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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책에 미친 바보>

맑은 바람 2024. 1. 28. 14:37

이덕무 지음/권정원 옮김/김영진 그림
미다스북스/382쪽/2004.2 초판1쇄/2011.7 개정판1쇄/읽은 때2024.1.5~1.28

이덕무:1741~1793)
자는 懋官, 호는 靑莊館, 雅亭, 炯菴이다. 조선후기(영ㆍ정조 때)실학자의 한 사람/부친이 왕족의 서자 출신이라 출세에 한계가 있었다/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홍대용 등과 교유/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많은 서적을 교감했으며 사옹원 주부를 거쳐 적성현감을 지냈다./북학파 실학자 중 가장 많은 저술을 남김/평생 읽은 책이 2만 권이 넘음/연암 박지원과 30년지기/독감으로 죽음
**'靑莊'의 뜻:온종일 물가에 우두커니 서서 먹이는 구하지 않고 앞에 지나가는 고기만 쪼아먹는 새/신천옹/청렴한 새를 상징

<내가 본 이덕무>-연암 박지원
"곧고 깨끗한 행실, 분명하고 투철한 지식, 익숙하고 해박한 견문, 그리고 온순하고 단아하고 소탈하고 시원스러운 용모와 말씨를 지녔다/그는 책을 베끼는 습관이 있어서 늘 책을 볼 때면 그 책을 다 읽은 다음에 꼭 베끼곤 했다./博學多識하여 어떤 질문에도 능히 답을 했다/그러나 그렇게 남이 모르는 것을 설명해 주는 때가 아니면 배운 것을 축적해 두기만 하고 텅 빈 사람처럼 지내며 남에게 뽐내지 않았다./여러 사람과 어울려 하루 종일 같이 있을 때에도 존귀한 듯 보이나 잘난 체하지 않으며 서로 의좋게 지내되 함부로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도 감히 버릇없는 말을 걸어오지 못했다.
중국의 문인들도,"이덕무의 시는 평범한 문체를 벗어나서 특별한 경지를 열었으니 송ㆍ명 사이에서 한자리 차지할 만하다" 고 평가했다.

목차
1.자화상
(24)때로는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책에 미친 바보'라고 불렀지만 그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1761, 영처문고2)
(26-27)이름에 담긴 뜻
*三湖居士:삼호에 살고 있는 사람
*敬齋:엄숙하면서도 공경에 뜻을 둠
*八分堂:사마광(九分)에 가깝고자 지은 것/이덕무는 9분은 너무 이상적이고 7분은 선비가 목표로 삼기에 너무 미약하므로 자신은 그 중간인 8분을 목표로(賢人의 경지) 삼았다.
*蟬橘軒:매미껍질과 귤껍질처럼 좁은 곳에서도 즐거움을 찾는다
*亭巖:처지에 맞게 수양한다
*乙엄:은둔함을 편안히 여긴다.
*炯菴:마음을 물처럼 잔잔하고 거울처럼 맑게 한다
*영處:처녀가 순수함을 지키듯 천성을 지킨다.
*감감子/汎齋居士:빈 배를 띄워 홀로 어디를 가더라도 유유자적한다.
(38)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여색을 좋아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요즘 나는 유행하는 풍열 때문에 오른쪽 눈이 가렵고 아프다. 사람들이 자꾸 책병이라고 놀리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런 점이 어느 정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 맥망이 신선이라는 글자만을 갉아먹듯이 매번 실눈을 뜨고 글자와 먹 사이의 정수에 집중하여 책을 읽고 있으니 저 호색 때문에 죽는사람들도 당연히 나를 비웃을 것이다.
(41)늘 기운을 내서 사람들 속에 섞이려 애써 보지만, 나이 서른이 가깝도록 끝내 이런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 한스럽고 한스럽다.
(43)나 이덕무는
가난해서 반 꿰미의 돈도 저축하지 못하는 주제에 이 세상의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려하고, 어리석고 둔해서 한 권의 책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주제에 오랜 세월이 담긴 경전과 역사책과 이야기책을 다 보려고 하는구나. 이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바보다.  아, 이덕무야!  아아, 이덕무야!(내가 이덕무를 좋아하는 이유)

