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감사일기

선한 이웃

맑은 바람 2022. 9. 2. 14:23

2022년 9월 2일 금 청명한 날

이웃집의 기와와 굴뚝

이곳 혜화동에 자리잡은 지 벌써 이십 년이 되었다.
이사 후, 담을 같이 쓰는 이웃집에 먼저 인사를 드리려 시루떡을 쟁반에 담아 들고 남편이랑 같이 대문을 두드렸다.

도우미 아주머니로 보이는 이가 문을 열더니, 무슨 일이냐며 용건을 묻고는 마님께 여쭤보겠다고 기다리란다.

잠시 후 우리는 안채 거실로 안내받았다.
주인마님은 반가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한옥이 무척 아름답다고 말하니까, 6  25 직후에 지어진 집으로, 이제는 '문화재보존가옥'이 됐다고 하신다.
후덕한 인상의 마님과 첫인사를 나눈 후 20년째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

설과 추석 때면 집사분이 선물보따리를 들고 와서 벨을 누른다.

매번 받기만해서 어떡하냐며 거절을 하기도 했으나 성공한 적은 없다. 답례로 집에서 따서 만든 매실청을 드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별로 반기지 않는다. 옛날에 동네 큰부자가 명절 때 이웃에 선심을 쓰는 그런 차원으로 해석됐다.

이제는 당연한듯이 꾸벅 인사하며 넙죽 받는다.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선물을 주셨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그 댁의 은행나무 키가 너무 커서 우리집 나무들이 햇빛을 잘 받지 못한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렸더니, 그 다음날로 은행나무를 아예 베어 버렸다. 고마운 한편 그 은행나무한테 너무 미안했다.
 

봄이 되면 앞뒷집이 다투어 꽃을 피워내어 동네가 환했다. 매화, 목련, 라일락, 앵두꽃이 피고지고~
언젠가는 누가 벨을 눌러 나가 보니 집사님이 노란 장미꽃 한아름을 들고 서계셨다.

노란장미가 흔하지 않아서 보시라고 가져왔단다.

 

그 기와집에선 가을밤에 음악회도 가끔 연다.

담너머로 들려오는 청아한 목소리와 간드러지는 바이올린 선율이 귀를 즐겁게 한다.
좋은이웃을 만나는 건 큰 복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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