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방/피정과 말씀

소학골 敎友村 (聖居山 성지순례)

맑은 바람 2010. 8. 30. 00:05

 

아침부터 줄기차게 퍼붓는 비는, 오늘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으려나 하는 염려를 낳게 한다.

그러나 <1지구 가족 성지순례>는 처음이고 이미 구역장님과 반장에게 약속을 한 상태여서 성당 앞으로

나갔다. 놀랍게도 몇 사람 빼놓고 모두 나와 버스는 40명의 신자들을 가득 태우고 <성거산 성지>를 향했다. 가는 도중 빗발은 더욱 굵어져 버스는 가끔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린다.

현지에 도착해서 미사를 드리는 도중에는 아예 하늘에 구멍을 낸 하느님이 ‘은총의 비’를 쏟아 부으신다. 참 신기한 것은 아무도 날씨 걱정을 하지 않는다. 폭우든 뙤약볕이든 순례의 길을 막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순례지 교우들이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 <줄무덤>에 잠시 머물렀다가

 <순교자의 길>을 따라 안개비를 헤치고 <소학골 교우촌> 입구에 닿았다.

 

     

                         성모광장의 제대

 

                            제 2 줄무덤

 

 

                          어느 애절한 사연이 시가 되었나

 

                          도자기에 씌어진 '순교자를 위한 기도'

 

                        무명순교자들의 넋도 이분들과 함께

 

                      순교자의 길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커다란 바위산이 쩍 갈라진 형상이어서 마치 알리바바가 어느새 다가와

“열려라, 참깨” 한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언덕 아래로 펼쳐진 마을은 물안개 속에 아늑한 고요함이 감돌고 있었다.

마을은 집 한 채 없고 그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을 법한 곳엔 <집터>라는 글씨가 씌어진 노란 팻말이

꽂혀 있었다.

화가이자 야생화 연구가인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님의 손길이 닿은 곳엔 목화밭이 펼쳐져 있고 인적 없는 마을 여기저기엔 신부님이 가꾼 갖가지 야생화들이 촉촉이 비에 젖은 채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이름 모를 저 풀꽃이야말로 이름 없이 스러진 무명 순교자들의 모습이라고.

200년도 더 전에(1801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소학골 교우촌>

150명 정도 되는 천주교 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호랑이 등 맹수들이 들끓었던 이곳 깊은 산중에 몸을

숨기고, 숯을 구워 安城場에 내다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그들은 어떻게 가슴에 품을 수 있었기에 나이 스물의

꽃 같은 젊음에서부터 청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하나뿐인 목숨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을까?

                        열려라, 참깨~

 

                        마을 안에서 본  소학골 입구

 

                    

                             저너머 차령산맥이 지나가고

 

                            산국이 빗속에 향기를 퍼트리고

 

                           미사때 제대 앞에 꽃아 놓았던 꽃

 

                             교우들의 집터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님

 

                         

                      마을 가장 안쪽의 선교사 집터

 

                               빨간 물봉선이 피어있는 개울

 

비구름이 잠시 걷히자 푸른 하늘이 스치듯 보인다. 적막 속에 개울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개울가 물봉선이 빨갛게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것이 오래 전 이곳을 떠났던 영들이 잠시 내려와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2010.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