2.내가 책을 읽는 이유
(51)최근 일과로 책을 읽으면서 네 가지 유익한 점을 깨달았다.
첫째, 조금 배가 고플 때 책을 읽으면 소리가 두 배로 낭랑해져서 책 속에 담긴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니 배고픔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둘째, 조금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소리를 떠나 몸 안으로 흘러들어와 편안해져 추위도 잊을 수 있게 된다.
셋째,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와 함께 하나가 되고 마음은 이치와 더불어 모이게 되니,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다.(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좋아하는 책을 펼치면 글이 사람을 위로해 준다)
넷째, 기침이 심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막히는 것이 없게 되니 기침소리가 순식간에 그쳐 버린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70)이덕무는 박학하기로 유명한 학자다. 그의 넓은 학식은 이러한 고증학적 학문 자세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이덕무의 학문 경향은 그의 뒤를 이은 정약용, 김정희, 그리고 그의 손자이기도 한 이규경 등의 실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 18세기 이후 조선사회에 고증학풍을 수립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74-77)까치집을 위한 상량문 (1759년 지음):
하늘과 땅 사이에 별다른 경계가 없어 강 언덕 위의 기둥 하나 (수유나무)가 허공을 의지하고 서 있네.

이곳은 바로 신선이 사는 좋은 누각이니 중국의 구주까지도 구름 아래 아홉 개의 점인 듯하네.

높이 있는 집에서 재잘거리며 진흙을 물어다 집을 짓는 제비를 비웃고,

텅 빈 성에서 지저귀며 낟알이나 쪼아 먹는 참새를 천박하다 여기네.

때를 알아 기쁜 소식 알려주니 사람들이 어여삐 여기고,

그해의 운세를 알아 나쁜 기운이 있는 방향을 등지고 집을 지으니

이는 천성이 본래부터 참으로 슬기롭기 때문이네.
나같은 사람은 작은 것을 꾸미는 잔재주 정도만 가지고 있지만

품은 뜻은 구만리를 나는 붕새와 같이 크다.

이미 아름다운 이웃이 되었으니,

바람 부는 밤에는 고상한 운치를 사모하고

조만간 *桂殿[궁궐]에 오른다는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겠네.

