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산문
해냄출판사/초판1쇄2023.12.22/초판3쇄2024.2.29/339쪽/읽은 때2024.5.17(대모님에게서 이 책을 선물받은 날)~5.24
공지영(1963~ )
(한 달여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기록이다.)
(9)이 자연은 가만히 놓아두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아무리 큰 통나무라 해도 생명이 다한 후에 그것들은 아스라이 흙 속으로 스며들어 하나가 된다.어쩌면 죽는다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하나 됨이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것은 아무리 작은 것들도 자연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영원히 썪지 않은 채 자기 자신으로 남는다.
(11)가장 큰 후회는 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 사랑함을 소유로 굳혀 버리려던 것,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찬란한 가을볕 아래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았고 사랑했던 시간이 더 많았음을 깨닫는 것은 가을이기 때문이리라. 여름을 떨구는 리넨이불처럼 나는 지난날의 나를 조용히 떨구며 생각한다. 삶은 지중해풍 샐러드같아.
죽음을 거쳐온 사람들, 사랑에 상처입은 사람들, 주린 이들과 배고픈 이들, 그리고 샘물을 갈망하는 사람들, 밤새 광야를 헤맨 사람들에게 내 책을 전하고 싶다.그들이 나의 벗이다.
(18)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하늘 아래 똑같은 것도 실은 없다.
(19)동쪽 창이 밝아오면 나는 더 누워 있을 수가 없다.오늘에 대한 설렘 때문이다.오늘 나는 무슨 '처음'을 맛볼까? 오늘은 어떤 꽃이 새로 피고, 오늘은 어떤 싹이 새로 돋고, 오늘은 어떤 구름이 어떤 바람을 타고 내 곁을 스칠까? 그것은 모두 처음이 될 것이고, 이 처음은 내가 맛볼 마지막 처음일 것이기에 이 단어를 쓰고 있자니 다시 설렌다. 설렘을 가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100% 공감! 달인의 글을 만나면 그리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가슴 설레며 책장 여는 순간을 기다려 온 보람을 느낀다.내게 있어 '설렘'은 삶의 활력소다. 새로 만나는 책, 새로 만나는 영화, 처음 보는 풍경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가는 버스를타고 있을 때, 공항에서 탑승시간을 기다릴 때--)
(26)'어떤 때 너는 진심 행복하니?' 삶이 내게 물었다.
평창의 시골집, 한적한 일요일 오후, 된장국에 넣을 아욱을 따고 가지와 애호박, 풋고추와 상추를 딴 바구니를 들고 텃밭 울타리를 나와 집쪽으로 몸을 돌리던 어떤 순간 그 평범한 시골의 풍경을 지닌 찰나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을 누르고,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밀치고, 산토리니와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을 물리치고 윌계관을 쓰고 있었다.이 글을 쓰는 지금 이 모든 것을 다시 돌아봐도 내게 있어 그것은 참이다.
(26)나는 3년 넘게 남들에게 글을 내비치지 않고 살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국숫집을 열까, 피자를 구울까 하는 망상도 가끔은 즐거웠다.
수입은 형편없이 감소했지만, 수입이 감소하자 내야 할 세금도 큰 폭으로 줄었고 일단 악의를 품은 사람들로부터 언어의 독화살을 피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약간 더 행복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강한 걸까? 인간의 본능일까? 사람들은 튀는 사람을 기를 쓰고 끌어내리려 한다. 그걸 못 견뎌 생을 내려놓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내 블로그가 인기가 없다는 데 감사해야 할지? 이런 걸 궤변이라 하나? )
다시 글을 쓴다면 정말 쓰고 싶어서, 생계가 아니라 정말 그러고 싶어서 쓰고 싶었다.
(왜 그녀의 글을 읽으면 행복할까? 感情移入이 잘 돼서?)
(79)死海의 日沒 앞에서:
사해는 받아들이기만 할 뿐 아무에게도 제 물을 나누어주지 않아, 결국 생명 없는 호수가 되었다고 했다.
가지려고만 하고 움켜쥐려고만 할 뿐 내어주고 흘려보내고 놓아버리지 않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죽음으로 변한다는 것을 사해는 보여주고 있었다.
---어디선가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너는 또 다시 소수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하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하지만 너는 택해야 한다, 그 고독을. 그것이 참된 것이라면---. 아득하고 슬픈 바람이 미지근하게 불어왔고 계속해서 불어왔다.
