는 인도문.

90000의 희생자 가운데 육해공군 16000의 이름을 새겨 넣어 그 당시의 영국의 기만을  

후세에 길이 기억하라는 인도문- 그 위용처럼 당당한 인도인의 정신을 보다. 

 

**간디의 집 

간디가 말년에 살다 숨을 거둔 곳.

그가 살던 집엔 그의 생전의 일화들을 소재로 하여 작은 인형들에 담아 표현했고 그가 집에서 나와 기도하러 가던 길엔 그의 발 사이즈의 돌을 조각해 그의 족적을 남겼다.

기도실에 들어가는 통로 앞에선 누구나 신을 벗고 들어가게 만들어 그들의 간디에 대한 존경심을 보았다.

                   

                                  간디 동상 앞에서

 

                                  코브라를 목에 두르고~ 촉감이 서늘하다 

 

 

          

  **<라지갓트:간디 기념 미술관>

 간디를 화장했던 자리엔 국화와 붉은 장미 꽃이파리로 사방을 장식하고 그 가운데엔 다시 백장미 다발을 놓았고 그 머리 맡에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었다.

역시 미리부터 신을 벗고 들어가게 하고 잠시 관광객의 신을 보관해(?) 주었던 젊은이는 보관료를 요구해, 우리의 왕비 (43년생 익살꾼 왕언니)가 10루피를 주었다.

주위는 드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잔디밭에 앉아 그들의 영원한 정신적 기둥 마하트마 간디를 추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인도 학생들을 만나 얼마나 혼비백산했는지?

Where come from? 을 What is your country? 라고 묻는데 country 발음이 깐디 로 들려, 어리둥절하여 반문하니 저희는 저희끼리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답답해 하며 웃고 있는데 순식간에 여남은 아이들이 그 검고 빛나는 눈을 번뜩이며 포위하듯 둘러싼다.

갑자기 이 아이들이 달려들어 비디오와 지갑을 빼앗을 것 같아 그 다음부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단순히 호기심으로 다가왔을 그들에게 경계심을 품고 이내 다가가지 못했으니-

 

점심과 저녁은 국립호텔 <Ashok의 Jewel of East식당>에서 중국식으로 먹었다.

준비해 간 고추장, 고추가 제구실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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