3.문장과 학풍에 대하여
(83-89)문장의 바탕은 嬰處心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장난치며 놀고 부끄러워 감추는 데는 나만한 이가 없다. 그러므로 문집의 원고를 '嬰處'라 한 것이다"
(91-94)좋은 문장은 효도에서 비롯된다:
이덕무는 문인이 문학 행위보다 유학의 덕목을 실행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보았다.이렇듯 이덕무의 문학관은 '道文一致' 라는 유학의 전통적 문학관에 입각하여 작품과 인격이 일치될 것을 강조하였다.
(95-96)<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장 하나를 가슴 속에 담고 있다>
자신만의 문장을 갖는 자들은 비록 손숙오를 거의 완벽하게 모방하는 우맹과 같은 재주는 없다 하더라도 오히려 자연스러움은 많고 인위적인 것은 적을 것이다. 허나 그대(어떤이)처럼 모방만 한다면 인위적인 것은 많고 자연스러움은 적을 것이다.
문장이란 하나의 조화인데 조화가 어떻게 얽어매어 모방할 수 있겠는가?
무릇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장 하나가 가슴 속에 담겨 있는데 이는 마치 그 얼굴이 서로 닮지 않은 것과 같다.
(99)대개 이반룡과 같은 무리의 웅건함은 원굉도의 무리가 따르지 못하니 각각은 서로 어긋나 있어 모두 나름의 병폐가 있다. 허나 그들은 세상에 없는 기이한 재주를 지닌 걸출한 인물들이다. 우리 신라나 고려에는 끝까지 이런 사람이 없었으니, 아 슬프도다!
(100)이덕무의 문학관:
擬古와 創新-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문학보다는 양쪽을 종합하여 지나친 것은 배제하고 변증법적으로 절충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이러한 논지는 박지원의 '法古創新'과 동일한 논리이다. 그런데 박지원이 법고창신의 문학관을 개진한 것은 1768년이고,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이덕무의 절충론은 1765년의 기록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덕무의 문학관은 박지원을 만나기 전부터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01-108)중국의 문인과 문장:
1.육경여-쌍관체에 귀신 같은 사람
2.한퇴지-*碑誌文에 능함 *비지문:죽은 사람의 공덕을 기록한 글
3.소식-비지문이 너무 없다는 게 흠
4.백낙천-문장이 비속하기는 하나, 그의 제고(천자의 명을 받아 적은 기록)와 판문(소송사건을 판결한 문장)은 후세 사람들이 미칠 수 없는 경지에 있다.
5.원진- '有鳥有酒'와 같은 작품에는 시인의 운치가 넘친다.
6.소순-문장이 힘이 있고 재주가 있다.
7.소철-멋스러움이 부족하다.
소순 소철 소식 세 부자의 策論 (과거시험의 문체 중 하나로 時務에 관해 서술하는 글)은 조조와 동중서 이후에 보기 드문 뛰어난 작품들이다.
8.육유-<入蜀記>는 맑고 새로우면서도 기발하다. <煙艇> <東籬> <居室> <書巢> 등의 記文(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나 관찰 내용을 서술하는 글)은 한가하고 고요한 멋이 있으면서도 즐겁고 편안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할 만하다.
9.이헌길의 <左宜人墓誌>는 기이하고도 치밀하여 좋아할 만하다.
이헌길의 시는 두보의 것을 모방하려고 무진장 애를 쓴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10.황성증-<空同集序>는 쌍관체로 된 글인데, 문장의 구절을 만들고 배열하는 방법이 신령하고 특이하다. 明代 사람 중에서 참다운 재주를 가진 자라 할 것이다.
11.이우린-문장이 매우 어렵고 기이하다. 문장의 묘미는 없으나 그의 시에는 힘이 있고 멋스럽기도 하니 여러 모로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12.하대복-明代의 사람으로 새로이 시의 門戶를 세우고자 했는데 계속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끝내 당나라 사람 지배 하에 놓여 있었다.
13.왕원미-이우린을 곡한 120구의 韻詩는 뛰어나고 기이하며 영묘한 기운이 가득하다. 따라서 이 운시는 뛰어난 작품이며 명나라의 대표 문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유는 당나라의 동중서고, 구양수는 송나라의 한유며, 이몽양은 명나라의 구양수다.이는 단지 문장만으로 비교한 것이 아니다. 기개와 지조가 서로 비슷하기에 묶어보았다.이몽양은 주자의 학문을 기꺼워하지는 않았지만 유학자라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나라 문장가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용납했고, 송나라 문장가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배척했다. 명나라 문장가들은 자기와 다른 것을 업신여기거나 꾸짖고 원수처럼 여기기도 했다. 왕세정의 무리는 업신여긴 자들이고, 원굉도의 무리는 꾸짖은 자들이며, 전겸익의 무리는 원수처럼 여긴 자들이니 이것으로 세도의 높고 낮음을 알 수 있다.
(110-111)<조선의 문인과 문장에 대하여>
1.농암 김창협-詩와 文을 아울러 겸함
2.읍취헌 박은-시가 으뜸
3.유하 최혜길-섬세함과 화려함으로 명가를 이룸
4.손곡 이달-唐風을 모방하는데 고질적인 이
5.난설헌-옛사람의 말을 사용한 것이 많이 유감이다.
6.귀봉 송익필-유가적인 풍미를 띠면서도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사람
7.택당 이식-정밀하면서도 식견이 있고, 바르고 아담하여 흔히 볼 수 있는 시가 아니다.
8.솔암 조윤-조리가 있고 언어 사용이 자질구레하지 않아 쉽게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시라 할 만하다.
9.백곡 김득신-평생에 읽은 책이 많았는데 고금을 통해 이런 사람은 보기 드물 것이다. <伯夷傳>을 읽은 것만도 1억1만 3천번이나 되니 다른 것 또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문집 중에 文은 단지 몇 편에 불과한 데다 볼만한 것도 없으니 재주는 무척 둔한 사람이었다.