(84)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BC13세기, 블레셋이라고 부르던 필리스틴 사람들이 가나안지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다족도 가나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이들은 3000년에 걸친 전쟁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95)이름이 불리워진다는 의미:
예수가 난장이이며 세리이자 반역자 자케오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그에게 일어난 엄청난 변화는, 이름이 지닌 의미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꽃' 중에서)
(113)말 한 마디가 인생을바꾼다: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가시밭을 벗어나는 용기도 준다. 돈 비싸게 주고 부적 같은 것을 살 필요조차 없다.
(116)<행운을 부르는 법>-줄리아 월튼:
할머니는 불운을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이 뜻밖의 친절이라고 했다. 그것만이 삶이 구렁텅이에 빠질 때 우리가 무너질 거라고 믿는 악마를 혼란스럽게 할 거라고.
(150)예수시대 이스라엘의 4개 분파:
1.사두가이--대제사장의 직분을 세습하는 당시 최고 권력자/부활도 내세도 믿지 않음
2.바리사이--'하느님께 가까이 가야 한다.'며 안식일과 율법에 몰두함(지식인층)
3.열성당원--예수시대에 로마에 저항한, 소위 운동권들
4.에세네파--세상과 단절해 신을 찾는 사람들(수도자들의 원형/쿰란 공동체)
(154-155)단순함의 위대함:
명화의 특징은 단순하다.
모든 허접한 것을 지워버리지 않고는 우리는 어떤 대상에 도달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동에 내려와 혼자 고요 속에 머무르면서 나는 그걸 깨달았다.
중요한 것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우거나 억제해야 했다.
제일 마음을 시끄럽게 한 것은 사람들과 만나 부질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때다.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결점을 들추어 비난하고 마는 그 대화에서 남겨진 것이 얼마간 독약과도 같이 느껴진 순간도 있었다.
(158)예루살렘:
평화라는 뜻의 '샬롬'에서 유래되었다는 도시, 그러나 평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도시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에 따라 이삭을 죽여 바치려고 했던 도시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봉헌했던 도시
오랜 시간 후 유대인들이 떠났을 때 메카에서 태어난 마흐메트가 승천한 도시
예수가 죽어 묻히고 부활한 도시
그래서 여의도의 십분의 일 크기인 이곳은 유대교,이슬람교, 그리스도교, 세 종교의 성지이다.
순금 500kg이 쓰였다는 황금돔 사원이 있는 곳
예루살렘 성안 즉 올드시티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 구역, 유대인 구역,아르메니아 구역, 그리스도교 구역으로 나뉜다.
(163)예루살렘 성전과 통곡의 벽:
예수 시대 헤로데의 성전은 다양한 빛깔의 대리석으로 지어졌으며 대리석이 마치 출렁이는 파도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의 예언대로, AD 70년경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의 티투스 장군은 이 성전을 5개월에 걸쳐 서쪽 벽 하나만 남기고 완전히 파괴했다. 그곳이 <통곡의 벽>이다.
(188-189)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2~1226 향년 44세)는 어떻게 성인이 되었나?
성장기에 유복한 생활을 했으나 전쟁포로로 1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삶의 어둠을 맛본다.
그러나 그것도 아직 그의 삶을 다 바꾸지는 못했다. 약간 깨달은 것 가지고는 삶은 바뀌지 않는다. 대개는 약간 더 괴로워질 뿐이다. 삶은 존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끝에서야 바뀐다.결국 이렇게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고통 말이다.변화는 그렇게나 어렵다.
그러므로 고통이 오면 우리는 이 고통이 내게 원하는 바를 묻고 반드시 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틀이 이제 작아지고 맞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러 떠났다가 주의 음성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가족ㆍ친지들과 연을 끊고 구걸하여 이웃에게 나누어 준 후 빵과 소금만으로 살았다.
(200)보스니아 메주고리예에 발현하신 성모님께 아이들이 물었다.
"성모님,어떻게 그렇게 예쁘세요?"
"으응, 내가 아름다운 이유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223)복수극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가끔 우리 속에 있는 공격성과 잔인함은 이렇게 신념에 가득찬 정의의 외피를 쓰고 나온다. 나는 잔인한 복수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서도 늘 그 생각을 했다.
