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아트홀>
또 하나의 실버들을 위한 공간-서대문역 8번 출구로 나가니 극장 정문이다.
옛날 <화양극장>이 변신해서 실버극장이 탄생한 것이다.
2000원에 표를 끊고 들어가 200원짜리 커피를 한 잔 빼들고 2층으로 올라간다.
차를 마시며 둘러보니 한쪽 구석에 ‘무료검진’ 팻말을 올려놓고 젊은 사람이 앉아 있다.
시간이 좀 남은 것 같아, 다가가서 궁금증을 드러내니 앉아서 한쪽 발을 올려놓으란다.
왼쪽 발을 여기저기 주무르며 압통점을 찾는다. 그러면서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를 자주 눌러주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대체 의학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상영시간이 되어 감사의 말을 남기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6~70대 안팎의 삶들이 빼곡하다. 곱게 차려 입고 명품 핸드백까지 들고 들어오는 할머니도 보였다.
“어디서 무얼 하며 살다가 다 늙은 얼굴로 이렇게 모여드나?”
남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닥터 지바고>
<아라비아의 로렌스><콰이강의 다리><인도로 가는 길>의 데이비드 린 감독 작품
오마 샤리프/줄리 크리스티/제랄린 채플린/로드 스테이거/톰 카우트네이/알렉 기네스 출연
1965년 작,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의사 지바고> 원작, 197분.
참으로 옛날 사람들은 미련하게도(?) 긴 영화를 잘도 만들었다.
1901년~1953년 사이의 격동기가 배경.
젊은 날 이 영화를 대했을 때는 라라와 지바고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애틋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이 가슴 아팠는데-떳떳하지 못한 사랑도 아름답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더 많은 것들이 보여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무겁다.
이념의 대립, 개개인의 뚜렷한 개성과 인생철학, 대자연이 주는 감동-이상한 건,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모두가 운명의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가면서 순간의 희로애락에 웃고 울고 하는 존재일 뿐이지 않는가?
내게 原作의 거창한 주제는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울고 웃는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이 훨씬 흥미롭다.
라라를 사랑한 네 남자, 그리고 세 여인이 내 관심의 대상이다.
과부 아말리아(라라의 어머니)의 情夫이면서 그 딸 라라를 범하는 코마로프스키(정계의 유력자),
순수하고 고결한 이상주의자이며 라라와 결혼을 언약한 혁명가 파샤,
아말리아의 자살 미수로 왕진 온 그로메코 교수의 조수로 따라와, 코마로프스키와 부적절한 관계임을
짐작하면서도 라라에게 마음이 끌리는 닥터 지바고,
행방불명됐던 라라의 딸을 찾아내고 그 아이에게 네 엄마를 좋아했었다고 회상하는 큰아버지 예브그라프 지바고 장군-
네 남자가 라라를 대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변호사이며 정계유력자인 코마로프스키는 낚시꾼의 본능으로 그녀에게 대시(dash)한다.
눈이 번쩍 띌 만큼 아름다운 드레스를 사주고 귀족들의 파티에 데려가면서 여자의 허영심을 충족시켜 준다.
세상을 제 맘대로 주무르고 사는, 어찌 보면 유능한 인간이다.
그는 혁명정부의 법무상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가 라라와 지바고 같은 인물들을 하찮게 여기면서도 라라를 위기에서 구해 주려 한다.
아직도 라라를 사랑해서?
그 어머니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아니면 도덕적인 책임감 때문에?
코마로프스키의 진면목은 어떤 걸까?
자신을 훌륭하게 길러준 은인(안나와 그로메코 교수, 토냐의 부모)의 딸과 결혼한 지바고는 라라를 향한 연정을 숨기며 고민한다.
지바고는 아내와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마침내 라라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돌아오나 빨치산에게 납치되어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다.
후에 토냐 가족이 무사히 파리로 탈출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라라와의 유한한 행복을 누리는 지바고,
윤리적인 면에서 지바고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간이다.
고아가 된 자신을 양아들로 거두어 훌륭히 키워서 사위로 맞이한 양부모와 그 딸을 저버리고 라라를 택했으니- 지바고의 ‘사랑은 이기적’이다.
남편 파샤는 라라를 사랑하지만 개인의 감정이 정치적 이념에 앞설 수 없다며 집을 버리고 떠난다.
이상은 높고 순결했으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면모를 드러낸다.
시베리아 적군 사령관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학살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죽게 된다. 전형적인 러시아혁명의 희생양-
지바고의 이복형이며 멀찌감치서만 라라를 보아왔던 예브그라프 지바고 장군은 드러낼 수 없는 사랑을
간직한 채 산다. 어느 날 공장에서 일하는 소녀 하나를 부른다. 토냐 코마로프스키-그가 찾고 있는 라라의 딸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라라의 딸임을 확신하고 돌려보낸다. 엄마를 쏙 빼닮은 그녀의 손엔 발랄라이카(지바고가 라라에게 주었던 악기)가 들려 있었고 옆에는 청년이 하나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세 여인-
아름다운 아말리아는 과부의 몸으로 의류가게를 하며 딸 하나를 키우고 산다.
자신은 비록 코마로프스키의 情婦 노릇을 하고 살지만 라라마저 성의 노리개가 된 것을 알고 자살을 시도한다. 아말리아의 내면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았으리라. 딸에 대한 자책감도 있지만 情夫를 빼앗긴 데 대한 질투심이 그녀를 죽음의 덫에 걸리게 한 게 아닐까?
코마로프스키로부터 “너는 매춘부”라는 말을 들은 라라-
라라야말로 팜므 파탈(femme fatale)인가 보다.
그녀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상대방을 지긋이 쏘아보는 순간 그 눈총에 맞은 남자는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라라가 사랑한 남자는, 바람둥이에다 지독한 속물근성의 코마로프스키도 아니고 이상주의자는 더더욱 아니고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고 갈등하지만 자석처럼 끌리는 닥터 지바고-역사의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갈라놓았지만 그녀는 세상에 ‘사랑의 결실’ 하나를 남겼다.
지바고의 아내 토냐-우리나라 양반가(재벌가)의 마님이나 서양 귀족의 아내는 통이 커야 하나 보다. 남편이 한눈팔면 오장육부가 타들어가도 눈 한 번 질끈 감고 넘겨 버려야 하는- 지혜로운 아내 토냐는 결정적인 순간에 남편에게 자유를 주며 멀리 파리로 떠난다.(바람둥이들의 로망?) 토냐의 ‘사랑은 자유를 주는 것‘?
나는 이 영화에서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권력이나 금력을 좇으면서도 종교적 신념(?)이나 윤리적 규범 때문에 그들을 가벼이 여기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닥터 지바고>에서 권력의 후광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도처에서 드러난다.
지바고가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면?
아말리아가 권력과 금력의 후원(코마로프스키)이 없었다면 코마를 정부로 삼았을까?
라라가 코마로프스키에게 끌린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코마 말대로 ‘매춘부’의 기질 때문일까?
토냐가 프랑스로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라라가 총살형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도,
지식인이라 숙청 대상이었던 지바고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라라의 딸이 큰아버지(예브그라프 지바고 장군)의 비호 하에 있는 것도--
진흙에 불과한 인간들이 결국 추구하는 것,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 농민이 쟁취하고자 하는 것도 모두
자유와 평등 저 너머 그 어떤 강한 힘(금력, 권력)이 아닐까?
“세상은 순수하고 순결한 사람을 겉으로는 존경하지만 속으로는 멸시하지.“
코마로프스키의 말이 귓가에 자꾸 맴돈다.
(2012.1.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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