재주와 기운이 뛰어나고 영리해서 시대흐름의 변화를 모색한 이는 4백년 동안에 드물고 또 드물었다.
신라 천 년과 고려 오백 년 동안에도 아무도 없었다가 관복재 김구가 비로소 나타났다. 그러나 불행히도 천리마가 도중에 거꾸러지고 편남(향목의 일종)이 반으로 부러진 격으로 저술이 많지 못했으니, 식견 있는 사람들은 이 점을 안타깝게 여긴다.

10.월사 이정구-관각체에서 신이로운 변화를 얻은 사람이다.그의 비지문은 더러 옛사람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고, 주문과 정문은 설사 옛사람이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주춤하며 물러설 정도다. 그러므로 4백년 동안에 관각의 으뜸이라 할 만하다. *관각체:관각(홍문각 예문각 규장각)에서 종사하던 사람들의 문장을 관각체라 하며 관각문학은 귀족문학으로, 당송의 고문을 존중하는 전통문학이며 순정문학이라고도 한다.
11.단보 허균-<惺所부부藁>에 실린 간독들은 아름답고도 기이해서 즐겨 읽을 만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좋은 글이다. 그는 명나라 글을 배웠지만 <世說新語>와 같은 글을 썼다. 이 책의 맑고도 미묘함은 따르기 어려울 정도다.
12.미수 허목-<地乘文>은 매우 아름다워 차장주의 書에서 느껴지는 힘이 있다. *<東海碑>도 뛰어나고 기이하며 괴상해서 분명 특이한 작품이라 할 만하고 그의 *疏章도 속세의 비루한 문투를 벗어나 매우 고아하고 점잖으니 볼 만하다.
*동해비:허목이 전서체로 쓴 글씨 *소장:임금에게 올린 글
13.정두경:氣를 주장,우리나라 시 중에 최고라 할 만하다.
그의 시집이 단 11권만 남아 있는 게 아쉬울 따름. < 諷詩>는 허목에게 크게 인정 받아 허목은 이런 글을 남겼다.
"관중은 <地員>을 지었고, 왕후는<抵희>를 지었으며, 굴원은 <離騷>를 지었고. 순경은 <非相>을 지었다. 그런데 지금 군평 정두경은 <풍시>를 지었구나"--허목

4.벗, 그리고 벗들과의 대화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나를 알아주는 벗>
*尺牘의 형식을 취한다. *척독은 짧으면서도 서정적인 편지글을 뜻함
(119)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10년 동안 뽕나무를 심고 1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오색실을 물들일 것이다.10일에 한 가지 빛깔을 물들인다면 50일이면 다섯 가지 빛깔을 물들일 수 있으리라.
이것을 따뜻한 봄볕에 내놓고 말려서 여린 아내에게 부탁해 백 번 달군 금침 바늘로 내 벗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그런 다음, 고운 비단으로 장식하고 예스러운 옥으로 막대를 만들리라. 이것을 가지고 뾰족뾰족하고 험준한 높은 산과 세차게 흐르는 물이 있는 곳, 그 사이에 펼쳐놓고 말없이 서로 바라보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 때면 품에 안고 돌아오리라.
(120-121)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지극한 즐거움이 드문 것인가.이러한 즐거움은 일생에 단지 몇 번 찾아올 뿐이다.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책이 없다면 구름과 노을이 내 벗이요, 구름과 노을이 없다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에 내 마음을 맡기면 된다.갈매기마저 없다면 남쪽마을의 회화나무를 바라보며 친해지면 될 것이고, 원추리 잎사귀 사이에 앉아 있는 귀뚜라미도 구경하며 좋아할 만하다. 내가 아끼더라도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이 모두가 내 좋은 벗이 될 수 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존경하고, 나와 같은 사람은 서로 아껴주고 격려해주며, 나만 못한 사람은 불쌍히 여겨 가르쳐준다면 이 세상은 자연히 태평해지리라.