(연일 김호중의 음주운전에 관한 보도 속에서, 인간의 추악함을 고스란히 본다. 그동안 질투 ㆍ시기, 경쟁의식으로 고깝게 바라보던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려는 듯, 마치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 당하면 큰일난다는 듯이, 언론은 앞 다투어 미주알고주알 캐내어 보도를 해준다. 고등학교 때 김호중에게 학폭 당한 경우가 있거든 정보를 알려달라는 유튜버는 또 뭔가? 인간사회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지상에 참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건 무리한 일일까? 슬프고 안타까워서 잠을 설친다. 어째서 그는 그런 빌미를 제공하고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행을 선택한 걸까? 그의 창창해 보였던 앞날은 이내 먹구름 속에 감춰져 버리고 '그는 다시 외로워질 것'인가?)
(242-244)고통의 정체:
1.고통은 유혹이다.우리에게 惡心을 불러일으킨다.
2.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남을 판단하게 만든다.
3.고통은 우리를 이기적으로 만들며 사랑을 방해한다.우리는 이웃에대한 연민을 잃어버리고, 우리는 타인에대한 공감을 잃어버리며 우리는 낯선 이에 대한 친절을 잃어버린다.
(259)해가 있어야 싹이 튼다고 생각하지만 어둠 속에서야말로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난다는 것, 이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밤에 자랐고, 고통 중에 성숙했고, 아프고 나서야 키가 반뼘쯤 자란 것일까.(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261)그녀는 왜 이스라엘로 간 걸까?: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글을 버리려고 문을 닫아건 채 독하게 마음 먹고, 그리하여 나는 이 유대인들의 적의를, 이 배척을, 이 캄캄한 무덤을, 이 죽음을, 이 밤을 보러 이리로 떠나왔던가.
(262)타인의 행복을 위해 박탈과 고통의 삶을 살기로 결심해서는 안 됩니다.단단하고 오래 지속되는 참된 사랑은 자기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랑입니다.우리가 타인을 향해 가려고, 종종 우리 자신을 가두는 고리를 깨뜨릴 때 인생은 흥미진진해집니다.--엠마뉘엘 수녀<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중에서
(얼마나 타당하고 가슴에 와닿는 말인가. 나는 수녀님이 '할 말이 있다'기에 궁금해서 이 글을 읽는 순간 바로 책 주문을 했다.)
(263-271)샤를 드 푸코(1858~1916 향년58세)프랑스 귀족집안 출신/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방탕한 생활을 하는 중에 공허가 찾아왔다./이때 사촌누이의 권유로 <생 오귀스트 성당>의 위블랭 신부를 만났다./그는 그 순간 무릎 꿇고 참회하며 새사람이 되었다./나의 하느님은 이렇게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자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하느님으로부터 그것을 빼앗을 수가 없었다./위블랭 신부의 말은, 샤를 드 푸코의 영혼을 꿰뚫었고 훗날 일생의 좌우명이 되었다고 한다.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자리, 그곳이야말로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그는 나사렛으로 가서 수녀원(글라라봉쇄수녀원)의 잡역부가 된다./후에 그곳을 떠나 북아프리카 사막으로 들어가서 사막의 투아렉족과 어울려 살다가 평소 우편심부름을 하던 소년이 도적에게 그를 넘기는 바람에 죽게 된다. 그것도 바로 소년의 총에 맞아서/푸코가 죽은 후에 창설된 것이<작은형제회>와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였다.
(322)평사리로 깃들다:
공지영 문학이 잉태된 평사리/그녀는 밤을 새워 토지1부를 다 읽었다(13살 무렵)/그리고 깨달았다, 세상에는 생을 걸고 도전해 볼만한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문학이라는 걸.
(작가처럼 나도 늘 죽음을 생각했다. 젊은날이 힘들고 괴로웠나 보다.
29세에 죽고 싶다고 입방정을 떨더니 그해에 뇌종양 수술을 받고 사경을 헤매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죽음은 보류되었다. 아이 둘을 공부시키고, 장가까지는 보내야 하니까.
77세인 지금, 나는 언제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려운 숙제가 다시 주어지지 않는 한,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들 속에서 책을 더 열심히 읽고, 한편으로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 가며 영화도 보고, 가끔은 여행을 떠나리라. 그리고 "Carpe Diem !"을 외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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