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35일간의 조지아 자유여행

(열나흘) 카즈베기3

맑은 바람 2024. 4. 7. 21:32

2024년 4월7일(일)
스테판츠민다 -1도~6도

스테판츠민다 일기 예보는 예보일 뿐이다. 워낙 산악지대라선지 수시로 변하는 날씨를 하느님만이 아신다.
카즈베기로 들어오던 날, 일기예보를 보았더니 나흘 내내 비 오고 진눈깨비 내리고~
잠시 우울한 기분이 들었으나 뭐,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사하지! 하며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웬걸~
아침에 대니가 황급한 목소리로 "어서 일어나 봐!"
창밖을 보니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2170m ) 뒤로 햇살을 머금은 구름이 카즈베기산 정상(5054m)을 휘감고 있었다.
우린 그윽하게 바라보는 우아함 대신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아! 드디어 봤구나!"
감탄하면서.
아마도 조지아의 성녀 니노가, 우리가 결혼 50주년 기념으로 여행 온 걸 아시고 카즈베기 산을 온전히 보여주셨나 보다.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교회 (2170m), 그 뒤로 카즈베기 산(5054m)이 보인다

이거 다 먹으면 과식하는 거다
Enjoy Today에 한국산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며 성삼위일체교회를 바라볼 수 있다니~

 

<와인은 이제 그만!>
보름 동안 와인 세 병을 마셨다.술꾼들이 들으면 '새발의 피'라 하겠지만 조지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로망 중의 하나가 값이 저렴하고(일반적으로18~20라리) 품질이 좋은 와인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니, 벌써 물리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대니가 술 근처에도 가기 싫어하니
"나 와인 맛 보러 조지아 가고 싶어" 라고 말했을 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술은 주거니 받거니 해야 술맛도 나고 또 많이 마시게 되는데, 사다 놓고 식사 때만 혼자 한두 잔씩 마시니 한 병 사면 여러 날 먹게 된다. 와인 도사라면 각종 와인의 맛을 즐기기 위해 이것저것 부지런히 찾아 마시겠지만 나야 술 마시는 기분으로 술을 마시니 혼자 무슨 기분이 나겠는가?
어느 택시 기사가 조지아 와인 많이 드셨는가고 말을 던지길래, 이이는 한 잔도 안 마시고 나만 마셨다고 했더니 기분좋은 얼굴로 껄껄 웃으며 엄지척을 한다. 여자가 술을 마셨다니 웃겼나 보다!

'사페라비'는 조지아산 포도 품종. 향이 좋고 깊은 맛이 있어 음식과 잘 어울린다
두 번째 와인. 병따개에 조지아 국기가 있다
세 번째 와인, 약술이라나~

 

10시에 아나노 주인장(게오르기) 과 국경 부근의 <Dariali Monastery>를 찾아보았다.
외딴 지역이고 러시아 최접경지대라 좀 긴장이 되었다.

마당에 모셔진 성모상

조지아ㆍ러시아 국경지대에도 가 보았다.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저만치 검문소를 지켜 보았다.
므츠헤타에서 카즈베기로 올 때 끝이 보이지 않던 대형화물트럭 (박스트럭,각종 트레일러)이 코카서스 산맥 아래 저 좁은 터널을 통해 러시아로 넘어가는 모양이다.
'저 많은 차들이 언제 다 터널을 빠져나갈꼬!'
시키지도 않는 걱정을 또 하고 있다.

한쪽이 낭떠러지인 좁은 도로를 운전자들이 묘기 부리듯 서로 잘도 피해간다

 

오후는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대니의 몸상태가 별로다.
겉보기에 멀쩡하고 비교적 아픈 내색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지금 나이가 몇이냐! 내년부터는 여행자 보험 가입도 안 되는 나이 아닌가. 내가 올해에 꼭 조지아를 가야 한다고 우긴 이유 중의 하나다.

늘 그래왔듯이, 대책없이 일 벌여 놓고,
"이제부터 당신이 알아서 해!"
하며 똥배짱을 부려온 마누라를, 그 불같은 성질 꾹꾹 누르고 묵묵히 뒷바라지해 주는 걸 보면 대니도 많이 변했다. 아니 원래 자상한 성품을 타고났는데, 내가 걸핏하면 염장을 질러서 못된 남자를 만들었는지도 모르지~
우야튼 고마워, 여보!

젊어서는 오히려 그런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여행 때는, 아이 잃어버릴까봐 꼭 잡고 다니는 母子처럼, 우린 잠시도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평생 못했던 감사인사를 다 해야겠다는 듯이 일마다 "땡큐, 고마워~"한다.

대니가 장을 봐 왔는데 내가 원하는 걸 깜빡하고 안 사왔다.
"내가 갔다 올까?"
여행하는 보름 동안 한번도 나 혼자서 외출한 적이 없었다.
워낙 자기가 힘드니까 그럼 혼자 갔다오라고 한다.

빤한 동네라 혼자 나가도 두려움이 없다.
길가에 소가 똥을 퍼질러 싸는 것도 보고, 강아지들이 건달들처럼 돌아다니는 것도 보고, 웬 자그만 동양 여자가 두리번거리며 혼자 다니나 하는 눈빛으로 흘끔거리는 조지아 마초같은 남자들도 만났다.

슈퍼에서 장을 무사히 보고 돌아왔다.
여주인 카튜나에게 계란을 내밀며 9분만 삶아 달라고 했다. 친절한 카튜나는 삶은 계란을 이층까지 가져다 주었다. 내가 가파른 소라형 철계단에서 굴러 떨어질까 봐 맘이 안 놓였나 보다.
"디디 마드로바"(대단히 감사해요)

저녁은 이렇게 먹어야 속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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