1.이광석(호는 심계, 이덕무의 조카)에게
(122)만약 내가 자네와 한솥밥을 먹으며 같이 산다면, 보는 것은 순해지고 듣는 것은 민첩해질 것이네. 그래서 자네가 말하면 내가 듣고, 내가 삼가면 자네가 따르고, 해가 지면 등불 켜서 공부하고, 아프거나 가려운 곳이 있으면 서로 돕기를 한몸처럼 할 수 있을 것이네.
책을 탐구할 때도 마치 부엉이가 이나 벼룩을 잡아내듯 할 테니 칠팔십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느껴지겠지. 그런데 어째서 우리가 만나는 순간은 번갯불이 빠르고, 그리워하는 생각은 바다처럼 끝이 없는지.
(130)무릇 문장이란
예술이기는 하지만 변화의 신기함은 끝이 없다네. 굳세면서도 막히지 않고, 통달한 듯하면서도 넘치지 않으며 간략하면서도 뼈가 드러나지 않고, 상세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2.윤가기에게
(139-143)<파라관청언>을 읽으면 기뻐지고, <이소경>을 읽으면 슬퍼지는 것이 어찌도 그리 다른가. 내가 <파라관청언>만 즐기고 <이소경>을 슬프게 생각해서가 아니라네. 글이 신기하면 정신이 살게 되고, 정신이 살아 있으면 性靈이 모이게 되니,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파라관청언:도륭의 저술.명나라 말기 때 유행하던 淸言小品의 대표적인 작품

그대가 남에게 책을 빌리기라도 하면 나에게까지 보여주길 바라네. 아,홀로 자신의 식견만 넓히고 벗과 함께하지 않는 일을 그대는 차마 못할 것이네. 책을 빌려 주는 것이 바로 천하의 큰 보시라네.
(늘 책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저자가 후에 정조가 문을 연 규장각의 관리가 되어 마음껏 책을 볼 수 있게 되었다니 그 얘기만 들어도 기쁘다.)

예전 우리는 연못 속 물고기비늘이 서로 모여있는 것처럼 함께였는데, 지금은 구름 속을 나는 새로 날개를 따로따로 펼치는 것과 같이 되었군.

3.성대중에게
(성대중과 이덕무는 모두 서얼이면서도 정조의 은혜를 크게 입은 인물들이다.)
약 캐는 호미 한 자루를 사서 보냅니다.벼슬하는 것 또한 농사짓는 것과 같으니, 농사 지을 때처럼 계획을 잃지 않고 수시로 잘 가꿔줘야 합니다. 벼슬살이하는 사람은 장차 무엇을 호미 삼아 계획을 세우고 가꿔 나가야 하겠습니까? 노형께서는 당연히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4.유득공에게
(규장각 검서관으로 있으면서 번역일의 고달픔을 같은 처지의 유득공에게 하소연함)
평생 파리 대가리만큼 잔 글자를 읽고 모기 다리만큼 가는 글씨를 써왔지만 지금 이 책은 글씨가 파리떼 속에 대가리가 겹쳐 있고 새끼모기의 다리 모양과 같아서 보기가 힘드네. 평생 눈만큼은 밝고 좋았는데 지금은 많이 나빠져 마치 비온 뒤 맑게 개지 못해 무지개가 생기고, 봄이 아닌데 꽂가루가 흩날리는 것과 같으니 가엾지 않은가.

5.백동수에게(처남이자 친구)(152)나는 날마다 포악하고 사나운 속인들을 상대하며 하는 일이라곤 빚이나 독촉하고 소송문제를 판결하는 것뿐이라네.
더러 잠깐씩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대숲에 부는 바람소리를 듣거나 배꽃에 흐르는 비를 맞거나,그림자를 돌아보며 스스로 즐기기도 하지만,그 누가 이런 내 마음을 알겠는가?

