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이후 왕국이 둘로 갈라졌다.
<열왕기 하>는 유다의 임금 여호람과 이스라엘의 임금 요람에서부터 이스라엘과 유다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 멸망하는 이야기까지를 다룬다.
<자비심 없는? 엘리사>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가 일으킨 기적(?) 가운데 하나는, 자신을 ‘대머리’라고 놀리는 어린아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어, 곰의 발톱에 찢겨 나가게 한 일이다.
예언자의 저주는 그토록 무서운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사람’을 모독한 것은 곧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 아이들이라도 용서가 안 되는 것인가?
<엘리사의 기적들>
‘하느님의 사람’ 중 역대의 어느 누구보다 기적을 많이 행한 엘리사-죽은 아이를 살려낸 일, 독풀이 든 국을 해독시킨 일, 적은 기름을 많아지게 한 일, 죽은 물을 살린 일, 빵 스무 개로 100명을 먹인 일 등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행한 기적들과 닮아 흥미로웠다.
<수넴 여자, 나아만 장군 이야기>
소설이 이보다 재미있을까?
드라마틱하고 궁금증과 공포감을 함께 안겨주는 이야기들-
엘리사의 종 ‘게하지의 거짓말’의 대가는 ‘나병’이라는 천벌을 받게 된 것- 하늘 무서운 줄 게하지는 왜 몰랐을까?
<예후 임금>
이스라엘의 임금 예후의 카리스마 넘치는 통치는 간담을 서늘케 한다.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그가 죽인 ‘로열 훼밀리’는 역대 어느 임금에도 뒤지지 않으리라.
유다, 이스라엘의 두 임금, 왕비, 양가의 수많은 왕자들, 두 임금의 형제들, 바알신 숭배자인 사제와 그 신도들-
예후의 ‘의로운 사업’에 하느님은
“네가 내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으니 참 잘하였다.”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영리한 예후’도 죄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나 보다.
세상 그 누구도 하느님의 잣대로 보면 모두 罪人인 것을--
<여호야다 사제의 개혁>
어린 요아스를 임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막강한 권력의 여호야다-그때의 ‘주님의 집’의 모습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나 보다.
헌금의 종류, 헌금 받는 방법, 헌금통, 헌금의 쓰임새‘등이 지금과 유사하다.
<누가 임금의 자리를 부러워할까?>
열왕기 하권으로 오면서 제 명에 간 임금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임금 당사자뿐이랴?
어느 순간 반역자의 대열에 들면 왕족의 일가친척은 몰살이다.
잠시 동안의 부귀영화가 참혹한 최후와 맞바꿀 만큼 달콤할까?
<하느님은 꼭 갚아주신다?>
요시야가 그렇게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님께 충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전의 므나쎄의 惡行은 사해지지 않았나 보다.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내지 못한 요시야의 善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유다왕국의 말로>
마지막 왕 치드키야는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두 눈을 잃고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열왕기 하>에서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남유다는 바빌론에 의해 파란만장한 역사의 막을 내린다.
‘주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한 자들의 최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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