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북유럽

(8)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맑은 바람 2011. 1. 6. 21:11

1996. 8. 9(금)

 

제 10일째.

이제 슬슬 식사시간이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빵, 버터, 계란, 커피, 소시지---니글니글.

커피가 전에 먹던 커피 맛이 아니어서 냄새도 역겹다.

9시 호텔 출발. 전용버스로 여기저기 돌다.

 

1500만 인구의 나라.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구밀도가 높아 붐비는 나라.

운하로 배를 타고 한 바퀴 돌면 암스테르담 관광이 다 되는 나라.

4-5월엔 전국이 꽃으로 뒤덮이는 나라.

우리나라와는 이런 저런 인연이 깊은 나라.

외국인으로 최초로 한국에 입국한 이가 네덜란드 인 <월터 브>란다.

후에 <박연>이란 이름을 짓고 눌러 살았다 한다.

우리나라에(조선) 14년이나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하멜>이 표류기에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단다.

또 헤이그에 온 이준 열사가 있지 않은가?

 

처음 간 곳이 <Water Land>의 나막신 공장.

이번 안내원은 현지인의 설명을 듣게 하며 통역을 해 준다. 한 차원 높은 관광 안내?

60여 가지의 나막신을 90년 된 기계와 수공으로 만드는데 아직 이곳 사람의 25%는 나막신을 즐겨 신는단다.

공장 옆의 매점에서 종, 촛대, 열쇠고리 3개를 약 12달러에 샀다

.

 나막신공장

 

다음은 <풍차 마을>로 갔다.

13C에 사용했다는 풍차가 지금은 아무 소용도 없으나 오직 관광용으로 버티고 있어 연 350만의

관광객이 이것을 보러 세계 각지에서 온단다.

아름다운 3대의 풍차를 뒤로하고 찰칵찰칵--

 

 

그 옆의 치즈 공장에서 역시 치즈 제조 과정을 현지 아가씨로부터 들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일 안 하고 우리 가이드와 데이트나 하고 싶다고 아가씨가 농을 한다.

 

☆날씨에 대해서☆

모스코 공항에서 잠시 비를 만난 외에 10여 일을 매일 가는 곳마다 기가 막히게 날씨가 좋아 가이드들

이 감탄 감탄을 한다.

이 팀에 축복 받은 이가 틀림없이 있는 모양이라고.

그러면 으레 그 공이 박 목사에게로 돌아간다. 목사님의 기도 덕분이라고.

 

식사 후 <반 고흐 미술관>으로.

고흐가 수집한 그림, 자신의 그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와 그림 등이 진열되어 있고 고갱이 그린,

고흐의 모습도 있었다. 교과서에서 대했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의 그림도 흐뭇한 마음으로 보았다.

거실에 걸 만한 크고 환한 복사화 두 점을 샀다.

 

네덜란드는 다이아몬드의 나라이기도 해서 다이아 가게로 갔다. 한국인 점원이 자세히 설명을 해 주고

값비싼 여러 물품도 보여 주었으나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차를 타고 안네의 집 부근의 <안네의 동상>이 있는 곳으로.

자그마한 동상 앞에서 너도나도 찰칵찰칵.

 

그녀는 어린 나이에 고통을 겪고 불행히 죽었지만 그녀의 일기, 그녀의 집, 동상은 네덜란드를 세계 각지에

알려 주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녀를 애국자로 만들어 주었다.

 

<담 광장>에 마약을 파는 흑인들이 우글거려 무서워 내리지 않았다.

한강의 1/3폭(?) 정도 되는 구정물 위를 유람선으로 돌며 '비뚤뻬뚤 지어진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건축 초기에 지어진 것들이라 건축술이 부족해서 그와 같이 되었으나 수시로 안전 진단을 받고 있어 거주에는

이상 없다나.

 

저녁을 마치니 밤 9시가 넘었다.

몇몇이 떼를 지어 암스테르담의 명소라는 <Sex shopping거리>를 한 시간여 돌아보았다.

처음엔 흑인들이 떼지어 다니고 게이바가 보이고 해서 잔뜩 쫄았으나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태연히 걸어 다니는 걸 보며 긴장이 풀어졌다.

Show window 안쪽엔, 문자 그대로 홍등 아래 수영복만 걸친 각양각색의 여인들이 가지각색의 포즈로

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떤 젊은이는 볼 일(?)을 보고 나오다가 우리들이 짓궂게 박수를 쳐 대자 줄행랑을 놓기도 했다.

 

*** 다시 서울하늘 아래로-1996. 8. 10(토)

밤 12시 30분 KAL에 올라 현실로 돌아오는 여정에 오르다.

기내 석식도 속이 울렁거려 먹지 못한 채 오후 5시 55분 공항 착. 집으로.

 

짧지 않은 여정 동안 한 건의 트러블도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배려해 가며

함께 즐거워하고 기쁨을 나눈 일행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참으로 값지고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 가슴에 남을 것이다.

오랫동안 집을 비웠어도 그간 집안에 온기를 채워준 두 아들에게도 깊은 사랑을 보낸다.

그리고 여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