6.이서구에게(이덕무는 이서구에게 스승같은 존재)
(155-159)내 집에서 가장 좋은 물건은 단지 <맹자>일곱 편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끝내 돈 2백전에 팔아버렸다오. 그 돈으로 밥을 잔뜩 해먹고 희희낙락하며 유득공에게 달려가 크게 자랑을 했다오. 그런데 유득공도 굶주린 지 이미 오래 되었던 터라, 내 말을 듣고는 즉시 <좌씨전>을 팔아서 남은 돈으로 내게 술을 사 주었다오.
---책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은 모두가 요행을 바라는 술책이니, 당장 책을 팔아서 한 번만이라도 실컷 취하고 맘껏 먹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 가식으로 꾸미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오. 아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나는 예전부터 우리나라에 좋은 책이 세 가지 있다고 생각했소.바로 <聖學輯要>와 <磻溪隨錄> 그리고 <동의보감>이오. 하나는 도학을 말한 책이고 하나는 경제를 살핀 책이며, 하나는 사람을 살리는 방도를 기록한 책이니 이 모두는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일이라 할 수 있소.
지금 그대는 침착하고 슬기로우며 타고난 재주를 갖춘 데다가 나이 또한 한창이니, 문장을 짓는 데만 노력하지 말고 항상 이와 같은 진실한 마음으로 사물을 사랑하는 일에 모든 마음을 기울인다면, 이 세상을 헛되이 살았다는 탄식은 아마도 하지 않게 될 것이오.

7.박제가에게
(162)그대는 병의 원인을 아는가? 김인서는 나쁜 사람이고 <西廂記>는 나쁜 책이라네. 그대는 병으로 누워 있으면서도 몸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깨끗하고 여유롭게 가져서 걱정과 병을 없앨 생각은 하지 않고 눈으로 살피고 붓으로 쓰고 마음을 쓰는 것이 김인서가 아닌 게 없네그려.(이덕무는 소설 배척론자)
*김인서:중국 명말청초의 문학가 김성탄/희곡과 소설을 수준높은 문학으로 재평가한 사람

5.군자와 선비의 도리
(177-179)나를 경계하며:
*남에게 사소한 허물이 있다면 반드시 가려주고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아야 할뿐더러 자신의 마음도 경계해야 한다.(2024.1.23 오늘 내게 일어난 일에 딱 맞는 말이다. 이 자식의 허물을 저 자식에게 옮기지 말고 내 자신을 근신해야 한다고 해석된다)
*나를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후하게 대하지 말고, 나를 헐뜯는 사람이라고 해서 야박하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
*충고를 들을 때에는 풍류소리 듣듯이 하고, 허물을 고칠 때에는 도둑을 다스리듯이 해야 한다.
*간결함으로 번거로움을 누르고 고요함으로 흔들림을 막을 수 있다. 이 말을 평생동안 마음에 새겨 잊지 말아야 한다.이것이 바로 '마음을 바로잡는 공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말이 간결하고 마음이 안정된 사람이다.
(182-185)이선보가 돌아가신 그의 형 이유수에게서 꿈속에서 받았다는 세 글자 '碧玉欄'의 해설을 이덕무에게 청하여 듣는다:
碧은 문장을 뜻하는 것이고, 玉은 아름다운 자질을 가리키는 것이고, 欄은 막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몸을 장식하고, 온화함과 씩씩함으로 본래의 품성을 잘 가꾼 다음, 예절을 지키어 점검하고 단정히 하여 혹시라도 방만한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187)내가 소설을 배척하는 까닭: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는 것 중에 소설이 그 으뜸이니 자제들이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소설에 한번 맛들이면 빠져드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189)소설에는 세 가지 미혹된 것이 있다. 헛것을 내세우고, 빈것을 억지로 맞추려 하고, 귀신을 말하고 꿈을 말했으니, 지은 사람이 첫번째 미혹된 것이다. 허황된 것을 감싸고 천한 것을 고취시켰으니, 논평한 사람이 두 번째 미혹된 것이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경전을 등한시했으니, 탐독하는 사람이 세번째 미혹된 것이다.
(190)소설은 원나라 때 시작되어 명나라 때 한창 유행하였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더욱 더 유행이다. 대체로 소설은 난잡한 글이고 원은 어지러운 나라다.맨 처음 소설을 지은 사람에게 백성들을 어지럽힌 죄를 가해야 한다.
(인격 수양에 힘쓰는 이덕무도 소설에 대해서는 분기탱천하여 그 폐해를 낱낱이 지적하고 있다. 당시에 이런 학자들이 많았나 보다.)
(199)사람의 허물은 항상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 심해지고, 사람의 재앙은 항상 남을 업신여기는 데서 생겨난다.
(204)除夜에:
다행히 국가가 태평한 시대를 만났으니 어찌 형제들끼리 술자리를 베풀고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때가 정조 때니까 그럴 만도 하겠다. 우리는 언제쯤 '나라가 태평하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순서에 따라 초연을 베풀고 *홍아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 다음, 많은 형제를 빨리 전하여 부른 뒤 고당에 올라 늙으신 어른들께 절을 올리며 오래오래 사시어 8천 살까지 장수하시기를 빈다. *紅牙:타악기로, 이것을 두드려서 박자를 조절한다.

