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빗’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아시리아에 유배되어 니네베에 살면서 살만에세르 임금 때 재정 담당관을 지냈다.
그러나 남의 땅에서도 하느님을 외면하지 않고 충직하게 살아 그 집안이 모두 크게 축복을 받아 잘살았다는 이야기다.
참새똥이 들어가 눈이 먼 토빗이 그 아내에게 들은 ‘참담한 모욕’은 토빗의 ‘삶의 의지’를 꺾는다. 그는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하며 어서 흙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욥’의 시련을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비탄에 빠져 기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왜 하느님은 ‘흠없는 토빗’의 눈을 멀게 했을까?
하느님은 토빗을 시험하신 것이다.
그에게 더할 수 없는 축복을 내리시려고.
외아들 토비야가 예쁘고 용기 있는 아내와 큰 재산을 얻고, 토빗 자신은 백 살이 넘도록 살았으니 지금의 우리들도 부러워하는 축복 아닌가?
<토빗의 유언> 4장 1-21
토빗의 유언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구구절절이 와 닿는 ‘진리의 말씀’이고 구원의 말씀이다.
새기고 새길 만한 名句들이다.
토빗 유언의 키워드는 ‘慈善’이다.
<사라와 토비야의 혼인>
불운을 견디지 못해 목을 매려다가 부모를 생각해 마음을 바꾼 사라-그녀의 그토록 끔찍한 절망 뒤에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날 줄을 어찌 상상인들 했을까?
우리 인생도 이와 같아, 고난을 꿋꿋이 견뎌낸 자만이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라구엘의 혼인 허락> 7장 12-13
-라구엘은 자기 딸 사라를 불렀다. 사라가 오자 라구엘은 그 손을 잡고 토비야에게 넘겨주며 말하였다.
“율법에 따라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오늘 날 혼인식의 전통이 그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것인가?
<시집보내는 부모의 마음>
10장 12절:
-내가 오래 살아서 죽기 전에 너와 내 딸 사라의 자녀들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네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사라를 슬프게 하지 마라.
-얘야, 평안히 가거라. 이제부터 나(사라의 어머니 아드나)는 네 어머니고 사라는 누이다.
사라의 부모가 사위 토비야에게 하는 말은, 딸을 가진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한다.
구약의 어느부분보다 <토빗기>는 감동적이다.
찔러 죽이는 이야기도,
외기 힘든 숱한 人名도,
별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숫자’도 없고,
‘토빗’을 중심으로 그가 겪는 시련과 인연과 축복 이야기다.
읽는 동안 저절로 감사가 우러나오고 행복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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