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북유럽

솔베이지의 노래

맑은 바람 2022. 11. 13. 17:24

사람들은 곧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며 여행을 떠난다.
특히 결혼한 여자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부엌에서의 탈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여행 중에 마음껏 자유와 행복을 누린다. 물론 떠나기 전의 설렘과 기대감도 그에 못지 않지만.

 

--그 겨울이 지나 봄은 또 오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또 세월 가네, 세월 가네
아, 그러나 그대는 기다리는 내 님, 기다리는 님
내 정성을 다해 기다리노라, 기다리노라---
아--- 아아아아아아아--- 아--

고교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이 노래는 나에게 '기다림, 그리움'이란 단어의 의미를 절절하게 일깨워 준, 아름다운 노래다.

어느 해 여름, 난 기쁘게도 마음 속으로만 그리던 '솔베이지의 노래'가 탄생한 곳, 북유럽의 노르웨이를 여행하였다.
북유럽 3개국을 여행하면서
'아, 천국이 바로 이런 곳이겠지'
싶었던 곳은 핀란드의 <시베리우스 공원>과 함께 노르웨이의 '그리그 생가'와 그 주변의 모습들이었다.

노르웨이의 항구도시 베르겐에서 좀 떨어진 교외에 그리그 생가와 그의 무덤이 있다.

키가 160이 될까 말까한 단구의 그리그 동상이 그의 집 앞에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리그가 죽은 후, 그 아내 니나는 재산 관리 능력이 없어 집이 남의 손에 넘어 갔다.

이를 딱하게 생각한 어느 먼 일가가 후에 다시 집을 사들여 그리그 기념관으로 보존하게 되었단다.

그리그에게 영감을 주고, 그의 노래를 부르며, 사랑밖에 할 줄 몰랐던 니나의 여생이 얼마나 혹독했을까?

기념관을 둘러보고 그리그 부부가 함께 안장된 호숫가로 갔다.

깎아지른 절벽의 중간 부분을 뚫고 그곳에 시신을 안치했단다. 독특한 무덤이었다.

꽃 한 송이 꽂아놓기도 어렵게 이런 곳에 안치한 이유는, 그리그가 악상을 떠올리기 위해 자주 찾았다는, 잔잔하게 물결치는 아름다운 호수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고 그리그 자신이 그 호수가 잘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유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그 생가 옆엔 그리그의 이름을 딴 호텔이 있다.
호텔 문을 여는 순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착각에 빠졌다.
작고 아담한 방엔 역시 작고 예쁜 액자 속에 눈에 익은 명화가 걸려 있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상 고운 커텐, 거실과 침실 사이에 달린 회전문 등은 신기하기만 했다.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건축가와 실내 장식가의 높은 안목에 감탄했다.

기회가 닿거든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여행지다.

틀림없이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 싶어 행복감을 만끽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