(100세 시대니, 만수무강이니 하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8천 살까지 장수하라는 소린 처음 듣는다)

6.자연과 벗을 삼아
(224)3월의 푸른시내에 햇빛은 화사하고 복숭아꽃 물결은 언덕에 넘쳐흐른다. 오색의 작은 붕어들이 노니는 모습과 온갖 물새들이 짝을 지어 날아다니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웃음속에 감춰둔 날카로운 칼과 마음속에 쌓아둔 만 개의 화살, 그리고 가슴속에 숨겨둔 서 말의 가시가 일시에 깨끗이 사라져 한 가닥도 남지 않는다. 항상 내 생각을 3월의 복숭아꽃 물결이 되게 하면, 물고기와 새의 활발함이 내 순탄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도와주리라.
*이 세상이 큰 도화지라면 조화옹은 위대한 화가다.
(225)가을 강가에 노을지는 장면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데, 이야말로 造化翁의 그림 가운데 으뜸이리라.
(233)아무일이 없을 때조차도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데, 단지 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뒷날 반드시 이를 깨달을 때가 문득 오는데, 근심하고 걱정하는 때에 그렇다.
(234)원래부터 병들지도 않고 욕심도 없으면서 죽고 사는 것을 따지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이른바 덕망높은 사람이다.
(236~240)눈덮인 칠십 리 길을 지나며:
1763년 12월 22일에 쓴 수필/23세 때 말을 타고 한양을 출발해서 충주로 가는 여정의 기록/눈내리는 숲과 마을을 지나며 눈에 들어오는 대상을 관찰하여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 돋보인다.

(254~255) 한평생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일을 하며 살기란 매우 힘이 든다. 좋은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끼니마다 진수성찬을 먹는 사람들이라도 때때로 근심 걱정이 있게 마련이다. 1년, 아니 한 달에 마음 편한 날이 얼마나 되랴, 더욱이 하루 사이에 마음이 편하기는 이렇게나 어려운 법이다.
부럽구나! 세상에 달관한 *至人은 재앙도 근심도 없이, 하늘 밖에서 구름처럼 노닐며 그 마음 내키는대로 살다가 일생을 마치겠지. *지인:장자에는 지인을 형용하기를, "피부가 빙설과 같고 몸가짐은 처자와 같으며 오곡을 먹지 아니하고 바람을 호흡하고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거느리고 온 세상을 노닐며 그 정신이 응결되면 사물의 흠이 생기지 않게 하고 곡식에 풍년이 들게 한다"라고 하였다.

 

(책벌레 이덕무의 삶은 과히 누추하지 않았다.
늦은 나이지만,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되어 책을 실컷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아들 광규도, 손자 규경이도 그 할아버지의 뜻을 좇아 글을 많이 읽고 벼슬에도 올랐으니 이만하면 잘 산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읽지 않은 자에겐 남는 게 없어도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뒤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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